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next]中 전기차 굴기에 글로벌 車산업 지형도 대격변
중국 견제 나선 美 인플레감축법·EU 정책지원↓
韓 전기차까지 판매 차질 가능성
선진국도 자국산업 보호 나서
[편집자주]"내연기관은 못 따라잡았지만 전기차는 다를 것이다." vs"중국산, 아직 글로벌 무대에선 검증이 안 됐다."
중국의 전기차 굴기를 바라보는 시선은 크게 엇갈린다. 일찍부터 전기차로 선회해 실력을 쌓았다고 보는 시각이 있는 반면 속내를 들여다보면 부족한 부분이 많다는 평가도 있다. 중국의 전기차 산업은 막대한 자국 시장을 배경으로 몸집을 키운 뒤 이제는 세계 각지로 뻗어나갈 채비를 마쳤다. 미래 모빌리티 산업의 주도권을 둘러싼 글로벌 경쟁 구도 역시 과거와 달라진 양상이다. 중국 전기차가 선전하는 배경을 살펴보고 향후 전망을 짚어본다.
[아시아경제 최대열 기자] 미국에서 최근 시행에 들어간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IRA)이 전기차 시장에 주는 시그널은 명확하다. 미래 이동수단(모빌리티)에서 전기차나 배터리의 중요성이 커질 수밖에 없는 만큼, 자국 내 전기차·배터리 생태계를 풍성하게 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전임 트럼프 행정부 시절부터 노골적으로 강조돼 온 경제안보로서의 기초산업 육성 기조와 한 세기 가까이 쥐고있던 글로벌 자동차산업 주도권이 중국 등 외부로 넘어가는 데서 오는 불안감이 맞물린 결과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취임 직후 배터리 공급망을 조사하라고 지시했는데 당시 조사에서의 결론이 원재료의 특정국가, 즉 중국으로부터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 안보위협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유럽도 속내는 복잡하다. 그간 기후변화문제 등에 선제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전기차 개발·보급에 누구보다 앞장서 왔는데 최근 기류가 바뀌었다. 독일에선 올 연말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에 대한 보조금을 없애는 한편 전기차 보조금 역시 내년과 후년까지만 지급하기로 했다.
영국도 전기차 보조금을 최근 없앴고 전기차 보급 선진국 노르웨이도 전기차에 주던 각종 혜택을 점차 줄이기로 했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전기차 보급 확대가 중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권 기업에 유리한 환경이 만들어졌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전쟁 등을 거치면서 글로벌 공급망이 한순간에 취약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데다 갑작스레 수요가 늘면서 전기차 제작비용이 치솟은 점도 부담이 됐다. 전통적인 내연기관차 강국 독일의 경우 급격한 산업전환에 따른 고용불안 이슈도 불거졌다.
중국이나 한국산 전기차는 빠르게 커지는 시장에서 쏠쏠한 재미를 봤다. 무역협회 통계를 보면 올해 1~5월 유럽이 전기차를 수입하는 비유럽 국가 가운데 중국이 18억8800만유로로 가장 많았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80%가량 늘었다. 뒤이어 우리나라가 9억5600만유로로 전년 대비 37% 증가했다. 유럽의 역외 전기차 수입물량 가운데 중국과 우리나라가 75% 이상을 차지했다. 지난해 연간 전체로 중국과 우리나라가 차지하는 비중이 62% 수준이었는데 올해 들어 비중이 더 커진 셈이다.
미국에선 한국산 전기차 성장세가 가장 가팔랐다. 올 상반기 미국이 우리나라에서 수입한 전기차는 13억3300만달러어치로 주요 수입국 가운데 규모나 증가율로는 압도적으로 가장 많았다. 현대차·기아의 전용전기차나 친환경차 전용모델이 가격경쟁력이나 상품성을 앞세워 널리 팔린 덕분이다.
미국의 인플레 감축법이나 유럽에서 보조금 축소로 중국이나 우리나라 전기차가 가장 직접 타격을 받을 것으로 업계에서는 내다보고 있다. 중국이나 우리나라가 중소형 저가모델이나 중간 보급형 모델을 주력으로 했는데 미국이나 유럽 메이커 역시 비슷한 차급을 내놓거나 머지 않아 가세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서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인플레 감축법에 따라 우리나라 전기차가 2년간 미국에서 발이 묶일 처지가 됐고 유럽에서도 한층 경쟁이 심화되는 양상"이라며 "중국 전기차의 경우 각국 정책을 상쇄할 정도로 가격경쟁력을 가질 수도 있는 만큼 우리나라도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보조금 정책을 한층 강화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동력원이 전기로 바뀌는 것을 넘어 자율주행·커넥티드카 등 소프트웨어 기술력에 따라 주도권이 갈릴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차량관리 권한을 쥔 정부나 지자체 차원의 지원, 정보기술(IT)이나 플랫폼기업과의 협업이 중요한 배경이다. 핵심부품인 배터리 원자재 등 수급선을 다양하게 확보할 필요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이호근 대덕대 교수는 "중국 정부가 해외 수출 전기차에 대해선 세제혜택을 주는 등 다각도로 지원했던 전례를 감안해 우리도 정책지원을 과감히 해야 한다"라며 "내수시장이 작은 한계는 있지만 인플레 감축법의 경우 유럽과 공동전선을 형성하는 등 정교한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대열 기자 d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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