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민주화 운동 당시
신촌 대학생들의 거점 역할
우상호 의원·배우 안내상 단골
[아시아경제 전진영 기자] "오늘 왜 이렇게 금요일 같지." 주 후반부터는 어깨와 목이 결리기 시작한다. 몸은 늘어지고 모든 자극에 무감각해진다. 정신을 쏙 빼는 매운 맛이 필요하다. 발걸음이 절로 신촌으로 향한다.
훼드라는 1973년부터 약 50년 동안 신촌에서 매운 라면을 판 가게다. 이름은 1960년작 영화에서 따왔다. 전 주인이 운영하던 가게 이름을 그대로 가져왔다. 금지된 사랑이 주제인데, 학생들 사이에서 "(매워서) 죽어도 (맛있어서) 좋다"고 해서 그렇다는 소문이 났다. 주 메뉴는 ‘최루탄 해장라면’인데, 요즘 메뉴판에서 사라졌다. 왜 그런가 하니 너무 매워 다들 시키고 남겨서라고 한다. 지금은 해장라면을 ‘얼큰하게’와 ‘맵게’로 판다. 해장라면을 맵게 주문하고 안주로 씹을 군만두도 시켰다. 기름을 쓸어내리기에는 맥주만한 것이 없다. "맥주 하나에 소주 하나요, 잔은 하나만 주세요"라고 하자 "혼자 왔어?"라며 이모님이 되물었다.
매운 음식에 붙는 ‘최루탄’은 한국 역사와 떼어놓을 수 없는 수식어다. 훼드라는 1980년대 민주화 운동 당시 신촌 대학생들의 거점이었다. 돌아가신 1대 사장님은 데모하다 감옥 간 학생들의 영치금을 댔고, 내복을 사서 넣었다. 고(故)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에 맞아 중태에 빠졌을 땐 병원을 지키는 학생들에게 식사를 제공했다. 이런 까닭에 연대 운동권 출신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배우 우현과 안내상 등이 단골이다. 우 의원은 아직도 신촌에서 회식을 하는 날이면 들러 인사를 하고 간다. 지금은 사장이 바뀌었는데, 1997년부터 1대 사장님과 손발을 맞춘 고려인 ‘이모’가 단골을 맞는다.
라면에는 바지락 몇 개, 콩나물 한 줌, 김치, 그리고 청양고추와 홍고추가 한 국자씩 들어갔다. 국물 한 숟갈에 고추씨가 바작바작 씹힌다. 큰 화구에서 센 불로 짧은 시간 끓여내 면발도 꼬들꼬들하다. ‘먹을 만하다’ 싶다가도 이마에 땀이 주륵 흘러내린다. "최루탄은 더 매운데 먹고 싶으면 해주겠다"는 제안을 거절했다. 얼얼한 혀와 들이마신 소맥 기운에 어질어질해진다. 신라면을 끓였으니 분명 아는 맛인데, 칼칼한 맛에 국물이 계속 들어간다. 남자 넷이서 온 테이블은 공깃밥을 시켜 밥을 말았다.
이모님도 벌써 나이가 일흔이 넘었고, 며칠 전 무릎이 아파 10분 거리를 1시간 걸었다고 했다. 메뉴판에서 최루탄이 빠지고 ‘해장라면 맵게’가 남았듯, 시간은 흐르고 사람도 변한다. 그래도 이곳이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는 매워 땀 쏙 뺀 자리에 슬슬 차오르는 후련함과 어딘가 맑아지는 느낌 때문일 것이다. "언제든 또 오세요. 좋은 글 쓰세요." 배웅을 받으며 가게를 나선다. 비가 쏟아진다. 맵고 아리다. 혀는 아닌 것 같다.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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