석유공사, 올해 부채 '20.9조'…1년새 1조 늘어
2026년까지 자본잠식…영업익 절반이 이자비용
자산 매각 효과도 크지 않아…공급망 불안 우려도
[아시아경제 세종=이준형 기자] 한국석유공사가 미국 멕시코만 앵커유전을 헐값에 처분한 건 경영정상화를 위한 구조조정이 시급했기 때문이다. 2018년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한 석유공사 재무구조는 이미 수년 전 한계치를 넘어섰다. 회사 재무건전성을 보여주는 지표인 부채비율은 2017년 719%에서 2019년 3415%로 불과 2년새 5배 가까이 치솟았다. 급기야 석유공사는 2020년 완전 자본잠식에 빠졌다.
문제는 해외자산을 잇따라 매각해도 자본잠식을 타개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석유공사가 한무경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2022~2026년 중장기 재무관리계획’에 따르면 석유공사는 2026년까지 자본잠식 상태를 이어갈 전망이다. 부채는 지난해 19조9630억원에서 올해 20조8946억원으로 1년새 1조원 가까이 늘어난다. 석유공사 부채는 올해부터 2026년까지 향후 5년 동안 20조~21조원대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됐다.
한해 이자만 ‘5000억’
빚이 늘다보니 이자로 나가는 비용도 상당하다. 석유공사 이자비용은 올해 4154억원, 내년 4549억원, 2024년 5050억원으로 꾸준히 증가한다. 2026년에는 영업이익(1조899억원)의 절반이 넘는 5747억원을 이자비용으로 지출한다. 매년 영업이익이 1조원을 웃돌아도 부채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이유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석유공사는 정부 재정 지원이 불가피한 것으로 보고 있다. 천문학적인 부채로 인해 매년 이자비용만 수천억원에 달해 자산 매각 등 내부 자구노력만으로는 재무구조 개선에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석유공사는 지난달 말 기획재정부에 제출한 중장기 재무관리계획에 "경영정상화와 자원안보 기능 회복을 위해 최소한의 정부 재정 지원이 추가로 필요하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석유공사가 재무구조 개선을 목표로 추진 중인 해외자산 구조조정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채가 2026년까지 20조원을 웃도는 등 자산합리화의 효과가 생각보다 크지 않아서다. 석유공사가 ‘가격’보다 ‘매각’에 방점을 찍고 해외자산 매각에 나서다보니 가격협상력이 낮아져 헐값 매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는 점도 우려를 키우는 대목이다.
공급망 불안 우려
장기적 관점에서 해외자산 매각이 득보다 실이 클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주요국이 자원을 무기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석유공사의 해외자산 ‘줄매각’은 국내 공급망 불안을 부추길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석유공사 생산량은 잇따른 자산 매각으로 2015년 23만700boed(석유환산배럴 생산량)에서 지난해 13만6400boed로 약 41% 줄었다. 석유공사가 총 투자비의 절반도 못 미치는 금액에 매각한 앵커유전만 해도 지난해 말 기준 원유·가스 매장량이 2440만배럴에 달하는 데다 일평균 3000배럴을 생산했던 해상유전이다.
졸속 매각에 대한 우려는 석유공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전력 등 정부가 ‘재무위험기관’으로 지정한 공기업들은 대대적인 해외자산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올 상반기에만 14조3033억원의 적자를 낸 한전은 재무구조 개선 차원에서 필리핀 세부발전소와 미국 볼더3 태양광발전단지를 연내 매각할 방침이다. 한전은 ‘알짜 부동산’으로 꼽혔던 서울 서초구 한전아트센터를 분할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국내자산 구조조정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자원외교 최전선에 섰던 한국광해광업공단도 상황은 비슷하다. 광해광업공단은 보유 중인 해외광산 15개 중 13개를 정리하기 위해 매각 절차를 밟고 있다. 이같은 해외자산 구조조정을 통해 지난해 7조2642억원에 달했던 부채를 2026년 5조1902억원으로 2조원 이상 낮추겠다는 구상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 원장을 지낸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 같이 에너지 수입의존도가 높은 국가가 해외자산을 파는 건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라며 "해외자원 개발은 정치적 논리가 아닌 경제적·과학적 사실에 따라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이준형 기자 gils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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