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넓고 스스로 재밌는 공부 폭넓게 해야"
"세상의 많은 수학자들이 왜 수학에 빠질까 고민해보라"
"내 연구 결과로 그동안 불가능했던 많은 계산 가능해져"
"미국 국적 16~17세때 선택, 한국 국적은 없다"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한국인 사상 최초로 '수학계 노벨상'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미 프린스턴대 교수 겸 한국 고등과학원 석학교수가 13일 오후 서울 홍릉 고등과학원에서 귀국 후 첫 공식 기자회견을 가졌다. 한때 '수포자'가 될 뻔하기도 했던 그는 한국의 '수포자' 위기 학생들에게 "너무 주눅 들지 말고 본인이 기쁨을 느낄 수 있고 폭넓게 공부하라"면서 "세상에 많은 수학자와 학생들이 수학의 재미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왜 그럴까를 고민하면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어른들에게는 "학생들의 용기가 배신당하지 않도록 정책적 틀을 짜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한편 허 교수는 미국 국적 선택 시기에 대한 아시아경제의 질문에 "16~17세때 했다"고 밝혔다. 향후 한국 국적 회복 계획 여부에 대해선 답하지 않았다. 허 교수는 부모가 미국 유학 시절 태어나 두 살 때 귀국해 이중 국적을 갖고 있다가 미국 국적을 선택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다음은 허 교수와의 일문일답.
- 한국의 수포자 학생이 전체의 10분의1이다 조언해준다면?
▲ 어려운 질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학생들의 소중한 시절을 공부하는 데가 아니라 평가 받는데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수학이나 교육과정보다는 경쟁에서 이겨야 되고 더 완벽해야 하는 사회 문화적 배경에 있다고 생각한다. 고등교육 이전에는 깊이 생각 안 해봐서 비전문가다. 깊이 얘기하지는 못한다. 다만 학생들이 너무 주눅 들지 말고, 실수 없이 완벽하게 하려 하기 보다는 본인에게 기쁨이 되는 폭넓은 공부를 하라고 하고 싶다. 사회단체 등의 당장 정책을 바꾸실 수 있는 어른들에게는 학생들이 용기를 배신당하지 않도록 정책적 틀을 짜서 좋은 결과가 나오도록 해달라고 당부한다.
- 한국 학생들은 수학 공부를 너무 많이 해서 탈인가? 적게 해서 문제인가?
▲ 어떤 대상 그룹 놓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대답이 달라진다. 미국 스탠포드대나 프린스턴대 등 비교적 상위권대 다니는 대학에서 강의를 경험했는데, 굉장히 다양한 나라에서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이 온다. 그 중에 한국 학생들도 많다. 그런데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한국 학생들이 그렇게 잘 준비돼 있지는 않다. 좁은 범위에 빨리 문제는 푸는 것은 훌륭한데, 넓고 깊게 공부하는 것은 준비가 비교적 덜 돼 있다. 학생들이 대학에서 전공을 선택한 후 깊이 공부하기 위해서 준비가 잘 되도록 고등학교 때 제도가 잘 갖춰지길 바란다.
- 수상 실적이 된 연구 업적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산업계에 적용되나?
▲ 나는 순수수학자 중에서도 순수한 수학자다. 완벽히 답하기 힘들다. 제가 아는 것은, (연구 업적이)기존에는 계산하기 힘들었던 양들을 더 빠르게 계산할 수 있도록 하는 알고리즘을 만드는데 사용할 수 있다고 안다. 예전에는 계산할 수 없는 것들을 계산할 수 있고, 그런 면에서 응용할 수 있다고 한다.
비유하자면, 지금은 글을 쓰는 게 당연하고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모두가 할 수 있다. 그런데 오륙백년전 중세 시대엔 글 쓰고 읽는 것은 소수가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했다. 지금의 순수 수학도 그런 과정에 와 있다. 중세 시대에 영주가 글을 쓰고 읽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학자에게 글을 쓰고 배우는 것을 모두 읽힐 수 있다면 내년 흉작 가뭄 대비할 수 있냐고 물어보면 대답하기가 곤란할 것이다. 비슷한 처지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어떤 가뭄이 오더라고 최소한 생산량 갖추려는 기술적 부분을 해결하려면 큰 문화적 프레임이 갖춰져야 한다. 한 두 문장으로 이거 하면 이게 되냐, 이런 식으로 물어보면 긴 답은 드릴 수 있지만 이런 자리에서 두 세문장으로 요약하기엔 난처하다.
