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아 살해 두 달에 한번꼴
영아 유기 한 달에 열번꼴
"대부분 원치않은 임신 미혼모"
징역형 집행유예 선고 많아
"인식 개선·비밀출산제 필요"
[아시아경제 조성필 기자, 유병돈 기자] #1. 지난 13일 서울 동대문구 한 아파트단지 쓰레기 분리수거장에서 탯줄 달린 갓난아이가 숨진 채 발견됐다. 신생아 시신은 청소 용역업체 직원이 쓰레기봉투를 수거해 차량에 싣던 중 봉투가 터져 내용물이 쏟아지면서 나왔다고 한다. 경찰은 신생아 시신을 유기한 10대 미혼모 여성 신원을 확인하고,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2. 앞선 11일엔 경기 평택시에서 20대 미혼모 여성이 홀로 아이를 낳은 뒤 변기에 넣어 살해하고 뒷산에 유기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이 여성은 경찰에서 "아기를 키울 여건이 되지 않아 유기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한다. 경찰은 숨진 아기의 정확한 사망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시신 부검을 의뢰한 상태다.
갓 태어난 생명을 앗아가는 영아 살해·유기 사건은 끊이지 않고 있는 우리 사회의 한 비극적 단면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영아살해·유기 사건은 2011~2020년 10년 동안 국내에서 각각 97건, 1310건에 달했다. 최근 3년 통계 자료를 살펴보면 영아살해와 유기 발생 건수는▲2018년 7건, 183건 ▲2019년 8건, 135건 ▲2020년 5건, 107건으로 감소세다. 다만 여전히 적지 않은 수치란 지적이다. 통계상 수치는 2달에 한 번 꼴로 영아살해 사건이 일어나고, 영아유기는 1달에 10번 꼴로 발생하는 걸 의미한다.
영아살해·유기 사건은 모두 재판에 넘겨진다. 법원에선 상당수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하곤 한다. 이 같은 사법부 판단에는 피고인 대부분이 미혼모로, 원치 않은 임신과 경제적 이유로 우발적 범행에 이르는 일련 과정에 사회와 국가 책임도 상당 부분 존재한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실제로 2020년 당시 서울고법 형사12부 윤종구 부장판사는 생후 14일된 아이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기소된 20대 미혼모 A씨에 대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하면서 "국가와 사회의 무관심이 영향을 미쳤다. 피고인에게 실형을 선고하는 건 가혹하다고 판단된다"고 판시했다.
같은 해 수원지법 성남지원 김수경 판사도 영아살해 혐의로 기소된 미혼모 B씨에 대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김 판사는 양형 이유를 통해 "피고인은 분만직후 수치심과 가족으로부터 받게 될 책망과 비난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 사건 범행에 이르게 됐다"며 "범행으로 가장 고통받을 사람은 결국 피고인 본인으로서 앞으로도 큰 상처로 남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법원 지적과 같이 현재 우리 사회는 출산 전후 빈곤 후유증 등을 겪는 산모에 대한 제도와 지원책이 턱없이 부족한 현실에 직면해 있다. 가정복지시설과 입양숙려기간 모자지원 제도가 대표적이다. 가정복지시설에 입소할 경우 저소득 한부모가족 복지급여와 생활보조금을 합해 월 25만~35만원가량만 지원되고, 최근 도입된 입양숙려기간 모자지원 제도 역시 지원금이 월 40만~50만원에 그치고 있다. 입양 전 아동 위탁 부모에게 지원되는 월 100만원보다 훨씬 적은 금액이다. 정부가 영아살해·유기 범죄 조치 차단을 위해 출생통보제도 도입을 앞두고 있으나 이마저도 산모들이 출산 사실을 숨기기 위해 의료 기관이 아닌 탈법적인 곳으로 향할 여지를 높인다는 한계가 존재한다.
전문가들은 사회 전반적 인식에 대한 개선이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원치 않는 임신으로 아이를 출산한 여성이 육아를 오롯이 책임져야 하는 부담감 등을 떨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는 것이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정서상 쉽지 않겠으나 비밀 출산제를 도입해 익명으로 출산할 수 있게 해주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며 "혼외 출산이나 10대들의 출산 시 이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도록 하나의 길을 열어주는 셈"이라고 말했다.
오영나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대표도 "임신 중단, 흔히 말하는 ‘낙태’를 바라보는 시각부터 달라져야 한다"며 "아이를 낳아서 유기하고, 살해하는 것은 범죄지만, 임신 중단은 범죄가 아닌 만큼 양육할 자신이 없는 산모에게는 임신 과정에서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줄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성필 기자 gatozz@asiae.co.kr
유병돈 기자 tamond@asiae.co.kr
꼭 봐야할 주요뉴스
2009년생부터는 평생 담배 못 피워…"미친 일" 법 ... 마스크영역<ⓒ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