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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지 좋고 저렴하니까 사는 거죠"…반지하를 위한 변명

최종수정 2022.08.12 07:22 기사입력 2022.08.11 07:00

비정규직·월소득 187만원·자녀 양육
반지하가 선택이 아닌 필수인 사람들
"반지하 퇴출" 예고에 "어디서 살으라고"
임대주택 확보 등 '질서있는 퇴장' 고민

비정규직 30대 A씨는 원룸 빌라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자녀가 생기면서 보다 넓은 공간이 필요했지만 월 평균소득 187만 원인 경제 사정이 발목을 잡았다. 결국 A씨는 월세는 비슷하지만, 면적은 두 배 가까이 넓은 인근 반지하 빌라를 택했다. 볕이 덜 들고 습기가 자주 들어차는 단점이 있지만,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과 출퇴근이 편리한 입지를 고려하면 잘한 결정이라는 게 A씨의 생각이다.


반지하 주거의 생활상이 담긴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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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지방에 내린 집중호우는 이번에도 반지하 주택 거주민들에게 유달리 가혹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반지하 거주 가구를 위한 대책을 황급히 발표했다.

10일 국토교통부는 "재해·재난으로부터 반지하 등 주거취약가구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기 위한 근본적인 지원대책을 마련해 이번과 같은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지속해서 노력하겠다"고 했다. 관할지역에서 반지하 거주민 사상자가 다수 발생한 서울시는 "지하·반지하 주택을 없애겠다"고 했다.


반지하 주택 침수 사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거의 매년 여름철 폭우가 쏟아질 때마다 이재민이 발생한다. 서울시는 2010년 태풍 곤파스로 인해 반지하 상당수가 침수 피해를 입자 저지대 주거용 반지하 신축을 금지했으나 사상자 발생을 막지는 못하고 있다. 이는 반지하 주택 문제가 사회구조적인 요인과 얽혀있는 복합적인 이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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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소득 187만 원·자녀양육…반지하가 선택이 아닌 필수인 사람들= 위 30대 A씨의 이야기는 '2019년 국토교통부 주거실태조사' 데이터를 기반으로 작성한 가상의 사례다. 해당 보고서를 보면, 저층주거지 지하주거 임차가구의 평균소득은 187만원이다. 저소득층. 비정규직 비율이 각각 74.7% 52.9%에 이른다.

특히 노년가구주의 비율(19.2%)이 다른 주거형태에 비해 2배 가까이 높고, 자녀양육가구 비율(22.1%) 높은 편이다. 이들이 부동산 시장에서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다.


이후빈 국토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특히 자녀양육가구는 상대적으로 넓은 주거면적이 필요하므로 원룸형 비주택에서는 거주하기 힘들다"면서 "사실상 지하주거가 저소득 자녀양육가구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주거형태"라고 말했다.


자료:국토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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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지하주거 임차가구의 평균 주거비는 34만4000원, 평균 RIR(소득대비 주거비 비율)은 23.8%로 아파트 임차가구의 평균 RIR(29.2%)보다 낮다. 또한 지하주거에서 내부상태에 대한 불만족 비율(48.2%) 높은 편이지만, 이중 상당수(35.4%)는 열악한 내부상태를 양호한 입지 이점과 맞바꾼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면, 반지하 주택이 경제 취약계층의 대안적 주거형태로서 기능해왔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의 A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반지하 주택 매물을 찾는 수요자 중에서는 기존 거주지보다 반지하가 더 나은 환경이기 때문에 선택하는 경우도 많았다"며 "정작 반지하 거주자들은 반지하 퇴출을 반기지 않을 수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반지하만큼이나 싼값으로 지낼 수 있는 거처를 마련하지 않는 한 세입자가 반지하주택에서 자발적으로 나올 유인이 없고, 당장에 반지하 퇴출이 진행될 땐 주거난민 발생이 불가피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침수 피해 현장을 방문하고 있다. 이 반지하 주택에서는 발달장애 가족이 지난밤 폭우로 인한 침수로 고립돼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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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하 멸실 후 신축 시 용적률 인센티브…공공임대주택 확대 등 정책 대안= 반지하 주택을 단순히 없앤다는 것에서 더 나아가, 보다 입체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반지하의 '질서 있는 퇴장'을 위한 정책적 지원과 인센티브 아이디어는 이미 다수 제시된 상태다.


국토연구원은 지난해 4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저소득 다자녀가구 공공임대주택 입주우선권 부여 ▲입지를 고려한 공공임대주택 공급 ▲저소득 양육가구를 위한 별도의 아동주거비 지원 등을 제안했다.


경기연구원은 2020년 발간한 '반지하의 주거환경 개선방안' 보고서에서 ▲반지하 주택멸실 후 신축 시 용적률 인센티브 ▲반지하 밀집 지역에 대한 재개발·재건축 우선 적용 ▲반지하 거주민 대상 공공임대주택 이전 지원 강화 ▲이사비 등 주거지원비 제공 등을 제시했다.


정부는 먼저 임대주택공급 확대, 주거 바우처 등으로 대응을 예고한 상태다.


국토부는 "공공임대주택 중 저소득 취약계층의 공급물량은 유지(연 5만 호)하면서 면적 확대, 선호입지 배치, 시설·마감재 개선 등을 통해 품질을 높여나가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주거급여 확대와 청년 월세 지원 등 주거비 지원도 강화하겠다"고 덧붙였다.


지난 10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중부지방 집중호우로 사망자가 발생한 서울시 상도동 반지하 주택가를 찾아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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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는 '주거상향 사업'과 '주거 바우처'를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주거상향 사업은 지하·반지하, 쪽방, 숙박시설 등에 거주하는 주거취약 계층을 대상으로 상담을 거쳐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주거 바우처는 공공임대주택에 거주하지 않는 차상위계층 가구에 시가 월세를 지원하는 방식이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반지하·쪽방 등 취약가구 거주자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기 위한 근본적인 방안을 검토하겠다"면서 "도시 전체에 대한 취약성 분석을 강화해 배수, 저류시설 확충 등 방재 기능을 강화하는 방안과 함께 건축물 설계·관리 기준을 기후변화 시대에 맞게 정비하는 등 재해·재난으로부터 안전한 환경을 조성토록 실질적인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김동표 기자 letme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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