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신흥국 외환보유고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가장 빠른 속도로 줄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의 강력한 기준금리 인상으로 달러가 초강세를 보이면서 신흥국들이 자국 통화 가치를 방어하는 과정에서 달러 외환을 빠르게 소진하고 있는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집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신흥국 외환보유고가 3790억달러 줄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JP모건 체이스는 환율 변동을 배제하고 외환보유고가 풍부한 중국과 중동 산유국을 제외할 경우 신흥국 외환보유고가 2008년 이후 가장 빠르게 줄었다고 분석했다.
올해 달러가 초강세를 보이면서 대부분 국가의 자국 통화 가치를 방어하려는 목적으로 보유 외환을 풀었다. 가뜩이나 에너지 비용 상승으로 물가가 크게 오른 상황에서 통화 가치 하락은 인플레이션을 부추기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은 달러, 유로, 엔 등 신용도가 높은 통화들을 보유하고 있다가 외국인 투자금이 빠져나가면 외환보유고를 풀어 시중 외환을 늘려 자국 통화 가치 하락을 막는다.
중국, 인도, 브라질 등 대규모 외환보유고를 보유한 신흥국들도 있지만 많은 신흥국들은 외환보유의 급격한 감소로 경제 위험이 커지고 있다.
스리랑카는 이미 지난 5월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맞았고 나이지리아는 달러 유출을 막기 위해 해외 항공사들의 자금 본국 송환을 막았다. 파키스탄, 이집트, 튀르키예, 가나도 비슷한 위기 상황에 직면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금융정보업체 CEIC에 따르면 파키스탄과 가나는 올해 외환보유액이 각각 33%, 29% 줄었다. 두 나라는 현재 IMF와 구제금융 협상 중이다.
이집트의 외환보유고도 26% 줄어 7월 말 기준으로 240억달러 수준이다. 3개월치 수입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수준 밖에 안 된다. 이집트는 역시 IMF와 구제금융 협상을 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동유럽 국가들도 큰 피해를 입었다. 체코의 헝가리의 외환보유고는 올해 각각 15%, 19% 줄었다. 헝가리 포린트화는 올해 30% 가까이 하락했다.
주피터 자산운용의 알레한드로 아레발로 신흥국 채권 부문 대표는 "그동안 저금리에 크게 의존했던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국가들이 가장 위험하다"고 말했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꼭 봐야할 주요뉴스
러, 우크라 '3분할' 요구하는 이유…꼬이는 트럼프... 마스크영역<ⓒ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