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전당대회에서 대승을 거뒀던 이준석
대선, 지선 승리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위기 내몰려
[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 그리스 신화 가운데는 새의 날개의 깃털을 모아 밀랍을 붙인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날았던 이카로스의 신화가 있다. 그는 너무 높이 날면 태양의 열에 밀랍이 녹아 추락할 수 있고, 너무 낮게 날면 바다의 물기로 날개가 무거워져 역시 물에 빠진다는 경고를 들었다. 오직 살 수 있는 길은 하늘과 바다의 중간으로 날아야만 했다. 신화의 결론은 안타깝게도 하늘을 날게 된 이카로스는 너무 높게 올라, 깃털을 붙였던 밀랍이 녹아 바다에 떨어져 죽게 된다는 것이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어쩌면 우리 시대의 이카로스일지도 모른다. 역사와 권위를 자랑하는 대한민국 제1보수 정당에 30대 당대표가 주목을 받았다, 성비위 의혹 등에 휘말리며 급전직하하는 과정이 무척 닮았기 때문이다.
◆30대 당대표 = 이 대표는 1985년생으로 서울 과학고를 나와 미국 하버드대에서 학사를 마치고 돌아온 그는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를 운영하면서 교육봉사단체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을 세우기도 했다. 여러 눈길 가는 그의 이력서는 정치권에 주목받아 2011년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선택을 받아 비대위원으로 활동했다. 이후 정치인의 길을 택한 그는 젊은 보수 정치인의 길을 걸었다.
비선실세 국정농단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무너질 당시 탄핵추진 제안에 동의하는 행보를 걸었다. 새누리당 출신이면서도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 목소리를 내왔던 유승민 전 의원이 바른정당을 창당하자, 함께 탈당해 정치 생활을 하기도 했다. 이후 유 전 의원과 안철수 의원의 바른미래당에서 활동했지만, 양 진영의 대립 끝에 탈당 후 새로운보수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새로운보수당이 다시 미래통합당과 합당하고, 미래통합당이 총선 패배 후 당명을 국민의힘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거치며 그는 국민의힘 소속이 됐다.
정치 이력에서 확인되듯 그는 국민의힘으로서는 주류라고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 20~30대 청년들을 찬조연설자로 참여시키는 등 파격적인 선거운동을 펼쳐 주목을 끌었다. 재·보궐 승리 직후 치러진 전당대회에서 이 대표는 특유의 이슈 대응과 파격적인 선거 전략, 전국을 누비며 화제가 됐던 연설 등을 통해 파격의 주인공이 됐다. 대선에서 승리하려면 보수정당 역시 파격적 변신이 필요하다는 필요와 이준석이라는 스타성이 결합하면서 2021년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이 대표는 돌풍의 주인공이 됐고, 쟁쟁한 후보들을 꺾는 데 성공했다. 이로써 지역구 국회의원에 3번 도전했다 패했던 그는 전국 선거인 전당대회에서 대승을 거둬 0선 30대 당대표라는 신화를 만들었다.
◆트러블메이커? 윤핵관과의 싸움= 따릉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모습 등이 세간의 주목을 받으면서 이 대표는 국민의힘 지지율 상승을 이끄는 주인공이 됐다. 그는 이후 국민의힘의 절체절명의 과제였던 정권교체의 선봉장 역할에 나섰다. 다만 이 과정에서 그는 국민의힘 대선 경선에서 승리한 윤석열 당시 후보(대통령)와 각종 충돌 상황에 내몰린다.
총괄선거대책위원장 임명 문제 등 선거운동의 주도권 문제를 둘러싼 문제 등을 두고서 윤 후보 진영과 이 대표는 충돌했다. 이 과정에서 윤 후보 핵심 관계자, 이른바 윤핵관 논란이 수면 위에 올랐다. 이 대표는 윤핵관 문제를 정조준했고, 이 문제는 국민의힘 대선 과정에서 가장 큰 당내 이슈가 됐다.
이 대표가 당대표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지방을 돌았던 이른바 당무거부 사건(2021년 11월29~12월3일)은 윤 대통령이 이 후보를 직접 찾아가는 형식으로 타협을 빚었다. 당시에도 이 대표는 "후보를 참칭한 사람은 그것은 중차대한 잘못이라고 보고, 저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지목하지 않겠지만 엄중 경고한 것으로 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갈등의 본질이 윤핵관 문제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후에도 이 문제가 계속 이어지자 그는 당대표가 당연직으로 맡았던 상임선대위원장에서 물러나며 대선후보와 대립각을 세웠다. 대선후보와 당대표의 힘겨루기라는 초유의 사태 속에서 대선후보 지지율이 급락하자, 당은 비상 상황에 빠졌다. 결국 의원총회에서 이 대표의 사퇴를 촉구한다는 결의안이 논의됐고, 당시 윤 후보가 "지난 일 다 털고 잊어버리자"고 언급하며 이 대표를 포용하는 모양새를 취하며 다시금 타협했다.
이후 이 대표는 대선전략에서부터 홍보 동영상, 지역 유세 등에 직접 나서며 전천후로 전국을 돌아다녔다. 마침내 대선에서 승리했지만, 이 대표는 선거 과정에서 펼쳐졌던 잇따른 갈등으로 인한 감정적 앙금 속에서 마냥 웃을 수 없었다.
새 정부 출범 후 국정주도권의 승부처였던 6·1지방선거에서도 국민의힘은 또다시 승리했다. 이로써 그는 애초 목표로 했던 선거에서 승리는 모두 이뤄냈다. 대선승리 직후 그는 정당혁신, 공천혁신 등을 약속해, 여당의 체질 개선을 약속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일련의 움직임은 공천권 등을 둘러싼 포석으로 해석되며 당내 갈등으 심화됐다.
결국 이 대표는 당 윤리위원회로부터 성상납 의혹과 관련 증거의 인멸을 교사했다는 이유로 당원권 정지 6개월의 중징계를 받았다. 이번 징계로 인해 이 대표의 대표직 유지하기 어려워짐에 따라 최악의 정치적 위기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국민의힘 한 정치인은 "이 대표측 의원이 10명 정도만 있었어도 이번 사태는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좌충우돌하며 전국적 지명도를 얻었지만, 막상 정치세력화를 이뤄내지 못한 결과가 오늘의 몰락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또는 포용이나 화합보다는 선명성을 내세우는 그의 스타일 때문일 수도 있다. 또한 통제되지 않는 당대표의 불안정성 해소나, 과거 성상납 의혹 등이 그의 몰락을 가져왔을 수도 있다.
◆다시 이카로스로 = 이카로스는 너무 낮게 날아도, 너무 높이 날아도 추락한다는 경고를 받았다.
이 대표 역시 대선이나 지선 어느 것 하나라도 패했다면 정계은퇴를 각오해야 했다. 그는 전당대회 출마하며 ‘독이 든 성배’, ‘호랑이 등에 탔다’는 이야기를 종종했다. 당대표가 돼도 선거에서 지면 정치인생이 끝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대선, 지선에 승리하면서 그의 날개는 물기에 젖는 것은 피할 수 있었다. 다만 지선 승리 후 정당혁신을 약속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이 대표는 더 많은 권력을 얻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박근혜 정부 비선농단을 거치면서 대통령 또는 대통령 측근에 휘둘리지 않는 여당을 만들어야겠다는 각오일 수도 있지만, 그는 윤핵관 또는 당의 주류와 대립각을 세웠다. 이 과정에서 그의 어깨의 밀랍들은 녹기 시작하며 깃털은 하나 둘 떨어져나갔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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