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취약 계층, 제도적 도움 받기까지 진입 어려워"
"복지 인력 보충·사회적 관심 동반돼야"
[아시아경제 강주희 기자]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다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하고 사망한 '수원 세 모녀' 사건은 우리 사회의 안전망 공백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정부는 뒤늦게 취약 계층을 집중 발굴할 방안을 논의하는 데 착수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소외 계층에 대한 관심과 공동체 의식이 동반돼야만 비슷한 사건을 막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지난 21일 경기도 수원시 다세대 주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세 모녀는 생전에 극심한 생활고를 겪으면서 투병 생활을 했다. 어머니인 60대 여성 A씨와 40대인 두 딸은 각각 암과 희귀 난치병을 앓고 있었다. 이들 주변에는 도움을 요청할 만한 친척이나 이웃이 없었다. 생계를 유지하던 A씨의 남편과 아들이 2년 전 지병 등으로 먼저 세상을 떠나면서 형편이 크게 어려워진 것으로 전해졌다. 세 모녀는 사망 전 40 여 만원의 월세도 제때 내지 못했다. 지난해 2월부터는 건강보험료도 체납한 것으로 알려졌다.
위기 징후가 있었지만 세 모녀에게 국가의 복지 손길은 닿지 않았다. 세 모녀의 실제 거주지는 수원시였으나 주민등록상 주소지는 화성시로 돼 있어 지자체가 소재를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세 모녀는 빚 독촉을 피하기 위해 그동안 전입신고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기초생활수급 등 기본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복지 서비스조차 신청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중앙 정부의 복지 사각지대 발굴 시스템도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다. 보건복지부(복지부)는 단전, 단수, 단가스, 건보료 체납 등 34개 위기 정보를 토대로 복지 사각지대 가구를 발굴하는 시스템을 운영한다. 하지만 세 모녀는 건보료 체납만 위기 정보로 포착돼 위기 가구 발굴 대상자에 포함되지 않았다. 채무나 세대주 사망 등의 다른 정보들은 파악되지 않아 상대적으로 위험 징후가 높지 않은 것으로 분류됐다.
화성시는 세 모녀의 건보료가 16개월째 체납되자 지난 7월 주민등록상 주소지를 찾아가는 등 현장 조사에 나섰다. 그러나 세 모녀의 소재가 파악되지 않자 복지 서비스 '비대상자'로 분류하고 더 이상 추적하지 않았다. 사실상 세 모녀처럼 빚 독촉을 피해 숨어 지낼 수밖에 없는 이들에겐 복지 제도가 있어도 무용지물인 것이다.
'신청 주의'를 기본으로 하는 복지 시스템도 한계로 지적된다. 현재 우리나라의 복지 제도는 대부분 당사자가 직접 신청해야만 지원 받을 수 있는 구조다. 그러나 서류 준비 등 절차가 복잡하다. 그래서 진입 단계부터 가로막히거나 세 모녀처럼 상황과 여건이 안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복지부가 지난 5∼7월 복지 사각지대 발굴 조사를 통해 찾은 고위험군 20만5748명 가운데, 1117명은 주민등록상 주소지에 살지 않아 연락이 두절된 상태였다. 세 모녀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이들이 또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정부는 뒤늦게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할 대책 마련에 나섰다. 복지부는 지난 24일 '복지 사각지대 발굴 관련한 전문가 간담회'를 열었다. 위기 가구의 소재·위치 파악이 안 될 경우 실종·가출자에 준해 경찰의 도움을 받아 소재를 파악하는 방안을 집중 논의했다. 또 오는 9월6일 차세대 사회보장시스템을 적용하면서 현재 34종인 위기 정보를 39종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전문가는 세 모녀 사건과 같은 비극을 막기 위해선 복지 사각지대를 발견할 인력을 보충하고 공동체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동명 동덕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의 복지 제도는 필수적인 부분은 대부분 갖춰져 있다. 경제적인 부분을 지원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다양한 제도가 있지만, 문제는 취약 계층이 제도에 접근하기까지의 과정"이라며 "결국 인력의 문제다. 정부와 지자체는 인력을 보충하고 이에 소요되는 행정 비용을 과감하게 늘려야 한다. 또 이웃 등 가까이 있는 이들이 주변의 위기를 알리고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은 취약 계층의 방치를 막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강주희 기자 kjh818@asiae.co.kr
꼭 봐야할 주요뉴스
불닭·김밥이어 또 알아버렸네…해외에서 '뻥' 터... 마스크영역<ⓒ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