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복기 2주간 '해외여행력' 제대로 파악 안돼
[아시아경제 조인경 기자] 국내 두 번째 원숭이두창 감염자가 입국한 지 2주나 지나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그사이 지역사회 접촉자는 최소 15명으로 파악됐다. 특히 증상이 발생한 뒤에도 닷새 후에나 의사환자(의심환자)로 분류되면서 국내 방역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5일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원숭이두창 두 번째 감염자 A씨는 유럽 방문 후 지난달 18일 국내에 입국했고 이달 1일 보건소에 스스로 건강상의 이상을 문의하면서 방역당국(서울시 역학조사관)에 의해 의사환자로 분류됐다. A씨는 현재 입원 치료 중이며, 증상은 경증인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입국 열흘 후인 8월28일부터 발열, 두통, 어지러움 등의 증상이 나타났다. 30일에는 피부 통증을 느껴 서울의 한 병원을 방문하기도 했지만, 이곳에서도 원숭이두창 감염 가능성을 미처 파악하지 못했다.
방역당국은 A씨가 2주 동안이나 방역망에서 걸러지지 않은 것은 원숭이두창의 잠복기가 짧게는 5일에서 길게는 21일, 평균 6~13일에 달하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입국 당시 무증상이었고, 동네 의원을 방문했을 당시에도 원숭이두창 감염의 대표 증상인 피부 발진이나 수포가 없는 상태였다. 질병관리청이 지난 7월 DUR(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과 ITS(해외여행력정보제공시스템)를 연계했고, A씨가 원숭이두창 빈발 5개국(영국, 스페인, 독일, 포르투갈, 프랑스) 중 한 곳을 다녀왔기 때문에 병원 진료 시 여행 이력은 자동으로 의료진에 통보됐다.
그런데도 의원에서는 A씨의 원숭이두창 감염 사실을 의심하지 못했다. 여행 이력은 있으나 발진이나 수포 등 원숭이두창의 전형적인 증상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게 질병청의 설명이다. 당시 A씨 역시 의료진에게 여행력을 밝히지 않았고 의료진도 해외여행력 여부를 묻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A씨가 국내에서 감염됐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순 없지만, 해외 방문 이력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결국 A씨는 해외 방문지에서 감염된 뒤 국내에 입국했고, 이후 잠복기를 거쳐 증상이 나타난 사례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질병청은 A씨의 전염 가능 기간 접촉자를 조사한 뒤 노출 수준을 반영한 위험도에 따라 가족·친구인 중위험 접촉자 2명, 의원·약국 등에서 이 환자와 만난 저위험 접촉자 13명을 확인했다. 중위험 접촉자는 접촉일로부터 21일간 보건소가 의심증상을 매일 확인하는 능동 감시를 받는다.
질병청은 "A씨를 치료한 의료기관 등에서 적절한 보호구를 착용했고 주된 감염경로인 체액이 직접 노출됐을 가능성은 낮다"며 "원숭이두창 국내외 가이드라인에서 지역사회 일상접촉을 통한 전파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성접촉 등을 동반하지 않은 일상생활에서 원숭이두창에 감염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다만 A씨의 경우 증상 발견 후 닷새가 지나도록 방역당국의 감시망에서 벗어나 있었던 만큼 현재의 방역 시스템에 허점이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원숭이두창에 대한 느슨한 방역망은 지난 6월22일 첫번째 환자 발생 당시에도 제기됐다. 첫 환자는 입국 당시 37도의 미열과 인후통, 무력증, 피로 등 전신 증상과 피부병변이 있었지만, 공항 검역대를 그대로 통과한 뒤 공항 로비에서 스스로 방역당국에 신고했다.
첫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우리 방역당국은 원숭이두창의 감염병 위기 수준을 '관심'에서 '주의'로 격상했고, 7월 초엔 치료제인 '테코비리마트' 504명분을 도입했다. 필수의료진에 대한 백신 접종을 완료하고 진단검사 체계를 확대하는 한편 원숭이두창 24시간 종합상황실과 즉각대응팀을 설치하는 등 대응체계를 강화해 왔다.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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