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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태형의 객석에서]봄 물들인 교향악…꽃은 져도 향기는 남았다

최종수정 2022.05.20 13:48 기사입력 2022.05.13 07:14

2022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
전국 30개 오케스트라 참여, 4월 한달간 축제로 개최
많은 곽객들, 콘서트홀 객석 채워…앞뜰 대형스크린에서도 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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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잎이 흩날리고 신록이 파릇한 4월. 클래식 음악 무대는 2022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로 뜨거웠다. 1989년 예술의전당 음악당 개관 1주년을 맞아 시작된 이 축제는 이번에 34번째를 맞았다. 전국 30개 오케스트라가 참여해 차례로 무대에 올린 ‘봄의 교향악’으로 클래식 팬들의 감성이 충만했다. 4월 2일 개막해 24일 폐막하는 이 축제의 프로그램 중 17일까지 열 개의 공연을 객석에서 지켜봤다.


2일 개막공연은 장윤성 지휘 부천필의 연주였다. 올해 탄생 200주년 맞은 프랑크와 탄생 150주년 본 윌리엄스, 스크랴빈을 프로그램으로 정했다. 프랑크 교향시 ‘저주받은 사냥꾼’은 뻑뻑한 관악 총주가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줄거리를 상기시켰다. 본 윌리엄스 ‘토머스 탈리스 주제에 의한 환상곡’은 현악 오케스트라 속에 반다처럼 현악군을 따로 위치시켜서 이들이 주고받는 부분이 눈에 보이게 연주해 흥미로웠다. 스크랴빈 ‘법열의 시’에서는 온갖 악기들이 어우러지면서 광채를 띠었다. 오디오로는 들리지 않던 것들이 실제 연주에서 강렬하게 마음을 흔들었다. 쇼스타코비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협연한 임지영이 주인공이었다. 무녀같은 신들린 연주와 뼛속까지 깊어지는 고독과 번민을 근사하게 표현했다.

지난 4월 5일 마시모 자네티가 지휘한 경기필하모닉의 공연. 사진제공 = 예술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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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마시모 자네티가 지휘한 경기필의 공연에서 임주희는 라벨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했다. 기교는 번뜩였지만 라벨 특유의 향기는 아쉬웠다. 악장 정하나의 활약이 돋보이는 가운데 레스피기 ‘로마의 분수’가 준수했지만 압도적이진 않았다. 드뷔시 ‘바다’ 역시 연주에서 단원들의 집중력과 확신이 아쉬웠다.

7일 제임스 저드가 지휘한 대전시향 공연에서는 피아니스트 김수연이 모차르트 협주곡 13번을 협연했다. 김수연은 내리친다기보다 가만히 누르는 듯한 우아한 타건으로 세상을 움직이는 작지만 큰 소리를 들려줬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영웅의 생애’는 놀랄 만큼 훌륭한 연주였다. 제임스 저드는 숱한 음반에서 들었던 해석과는 다른, 명쾌하게 정리하는 비팅으로 정원사가 자라난 풀을 다듬듯 슈트라우스 음악의 생김새를 청중 앞에 보여줬다. 악장 김필균의 바이올린이 달콤한 톤으로 정적에 유약을 발랐고 이에 조응하는 호른을 비롯한 금관군이 터졌다. 제대로 연주된 슈트라우스의 모습을 오랜만에 봤다.


