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용준 여행전문 기자]
30년간 일궈온 계룡산 도예촌
신규 도자예술단지 조성 땐 존폐위기
공주시, 도예촌과 상생 방안 마련해야
충남 공주시 상신리는 계룡산 북쪽 자락 깊숙이 자리한 마을이다. 유명 사찰이 있어 인파가 몰리는 동학사나 갑사 쪽보다는 찾는 이가 매우 적은 산골짜기다. 30년 전인 1992년, 이곳에 젊은 도예가 10여 명이 들어왔다. 진입도로도 없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고립되고 척박한 곳이었다. 도예가들이 터를 잡은 이유는 한가지다. 임진왜란 이후 끊어진 계룡산 철화분청의 맥을 잇는 것이었다. 예로부터 계룡산 흙으로 구워낸 분청사기는 ‘계룡산분청’이란 이름을 가질 정도로 유명했다. 전남 강진의 상감청자와 경기 광주의 청화백자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도자기 중 하나다.
척박한 땅에서 도예가들은 직접 흙을 나르고 벽돌을 쌓아 공방과 생활터전을 마련했다. 자신이 구입한 땅의 일부를 공유면적으로 내놓았고 이렇게 마련된 공간에는 장작가마와 공동전시장이 들어섰다. 관광객들이 언제든지 작업실을 방문하거나 체험공방에서 도자기를 만들어볼 수 있게 한거다.
젊은 도예가들의 예술혼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어졌다. 철화분청사기의 빛과 우수성을 재창출하기 위해 흙을 만지고 물레를 돌렸다. 의기투합한 결과 400여년 동안 맥이 끊어졌던 계룡산 철화분청이 세상에 다시 빛을 보기 시작했다. 황무지땅이 젊은 도예가들에 의해 차츰 세상에 알려졌다. 지난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찾았을 때 선물한 것도 계룡산 도예촌에서 만든 철화분청사기 어문병이었다.
계룡산 도예촌이 30년만에 존폐위기를 맞고 있다. 계룡산분청을 부활시켰지만 그 역사가 송두리 채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공주시가 일본에 백자기술을 전수한 이삼평의 이름을 딴 도자예술단지 조성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151억 원을 들여 2024년까지 이삼평 기념관과 전수관, 체험장 등을 갖춘 복합도자문화예술센터를 만든다.
시는 도자예술단지가 기존 도예촌과 기능을 달리해 관광객을 도예촌으로 유도하는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미 30년 간 일궈 성공적으로 안착한 도예촌을 두고 중복성 있는 도자단지를 또 만든다는 것을 도예촌 사람들은 납득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산속 깊이 위치한 계룡산 도예촌과 달리 도자예술단지는 동학사 진입로에 조성되어 접근성을 비교해 볼 때 생존권을 위협받을게 불 보듯 뻔하다.
정순자 계룡산 도예촌장은 “우리는 흙만 만지는 바보지만 무엇이 바른길인지는 안다. ”면서 “도예촌 지척에 이삼평 예술단지가 들어설 경우 시가 말하는 계룡산도예촌 발전의 마중물이 아닌, 도예촌 쇠락의 마중물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사업은 최근 열린 충남도 지방재정 투융자 3차 심사에서 12명 전원일치로 투자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30년간 상신리에서 철화분청사기의 명맥을 이어오며 자리를 지켜온 기존 계룡산도예촌이 경쟁관계에 몰리면서 붕괴가 불가피하다고 본 것이다.
투자 부적격 판정에 따라 공주시가 충남도에 투자 승인 재요청을 하려면 1년간 유예기간을 거쳐야 한다. 시는 사업 재검토 등 여러 방안을 염두에 두고 재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공주시는 재추진에 앞서 지역민들의 반목과 갈등만 키우는 신규 도예촌 조성 논란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상신리 주민들과 대화하고 소통해야 한다. 맥을 이어온 철화분청사기의 발전과 공주시 관광산업에 득이 되는 고민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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