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보증재단중앙회 '2022년 상반기 보증지원기업의 폐업실태조사'
페업자 40%는 재창업 했거나 준비중
창업비용 평균만 이미 1억 넘었는데
"폐업→재창업 반복되면 부채 문제 커져"
[아시아경제 송승섭 기자, 심나영 기자] 경기 성남시에서 북카페를 운영했던 김상철씨(34·가명)는 다음 달 30일에 폐업한 뒤 서울로 옮겨 1000원대 아메리카노를 파는 프랜차이즈 카페로 재창업 할 예정이다. 날이 갈수록 적자가 불어나서 셔터를 내렸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먹고 살 길은 자영업 뿐이었다. 김씨는 "이달 카드값까지는 겨우 메웠지만 밤에 잠도 못잔다"며 "10월 중으로 국가지원을 받아 다시 가게 문을 열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폐업한 뒤 다시 창업하는 자영업자가 부지기수인 것으로 나타났다. 원래 하던 가게의 문을 닫은 다음에도 마땅히 생계를 유지할 길이 없어서 동일업종으로 재창업을 하거나, 정부가 주는 영업지원금을 바라보고 다시 자영업에 발을 들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자영업자 부채 문제가 이로 인해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폐업자 절반이 "망해도 다시 창업할래요"
26일 신용보증재단중앙회가 발표한 ‘2022년 상반기 보증지원기업의 폐업실태조사’(총 821개 폐업 사업체 전화조사, 4월21일~5월18일 실시)에 따르면 폐업한 소상공인 10명 중 4명은 ‘재창업을 이미 했거나’(24.1%), ‘준비 중’(15.5%)인 것으로 조사됐다. ‘재충전 중’(12.9%)이라고 밝힌 이들 중에서도 53.4%가 향후 ‘재창업을 계획한다’고 응답했다. 폐업한 소상공인 중 절반 가량이 재창업에 뛰어드는 셈이다. ‘경제활동에서 은퇴했다’고 답한 이는 5.5%에 불과했다.
보고서는 국내 소상공인들이 재창업을 손쉽게 고려하는 이유로 낮은 진입 장벽을 꼽았다. 특별한 인력이나 기술, 허가 등이 필요하지 않아 당장의 이자를 갚고 생계를 이어나가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재창업이라는 뜻이다. 설문에 응답한 소상공인들도 재창업을 고려한 이유로 68.2%가 ‘생계유지’를 꼽았다. ‘폐업에 따른 실패를 극복하고 성공할 가능성이 있어서’라고 답한 이들은 20.9% 수준 이었다.
재창업 자영업자의 가장 큰 문제는 별다른 혁신 없이 폐업과 창업을 반복하는 이른바 ‘회전문식 재창업’이다. 폐업 전과 똑같은 업종을 선택하는 경우는 53.5%로 과반을 넘겼다. 이런 선택을 하게 된 이유로는 52.2%가 ‘경험이나 기술, 전문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선택했다. ‘특별한 준비가 필요 없어서 그랬다’는 응답은 36.2%로 두 번째였다. ‘높은 수익이 기대돼 동일 업종을 택했다’는 소상공인은 7.2% 불과했다.
보고서는 경험이나 기술이 쌓였을 거라는 자신감이 실제로는 과신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배진성·이연수 신용보증재단중앙회 연구원은 "(소상공인들이) 폐업 요인을 전문가로부터 컨설팅 받은 뒤 재창업에서 성공 요인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며 "막연히 동일 업종의 경험만으로 재창업해 폐업하는 전철을 미리 방지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가계부채 문제 키우는 허술한 재창업
자영업자들이 폐업과 재창업의 뫼비우스 띠에서 돌고 도는 사이 창업비용은 치솟고 있다. 신보중앙회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등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창업 평균비용은 2020년 9000만원에서 1년 만에 1억1800만원으로 불어났다. 보고서는 "투자비용이 높은 창업의 특성 탓에 비용 회수도 못 한 채 폐업하는 사례도 많다"며 "이런 패턴이 계속되면 가계부채나 기업부채의 증가로 이어져 사회적인 문제를 초래한다"고 경고했다.
폐업 자체가 가계빈곤·부채 문제를 심화시킨다는 것도 우려 사항이다. 폐업한 자영업자의 71.1%가 폐업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으로 ‘가계 경제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과도한 채무로 인한 정상적인 경제활동 재개가 어려워졌다’는 이들도 22.7%나 있었다.
자영업자들이 폐업과 재창업을 위한 자금지원을 희망하는 만큼 대책이 필요하다. 재창업이나 폐업자를 위한 자금지원은 필요한 비용에 비해 매우 적기 때문이다. 서울재단의 ‘사업정리 및 재기 지원 프로그램’의 점포 원상 복구지원은 한도가 200만원이다. ‘희망리턴패키지’의 점포철거비 지원금도 최대 250만원 정도다. 사정이 이런데도 손실보상금 등 각종 자영업자 금융 지원 정책은 대부분 휴·폐업자에겐 해당사항이 아니다.
자영업자 지원의 목적을 ‘생계보조’가 아닌 ‘성장’에 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남윤형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은 "지금까지 정부에서도 생계형 자영업자에 대한 경영 안정 차원의 지원이 대부분이었다"며 "자영업의 전문화를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양질의 일자리가 늘어나는 게 자영업자 굴레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는 길이라는 조언도 있다. 오정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원이 아무리 필요하다고 해도 결국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면서 "기업 경기가 살아나서 안정적 소득을 제공할 직장이 각 지역에 계속 생겨나는 것 말고는 뾰족한 대안이 없다"고 했다.
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심나영 기자 sn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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