9일 KBS교향악단 지휘봉은 서울시향 수석객원지휘자를 역임한 마르쿠스 슈텐츠가 잡았다. 2021년 윤이상 콩쿠르 우승자 카리사 추가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4번을 협연했다. 작은 체구에 음량도 작은 반면 야무진 활쓰기였지만 풍성함과 윤기가 부족했고 가끔 새된소리를 냈다. 브루크너 교향곡 4번에서 슈텐츠의 해석은 브루크너적이라 말할 수 있는 금욕적이고 소박한 연주와는 거리가 멀었다. 일필휘지로 쓴 초서 같기도 하고 ‘왕궁의 불꽃놀이’ 같이 발산하는 축제적 연주에 가까웠다. 지루해지기 쉬운 2악장의 잘 정리된 단정함이 돋보였고 객원악장을 비롯해 현악군의 트레몰로가 깊이 있었다. 가끔 호른의 눈에 띄는 실수가 있었지만 곡 전체의 펄스를 해칠 정도는 아니었다. 4악장에서 숭고함을 자아내는 하이라이트인 금관의 코랄 풍 연주 뒤 현악군이 더 유현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이병욱이 지휘한 인천시향은 파비올라 김과 월튼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했다. 사진제공 = 예술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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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이병욱 지휘 인천시향. 파비올라 김이 협연한 월튼 바이올린 협주곡은 다채롭고 현란한 만화경 같은 작품이었다. 실제 연주는 음반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다이내믹 레인지와 넓은 조망을 제공했다. 브루크너 교향곡 9번은 금관의 화력과 현악군의 분발로 출발이 좋은 편이었다. 호른을 비롯한 금관군의 블렌딩이 투명했다. 2악장까지는 그럭저럭 꾸려갔지만 명확히 처리되지 못한 부분들로 균열이 누적됐고, 3악장 바그너튜바들의 졸연은 치명적이었다. 그와함께 쌓아가던 곡의 빌드업이 힘을 잃었다.


13일 홍석원 지휘 광주시향의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1번은 올해 교향악 축제 베스트로 꼽을 만했다. 스네어드럼과 팀파니가 광포하게 날뛰고 트럼펫이 절규하는 가운데 심벌즈의 날카로운 타격음이 현으로 옮겨와서 일사불란하게 쌀쌀맞은 냉소를 토해냈다. 들으면서 귀가 얼얼했고 이게 꿈이 아닌가 의구심 속에 얼어붙었다. 므라빈스키와 레닌그라드 필, 스베틀라노프와 소비에트 국립교향악단의 실황앨범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인정사정 없는 휘몰아침과 음량을 예술의전당에서 들을 수 있어 비현실적이었다.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연주 사상 역대급 순간들이었다. 몇 년 전까지 종종 실망스런 연주를 들려주곤 했던 광주시향이 달라진 모습을 제대로 보여줬다. 지휘자 홍석원과 단원들이 얼마나 절치부심했는지를 느낄 수 있는 연주였다. 이래서 음악은 들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한편 1부의 멘델스존 피아노 협주곡 1번에서 이혁의 연주는 아기자기하고 물 흐르는 듯 매끄러웠다. 과연 월드 클래스였다. 독주회 이후 더 능란해진 듯했는데 오케스트라와 호흡은 어긋나는 부분이 많았다.

지난 4월 14일 마르코 레토냐가 지휘하는 서울시향 연주는 유투브 스타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팬을 가진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이 브루흐 협주곡 1번을 협연했다. 사진제공 = 예술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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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마르코 레토냐가 지휘하는 서울시향 연주는 유투브 스타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팬을 가진 한수진이 브루흐 협주곡 1번을 협연했다. 오랜만의 협연이었지만 컨디션은 엉망이었다고 한다. 몸살로 링거를 맞고 무대에 올라 투혼을 보여줬다. 연주만을 봤을 때 한수진은 움켜쥐려 하고 레토냐는 놓아주려 하는 모양새였다. 독주자의 감정적인 접근과 지휘자의 관조적인 해석이 만나는 흥미로운 지점도 있었다. 만회해야겠다는 의욕이 강할수록 놓아줘야 자연스러워질 수 있다는 걸 배웠다. 교향악축제 통틀어 협주곡 반주만 놓고 보면 서울시향이 최고였다. 베버 오베론 서곡에서 전 RCO 현 유럽 체임버 수석 야스퍼 드 발이 걸어나오면서 연주한 호른 퍼포먼스는 ‘호른이 든든하니 걱정 마’ 하고 얘기하는 듯했다. 깔끔하고 호쾌하게 정리가 잘 된 베버 서곡을 오랜만에 들었다. 프로코피예프 ‘로미오와 줄리엣’ 모음곡은 화려하고 깨끗한 무대에서 연극을 보는 듯했다. 기승전결에 맞춰 적재적소에 잘 계산된 수치대로 배분이 된 밸런스가 돋보였다.

