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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건설 노동자들은 아파트 벽에 '인분'을 숨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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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건설 현장, 여전히 화장실 시설 열악
"참고 일하거나 집 안쪽에 볼일 봐"

지난 2008년 이후 건설 현장 내 화장실 설치가 의무화됐으나, 여전히 일부 현장의 화장실 시설 상태는 열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 사진=송현도 아시아경제 인턴기자

지난 2008년 이후 건설 현장 내 화장실 설치가 의무화됐으나, 여전히 일부 현장의 화장실 시설 상태는 열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 사진=송현도 아시아경제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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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송현도 인턴기자] 경기도 한 신축 아파트 벽면에서 인분이 든 비닐봉지가 발견되면서 이른바 '인분 아파트' 논란이 불거졌다. 인분 봉지는 건설 현장에서 일한 인부들이 숨긴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 노동자들의 몰지각한 행태가 입주민들에게 피해를 줬다는 성토가 쏟아지지만, 일각에서는 건설 현장의 열악한 위생 환경이 문제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이 논란은 지난 19일 한 인터넷 카페에 올라온 글을 통해 처음 알려졌다. 이 글에 따르면, 지난 5월 경기 화성시의 한 신축 아파트에 입주한 A씨는 날이 점점 더워지면서 안방 벽면에서 정체 모를 악취를 느꼈다.

참다 못한 A씨는 같은 달 29일 시공사 애프터서비스(A/S) 부서에 연락해 하자 신청을 했다. 연락을 받고 도착한 시공사 관계자들은 A씨의 집을 조사하던 중, 드레스룸 천장 위쪽 공간에 내용물이 잔뜩 든 비닐봉지 3개를 발견했다. 봉지 안에는 인분이 들어 있었다. 시공사 측은 아파트 내부 마감공사 과정 중 작업하던 인부들이 인분 봉지를 숨겨 놓았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봉지가 발견된 뒤 17일이 지났지만 시공사는 벽지와 천장을 뜯어내고 살균, 액상 세제 뿌리는 걸 탈취 작업이라고 하고 있다"라며 "아직도 냄새가 너무 심해 머리가 아플 정도"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글을 접한 누리꾼들은 "몰상식한 인부들이다. 왜 화장실을 안 쓰는 거냐", "혹시 우리 집에도 숨겨 둔 거 아닌가", "이래서 신축 아파트엔 입주를 못 하겠다" 등 우려하는 반응을 보였다.

경기 화성 한 신축 아파트 안방 드레스룸에서 발견된 '인분 주머니' / 사진=연합뉴스

경기 화성 한 신축 아파트 안방 드레스룸에서 발견된 '인분 주머니'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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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 중인 아파트 이곳저곳에 근로자가 용변을 보는 일이 흔하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건설 회사에서 일한다는 한 누리꾼은 "사람들 생각보다 인부들이 건물 곳곳에서 볼일을 보는 경우가 꽤 많다"라며 "넓은 장소에서 너도나도 그런 일을 하니까 통제가 힘든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왜 일부 인부들은 화장실이 아닌 공사 현장에서 용변을 해결하는 걸까. 노동자들은 현실적으로 건설 작업 중 화장실을 이용하는 데 제약이 크다고 토로한다.


앞서 지난 2008년 '건설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국내 건설 현장 내 화장실 설치가 의무화됐다. 이에 따라 공사예정금액 1억원 이상인 건설현장에는 식당·화장실·탈의실 등 근로자를 위한 편의시설을 설치하고 관리인을 지정해야 하며, 이를 어길 시 과태료가 부과된다.


그러나 화장실 시설의 전반적인 관리 상태나 위생 환경은 별개의 문제다. 도저히 이용할 수 없을 만큼 열악한 시설이 있는가 하면, 아예 화장실이 작업 공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도 있다.


실제 지난 2020년 '건설근로자공제회'가 건설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생활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건설 현장의 97.5%는 화장실을 갖췄으나 이용자들의 만족도는 전체 편의시설(화장실·탈의실·샤워실·식당·휴게실 등) 가운데 최하점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대해 공제회 측은 "보유율은 높지만 전체 수량, 위생상태에 대한 불만족이 반영된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아파트, 오피스텔 등 건설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B씨(26)는 "건물 종류에 따라 화장실 수준이 천차만별이다. 대기업 현장은 주기적으로 청소 작업원이 찾아오고 공사가 진행 중인 건물 여러 지점에 비데가 설치된 화장실도 구비해 놓지만, 일반적인 아파트 현장에선 그런 걸 기대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며 "일반 현장은 건물 1층에만 화장실이 있거나, 아예 주변 다른 건물의 화장실을 빌려 쓸 때도 있다"고 설명했다.


고층 건물 작업 현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은 화장실 이용에 불편을 겪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은 기사 중 특정 표현과 관계 없음 / 사진=연합뉴스

고층 건물 작업 현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은 화장실 이용에 불편을 겪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은 기사 중 특정 표현과 관계 없음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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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층짜리 소형 건물을 짓는 경우는 이런 화장실 시설로도 충분하지만, 문제는 수십 층 짜리 고층 건물에서 일하는 경우다. B씨는 "볼일 한 번 볼 때마다 7~8층을 오르내릴 수 있겠나"라며 "그냥 (용변 욕구를) 참고 일하거나,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집 안쪽에 볼일을 치르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건설 노동자 C씨(27)는 "나무로 만든 간이 화장실, 주변이 다 노출된 소변기를 세워두고 화장실이라고 부르는 일도 있다"라며 "제대로 관리가 이뤄지는 것도 아니라서 여름에는 악취가 나고, 겨울에는 변기가 얼어붙는다. 누가 그런 걸 쓰고 싶겠나"라고 토로했다.


이어 "화장실 대신 공사 중인 방이나 베란다 같은 곳에 용변을 보고, 나중에 시공사가 뒤늦게 청소업체를 불러 한 번에 처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청소하는 하청업체가 미처 용변 본 것을 발견하지 못하면 이번 '인분 아파트'같은 사건이 벌어지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전문가는 단순한 화장실 설치 의무화에 그칠 게 아니라, 위생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이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국건설노동조합 소속 김성우 실장은 "2008년 건설현장에 화장실을 설치하는 법이 시행됐지만, 위생시설의 구체적인 위치, 규모 등에 대한 세부규정이 명시되지 않아서 이런 문제가 불거지는 것 같다"며 "구체적인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고 했다.

또 "실질적으로 화장실을 관리하는 시공사들의 인식 미비도 법의 실효성이 떨어지는 원인 중 하나"라며 "근로자 편의성을 증진하는 제도가 법적 구속력을 지닐 수 있게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송현도 인턴기자 doso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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