-연구업적에 대해 쉽게 설명해달라.
▲ 무엇인지 설명하기 힘들고 사실 설명이 중요하지도 않을 수도 있다. 재밌는 것이 호지라는 영국수학자가 기하학에서 찾아낸 호지 구조가 조합론, 대수학, 해석학 등의 대상 뒤에 다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저를 비롯해 수많은 수학자들이 20~30년 사이에 밝혀낸 것이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상이한 수학적 대상 뒤에 완벽히 똑같아 보이는 패턴이 존재하는가 이다. 굉장히 거대한 문제로, 쉽게 한 두 세대에서 깔끔한 답을 하기엔 어렵다. 패턴 존재 관측 사실만으로도 가슴 뛰고 흥분할 만한 일이다. 위대한 발견이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재밌다.
-순수 수학 연구의 결과는 발견이냐 발명이냐?
▲ 오래된 질문 중 하나이다. 순수 수학이라는 것이 과학과 달리 실험이나 외부의 관측에 의존하지 않고, 우리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서로 다른 마음들이 상호작용하면서 만들어내는 건축물이다. 그렇다 보니 발명이 아니라 발견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엔 독립적인 마음들이 사실상 똑같은 구조를 반복적으로 찾아내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역사적으로도. 우연으로 치기에는 믿기 힘들어. 수학 행위 대상자로서 느끼기엔 발명이 아니라 발견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 오늘 경계와 관계를 주제로 강연하는 데 어떤 내용인지?
▲ 내용은 들어와서 들어라. 나름 제 딴에는 수학 전공하는 분들이 아닌 사람들도 즐겁게 어느 정도 내용을 서로 이해하고 의미있게 들을 수 있는 주제가 무엇인가 하다가 수학을 하는 사람 입장으로서 두 단어에 대한 느낌을 말씀드리면 재밌겠다 싶어서 골랐다.
-자신이 좋아할 수 있는 일에 몰두할 수 있는 비결은?
▲나도 오랫동안 고민하는 문제다. 일반적으로 얘기했을 때, 제 자신에게 작동했던 게 무엇인가 생각해보면 일이 잘 안 풀리고 그러면 어떤 것을 좋아하고 싶을 때 좋아하지 않게 되고 순수한 마음 유지하기 힘들때, 스스로를 도와주고 여유를 주고 기다려줬으면 한다. 남이 독촉하는 것도 그렇지만 스스로가 스스로를 독촉하면 순수한 마음으로 대상을 좋아하기 힘들다. 포기할 때도, 쉴 때도 있고 , 스스로 격려하면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
-조합론으로 최초의 필즈상 수상자다. '모든 게 조합론'이라고 생각하는가?
▲기하학자들은 모든 게 기하학이라고 하고, 해석학자들은 모든게 해석학이라고, 대수학자들도 모든게 대수학이라고 한다. 조합론 하는 사람 입장에서 변명하자면, 가장 기초적인 대상 다루는 학문이다. 컴퓨터로 항상 계산할 수 있고 누구에게라도 설명할 수 있는 원초적 특성이 강조되는 수학 분야다. 요즘 현대 수학들이 너무 발전해서 해석학, 대수학, 기하학은 그 분야 핵심적인 문제가 뭔지 학생에게 설명하는 데에만도 대학원까지 5~6년의 훈련 과정이 필요하다. 유일하게 예외가 조합론이다. 이 분야의 중요한 난제가 무엇인지, 무엇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지 학부생들에게도 1학년에게도 전달할 수 있다. 이런 직접성, 단순성 때문에 조합론 하는 사람들은 다른 분야에 비해 원초적인 수학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분야의 어려운 문제들도 결국 환원을 거듭하면 조합론으로 풀을 수 있다.
- 여덟살 아들과 수학 문제를 푼다고 하던데, 아이들과 수학 공부하는 비법은?
▲수학 공부 정도는 아니고, 큰아이와 함께 수학을 하루에 한 문제 같이 한다. 하루에 한 문제를 아들이 만들어 오면 내가 풀고 아들이 채점해준다. 대단한 문제는 아니고 학교에서 봤던 문제를 가지고 오는 데, 동그라미를 그려서 몇개인가 맞추는 문제다. 내가 너무 쉽게 푸니까 이제는 정말 많이 복잡하게 그려 온다.내가 고통스럽게 쩔쩔매다가 실수도 한다. 그 과정에서 곱셈의 개념을 배운다. 초보 부모로서 나도 배우고 있다.
-한국이 허 교수에게 뭘 해줬나?