16일에는 윤한결이 지휘하는 국립심포니가 연주했다. 브람스 협주곡 1번에서 박재홍은 육중한 체구를 실어 건반에 꽂았다. 외국 피아니스트, 특히 러시아 피아니스트를 연상시켰다. 타건을 거듭하며 지난 시간들은 땀이 되어 얼굴에 흘러내렸다. 오종성의 곡 ‘미미’를 들으면서 벤저민 브리튼의 작풍을 상상했다. 작곡가이기도 한 지휘자 윤한결이 수정을 맡았다.


스트라빈스키 ‘페트루슈카’는 젊은 지휘자가 암보로 지휘를 무사히 마쳤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성과였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지휘자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지는 않은 연주회였다. 악단 전체의 거대한 관성에 서핑보드를 타듯 하는 지휘였다. 앞으로 윤한결이 연주를 거듭하며 본인의 스타일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지난 4월 17일 정주영이 지휘하는 원주시향이 클라리네시스트 김상윤과 코플랜드 클라리넷 협주곡을 협연했다. 사진제공 = 예술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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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에는 정주영이 지휘 원주시향이 연주했다. 김상윤이 협연한 코플랜드 클라리넷 협주곡은 이날 공연의 백미였다. 올해 교향악축제 베스트 협연 중 하나로 꼽고 싶다. 김상윤의 클라리넷은 직선과 곡선을 다양하게 그리며 본질적으로 우아한 이 작품을 잘 해석해냈다. 실연으로 처음 들었던 이 곡은 음반으로 감상했던 번스타인/뉴욕필과 녹음한 스텐리 드러커 연주보다도 마음에 들었다. 나머지 곡들은 기대를 밑돌았다. 도발적이고 왠지 퇴폐적이어야 할 라벨 ‘라 발스’에서 자신감이 떨어지고 중구난방이었다. ‘캔디드 서곡’은 좀더 신 나고 과감했으면 좋았을 것 같았다. 슈트라우스 ‘장미의 기사’ 모음곡은 우리나라 악단 치고는 준수한 연주였지만 외국 악단이 들려줬던 샴페인 향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올해 부임한 정주영 지휘자가 자기 색깔을 찾는 데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단원들의 수가 적어 편성을 크게 하면 일관적인 색채를 유지하기 힘든 점도 걸림돌이다.


반환점을 돌아 종막으로 향하는 봄의 교향악축제는 코로나 이후 기지개 켜는 공연 시장의 상징처럼 보였다. 삼삼오오 많은 관객들이 예술의전당을 찾아 객석을 채웠고, 입장하지 않은 관객들도 콘서트홀 앞뜰의 대형 스크린에서 공연을 구경했다.

공연 전에는 지휘자, 연주자 등이 무대 한켠에 등장해 그날 공연에 대해서 설명해주는 프리토크 시간이 있어 편안하고 친절한 분위기를 더해주었다.


향후 교향악축제에 참가하는 오케스트라들에게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협주곡에서도 최상의 성과를 보여줬으면 하는 것이다. 1부의 협주곡에는 성의가 없거나 연주가 잘 맞지 않는 걸 많이 봤다. 2부 순서인 메인 레퍼토리에 힘을 쏟아서 그랬으리라 생각한다. 콩쿠르 우승자들을 비롯한 우수한 협연자들이 무색한 결과였다.


교향악축제는 내년부터 6월에 펼쳐진다. 쾌적한 초여름 저녁 바람에 예술의전당을 찾은 더 많은 사람들이 야외에서도 동참하고 두런두런 음악 이야기꽃을 피울 것으로 기대된다.


류태형 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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