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운4구역 내 '예지동 시계골목' 광장시장과 더불어 예지동 터줏대감
시계골목 상인들... 세운스퀘어, 을지로, 종로 등으로 이주
재개발 공사 펜스에 자신들 이주 주소 남겨
[아시아경제 김군찬 인턴기자] 재개발이 진행 중인 서울시 종로구 세운4구역은 철거공사가 한창이다. 현재 공사장 펜스로 가로막혀 안으로 진입할 수는 없다. 세운상가 2층 계단에서 철거 과정을 지켜볼 수 있을 뿐이다. 세운상가와 광장시장 사이에 자리한 이곳은 한때 시계, 귀금속, 조명 등의 부품을 수리하고 판매하는 건물들로 가득했다. 그 중 '예지동 시계골목'은 광장시장과 더불어 예지동을 대표하는 장소였다. 이제는 세운상가 2층 계단에서 예지동 시계골목의 흔적을 어렴풋이 찾을 수 있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가 시행을 맡아 개발을 진행 중인 세운4구역은 오는 8월까지 철거될 계획이다. 이곳에는 오피스, 오피스텔 등이 결합한 복합상업건축물이 내년 3월 들어설 예정이다.
예지동 시계골목 상인들은 작년 12월을 기점으로 시작된 철거 공사로 인해 모두 예지동을 떠나야 했다. 이전부터 예지동 시계 산업에 대한 추적 연구를 진행하며 시계골목 이주지도를 제작한 스타트업 청년기업 '앵커랩'에 따르면 2021년 한 해 동안 시계골목 매장의 35%가량은 인근에 자리한 임시대체 사업장인 세운스퀘어로 이주했다. 또 나머지 상인들은 을지로, 종로, 동대문, 동묘, 소공지하쇼핑센터. 남대문 시장 등으로 떠났다.
철거공사가 진행 중인 세운4구역 주위 펜스에는 예지동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시계골목 상인들의 절박한 목소리가 담겨있다. 시계골목 상인들은 수십 년간 생업을 유지했던 예지동 가장 밖 테두리에 놓인 공사 펜스에 자신들의 이주 흔적을 남겼다.
3대째 시계 수리 가업을 이어오며 명성 롤렉스를 운영하는 오종진씨(53)는 작년 7월 시계골목을 떠나 종로4가 혼수 지하쇼핑센터로 터를 잡았다. 오 씨는 이주 정보를 공사 펜스에 적은 이유에 대해 "다른 데서 개척한다는 게 쉽지는 않아서 절박한 거다"라며 "철거되고 있는지 모르고 시계골목 찾아온 분들이 전화 오고 그러지 않을까 해서 펜스에 적었다"고 말했다.
40년 넘게 예지동에서 일양사를 운영하던 박만봉씨(70)도 작년 12월에 결국 을지로 지하쇼핑센터로 자리를 옮겼다. 박 씨 역시 공사장 펜스에 새로운 가게 정보를 적었다. 그는 "옛날부터 오시는 단골들은 계속 오는데 새로 오는 사람들에게도 여기가 알려지고 홍보가 돼야 한다"며 "예전에는 기본적으로 시계 골목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오지만 여기는 제한이 있다"고 말했다.
세운지구 재개발은 인근 상인들 사이에서는 익숙한 문제다. 앞서 오세훈 서울 시장은 2006년 취임 후 세운지구 재개발을 공약1호로 지정했다. 하지만 박원순 전 시장은 2014년 개발계획을 취소하고 도시재생으로 노선을 바꿨다.
그러다 지난해 오세훈 서울 시장이 다시 당선되면서 그동안 진통을 겪었던 세운지구 재개발은 급물살을 탔다. 박 씨는 "10년 전에 재개발한다고 일부는 이주했었다"며 "마지막까지 있어 본다고 하다가 이제는 방법이 없으니까 마지막까지 있던 사람들도 흩어졌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시계골목이 사라진다는 것은 산업의 생태계가 무너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서로 연결돼 하나로 묶여있던 도심 제조업 산업이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명성 롤렉스를 운영하는 오 씨는 "인프라 구축이 잘 돼 있어 주위에서 부품 구하기도 쉽다"며 "전문으로 하는 분들에게 위탁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데로 벗어나지 못한다"고 말했다.
상인뿐만 아니라 소비자도 마찬가지다. 30년 동안 예지동에서 승기사를 운영하다 작년 6월 광장시장으로 자리를 옮긴 최승규씨(55)는 "예지동은 우리나라 시계의 메카였는데 사라지면 손님들도 불편하다"며 "일반인들이 배터리를 교환하거나 유리를 가는 것들을 우리에게 맡기면 모두 편하다"고 설명했다.
다른 곳으로 이주했지만 낮은 안정성으로 생업을 유지하기 어려운 시계골목 상인들도 많다. 서울시에서 진행한 입찰에서 낙찰을 받은 오종진씨는 지하상가에서 5년 동안 가게를 운영할 권리를 보장받았다. 하지만 5년 후에도 운영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오씨는 "5년 계약이라는 점은 좋지만 저희로서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쫓겨나서 여기 왔는데 5년 후에 또 쫓겨나는 것 때문에 불안하다"고 토로했다.
더 열악한 상황에 놓인 이들은 노점상들이다. 시계기술자, 노점상, 중간상인 등은 유기적인 관계를 이루며 시계골목에서 하나의 생태계를 형성했었다. 시계골목에서 40년 동안 노점상을 운영하다 작년 6월 세운스퀘어 2층에서 대체 상가 자리를 얻은 박상우씨(78)는 "가게 하는 상인들은 보상금을 많이 줬는데 우리는 (상대적으로) 별로다"라며 "원래 시계골목에 노점이 50군데 있었는데 주기로 했던 전기도 끊어버리니 노점들이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 현재 이주한 노점상은 세운상가 1층 근처에서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시계골목에 노점상을 운영하는 이들은 50여 명 정도 있었는데 현재는 10명 이내 상인들만 자리를 지키고 있다.
김군찬 인턴기자 kgc600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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