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차 계약 하자마자
제3자에게 즉시 매도 등
국토부, 전세사기 의심사례
1만3천여건 경찰청과 공유
HUG 집중관리 채무자 중
2000여견 수사 의뢰
[아시아경제 김민영 기자, 조성필 기자] ‘임대차 계약 맺자마자 제3자에게 즉시 매도하기’ ‘악성채무자가 명의 빌려 세입자 들인 뒤 보증금 떼먹기’.
국토교통부가 24일 공개한 전세사기 의심 사례들이다. 국토부는 전세사기 특별단속을 위해 주택도시보증공사, 한국부동산원과 합동으로 이번 사례들을 분석해 경찰청과 공유했다. 이번 정보공유는 지난 7월 말 시작된 전세사기 합동 특별단속의 일환으로 이뤄졌다. 경찰은 전세사기 의심정보 1만3961건을 국토부로부터 넘겨받았다.
특히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대위변제한 이후 채무를 장기 미상환 중인 집중관리 채무자 정보 3353건 가운데 2111건에 대해 수사 의뢰를 받았다. 연루된 임대인은 모두 26명이며, 대위변제액은 4507억원에 달한다. 또 자체 실거래 분석을 통해 확보한 임대차 계약 직후 대량 매수·매도, 전세가율 100% 이상 다주택 계약 사례 등 관련 정보 1만230건을 넘겨받았다. 경찰청은 이번 자료 공유로 기존 사건처리에 속도를 내고 신규 사건에 대한 수사에도 나설 계획이다.
국토부가 분석한 전세사기의 대표적인 사례는 임대차 계약 이후 제3자에게 즉시 매도하는 것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임대인 A씨는 공인중개사와 공모해 총 500여명을 대상으로 1000억원가량의 깡통전세 임대차 계약을 맺었다. 이후 A씨는 무자력 임대인 B씨에게 주택을 매도하고 잠적했다. 보증금을 반환할 책임이 있는 임대인이 자신이 보유한 자산보다 채무가 많은 상태인 무자력일 경우 HUG 등 기관은 집주인에게 구상을 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임대인 대신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대납해주고 이를 돌려받지 못하게 된다는 얘기다.
명의 이전을 통한 보증 돌려막기도 전세사기에 동원되는 수법 중 하나다. 임대인 C씨는 악성채무자로서 HUG 보증가입이 금지돼 있어 임차인 모집이 어렵게 되자 지인 D씨에게 주택을 매도했다. 지인 D씨 명의로 임대차 계약을 체결했고 이렇게 끌어모은 보증금을 세입자에게 돌려주지 않았다.
보증가입 의무를 위반한 임대사업자도 덜미가 잡혔다. 다주택자인 임대사업자 E법인은 주택 200여가구를 임대하고 있으나 보증보험을 가입하지 않아 정부로부터 약 30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받았다. ‘민간임대특별법’상 임대보증금 보증가입 의무를 위반했기 때문이다.
담보대출을 연체한 사실을 고지하지 않고 보증금을 편취한 사례도 있었다. 아파트 1동을 통째로 소유한 임대인 F씨는 담보대출이 연체돼 은행으로부터 경매가 실행된다는 예고를 받았다. 하지만 공인중개사와 공모해 해당 사실을 숨기고 임차인 약 30여명과 임대차 계약을 체결해 보증금을 편취했다.
문제는 최근 집값 약세로 전세가격이 집값을 뛰어넘는 깡통주택이 늘어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기준금리 인상,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 등의 영향으로 매수세가 위축되면서 주택 경기가 침체되고 있어서다. 임대차법 시행 이후 전세가격은 크게 올랐는데 최근 집값 약세 흐름과 연동해 전세 보증금이 매매가격 수준이거나 더 높은 깡통 전세 위험이 커지고 있다.
매매가와 전세가의 차이가 없으면 전세 계약 만료 시 집값보다 높은 보증금 때문에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깡통전세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 부동산 플랫폼 다방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에 이뤄진 서울의 신축빌라 전세 거래량 3858건 중 815건(21.1%)이 전세가율 90%를 웃도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중 전셋값이 매매가와 같거나 더 높은 경우도 593건에 달한다.
윤지해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작정하고 사기치는 악성 임차인을 피하려면 보증금이 매매가나 시중 전세가격보다 높게 설정된 전세물건은 계약을 하면 안된다"며 "선순위담보권이 설정된 물건은 보증금 반환 리스크가 크므로 전세보다는 월세 계약을 맺는 것이 낫다"고 조언했다.
정부는 다양한 수법을 활용해 전세사기를 일삼는 악성 임대인이 늘자 다음달 전세사기 방지책을 마련해 발표할 예정이다. 임대차 계약을 맺을 때 임대인의 세금완납증명서를 의무적으로 첨부하거나 공인중개사를 통해 세금 체납 여부를 확인하는 방안 등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집주인이 세금을 내지 않아 세입자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규모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의 ‘미납 세금 공매에 따른 임차 보증금 미회수 내역’ 자료에 따르면, 올해 1~7월 임대인의 세금 미납으로 임차인이 돌려받지 못한 보증금(건수)은 122억1600만 원(101건)으로 집계됐다. 2017년 52억5000만원과 비교하면 두 배 이상 급증한 규모다.
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
조성필 기자 gatozz@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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