▲(최재경 고등과학원 원장) 유학가기 전에 초등학교에서 대학원 석사까지 한국에서 했다. 우여곡절이 많아서 고등학교 자퇴도 했다. 자퇴한 것 자체가 한국이 허교수에게 해준 거라고 본다. 우리나라 교육이 문제점이 많고 고쳐야될 점이 많다고 얘기하는 데, 미국ㆍ영국 등을 돌아 보면 비슷한 문제가 있다고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수학적 천재가 멍청한 교육자들 때문에 고생하는 스토리다. 선진국에도 다 있다. 허 교수는 석사 학위를 받은 후 프린스턴대에서 연구하면서 고등과학원에서도 연구를 했다. 고등과학원은 자유로운 연구. 호기심 기반 연구를 하는 곳이다. 여기에서의 연구가 본인에게 많은 도움을 줬다고 본다.
▲(허 교수)귀국하면서도 얘기했지만 구불구불하지만 가장 빠른 길을 걸어왔다. 제가 그게 살아 온 길이고, 한국에서 인생의 전반부를 살아왔다. 제가 알아 온 대부분의 것들을 그 시기에 교육제도 울타리 안과 그 근처에서 배웠기 때문에, 그 외에 다른 게 어떤 게 가능했는지 상상하기 힘들다. 그간의 쌓은 경험으로 저를 만들었다. 다른 루트였다면 그 사람은 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수학의 묘미를 느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똑같은 얘기해서 죄송하지만 역시 어려운 질문이다. 학창시절 꽤 오랫동안 수학에 재미를 못느끼고 스트레스 주는 과목이라고 생각해서 충분히 이해를 한다. 그때 저 자신을 만나 이야기를 짧게 해줄 수 있다면 이런 원론적인 이야기를 해줄 것이다. 지금 세상에 수많은 수학자와 수학과 학생들이 있는데, 그분들이 굉장히 수학을 즐거워서 한다. 순수 수학자들이 대부분 그 행위 자체가 너무나 즐겁기 때문에 매일같이 연구를 하면서 산다. 인간이라는 같은 종으로서 다른 어떤 사람이 수학의 매력에 빠져 있고 그 숫자도 많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왜 그럴까, 어떤 면에서 이렇게 매력을 느낄 수 있을까?'라는 것을 가끔 가다가 고민해보길 바란다. 그러다가 본인이 준비되고 때가 됐을 때 본인도 그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수학적 난제를 해결할 때 어려움은 어떻게 극복했나?
▲수학은 어렵기 때문에 즐겁다. 멀리 뛰어야 하는 마라톤을 즐겁기 때문에 훈련해서 매년 참가하지 않나? 수학이 쉬우면 재미가 없을 것이다. 어렵고 내가 얼마나 깊이 있게 생각할 수 있는 지를 끊임없이 테스트 해야 하기 때문에 즐겁다. 일시적인 스트레스에 압도당하면 즐거움 느끼지 못한다. 스스로에게 친절하고 지쳐 쓰려지지 않도록, 쉬워야 할 때는 쉬고 본인이 준비됐을 때 해야 한다. 자신의 체력 이상으로 운동을 하면 부상을 당하지 않냐. 자신의 체력을 생각하면서 부상당하지 않고 더 성장할 수 있는 수준으로 꾸준히 트레이닝하면 되듯이, 궁금해하는 호기심을 잘 유지하면서 꾸준히 잘 성장할 수 있게 노력하면 된다.
- 수학계가 일자리가 부족해서 수학자들이 사라져간다.
▲나라에서도 그렇고, 여러 다양한 루트를 통해 기초과학과 수학을 지원해 줘서 고무적이고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가장 쉬운 포스트닥터, 박사후연구원들에게 2~3년 지원해주는 식이다. 그 기간이 끝난 박사후연구원들이 진짜리 안정적으로 직업을 찾을 수 있는 고정적인 자리들이 없다. 그래서 포스트닥터때 장기적 연구 프로젝트를 하는 게 아니라 3년 내 교수 임용을 목표로 1년 안에 논문 쓰고 1년 내에 출판할 수 있는 단기적 프로젝트를 할 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직장들이 많아져서 특히 젊은 연구원들이 멀리 내다보고 연구할 수 있는 환경 갖추어졌으면 한다.
- 미국 국적은 언제 선택했는지?
▲ 16~17세 때 선택했다. 한국 국적은 없다.
- 다시 한국 국적을 취득할 생각은 없나?
▲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음).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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