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자체로 책 전체 내용을 함축하는 문장이 있는가 하면, 단숨에 독자의 마음에 가닿아 책과의 접점을 만드는 문장이 있습니다. 책에서 그런 유의미한 문장을 발췌해 소개합니다. - 편집자주
여기, 뉴욕과 베를린에서 철학을 공부했지만, 한 번도 전문적으로 배워 본 적 없는 ‘그림’을 업으로 삼은 사람이 있다. 뉴욕 패션브랜드 ‘선대스쿨’과 지속적으로 협업하고 있는 그는 그간 수제 막걸리 ‘달빛막걸리’, 춘천 북스테이 호텔 ‘소락재’ 등의 로고 디자인을 맡았고, ‘호텔 카푸치노’, 독립책방 ‘풀무질’ 등의 벽화도 그렸으며, 넷플릭스 '킹덤' 전시, '장윤정의 BEST 2020' LP 커버와 '돈패닉' 잡지 커버 등의 작업을 해 왔다. 그렇다고 그림만 그리는 것도 아니다. 공유 주거 스타트업 ‘셀립’의 디자인과 총체적 브랜딩도 담당하고 있으며, 과거에는 비건을 위한 사찰 음식점을 창업한 적도 있다. 책은 저자가 그간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무수히 외쳐 온 다짐이자, 실패가 무섭고 두려워 시도조차 않는 사람들에게 주문을 건넨다.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나답게 도전하고 실패하고 또 도전해 온 경험을 풀어놓는다.
거대한 꿈 없이 검소하게 산다는 것은 미래나 돈에 묶여서 살지 않는다는 뜻. 그 어디에도 속박되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그들은, 그 덕분인지 정말 재미있게 잘 놀았다. 실제로 베를린은 다 큰 어른이 가장 재미있게 놀 수 있는 도시이고, 베를린 사람들은 향락의 방법과 수단에 있어 전문가들이다. 베를린의 친구들은 늘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놀았고, 이보다 더 즐거울 수 없을 만큼 매일을 행복해했다. 꿈과 돈 없이도 이토록 즐겁고 재미있게 살 수 있다니! 꿈을 향해 질주하는 삶만이 보람차고 의미 있다고 여겼던 나로서는 충격일 수밖에 없었고, 이것이 내가 받은 첫 번째 문화 충격이었다.
32-33쪽 #1. 사람: 꿈과 돈 없이도 재미있게 살 수 있다니! 중에서
다소 특이한 점은 친구들과 대화할 때, 채식주의라는 거대한 이념이나 육식의 옳고 그름에 대한 담론을 나눈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에게 채식이란 단지 개인의 취향에 기반한 선택일 뿐이었다. 예를 들어 건강과 피부 관리 때문에 채식을 하는 친구는 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모피 코트를 입고 다녔고, 육류 제조 시스템에 대한 불신으로 채식을 하는 친구는 제조 과정의 투명성이 보장되는 고기에 한해서는 가끔씩 육식을 했다. 베를린에서 채식주의는 옳고 그름을 따지는 이념의 문제가 아닌 단순한 선호도의 문제였고, 그것이 채식주의에 대한 나의 생각을 바꾸어 놓았다.
56쪽 #5. 채식의 성지에서 고기와 이별하다 중에서
세상에는 두 가지의 ‘미’, 재미와 의미가 존재한다고. 재미와 의미의 조합이라니! 인생은 재미만 좇기에는 허탈하고, 의미만 찾기에는 피곤하다. 하지만 재미와 의미를 함께 추구한다면? 이토록 완벽한 삶의 동력은 더 이상 불가능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의 삶을 연소시키는 주된 동력은 칠 대 삼의 비율로 조합된 재미와 의미다.
120쪽 두 가지 ‘미’와 완전연소 중에서
‘몸은 번잡하게, 마음은 평온하게’라는 말이 있듯이, 힘들 때는 최대한 생각하지 않는 편이 좋은 것이다. 좋을 때 역시 마찬가지다. 좋고 재미있는 상황에서는 굳이 이유를 찾을 필요가 없다. 그저 순간에 집중해 즐기는 것이 현명한 접근이라고 생각한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상황은 ‘재생 중’, 질문을 던지는 행위는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른 것’이라고 비유할 수 있는데, 행복한 순간에 ‘왜’를 묻는 것은 그 상황을 정지시켜 버리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의미를 찾는 일과 다르게, 재미를 찾는 일에서는 ‘왜’를 물을 필요가 없다. 이때 필요한 질문은 오직 하나, ‘Why Not’이다. 이 말은 ‘왜 안 돼?’, ‘안 될 게 뭐 있어?’, ‘뭐, 어때?’, ‘에라, 모르겠다’ 등으로 번역된다. 다시 말해 이성보다는 본능과 감성을 따르게 만드는 질문이자 주문이라고 할 수 있다. ‘왜 안 돼?’와 함께라면 우리는 미지의 세계로 과감하게 뛰어들 수 있다.
155-156쪽 삶에 재미를 더하는 Why Not 중에서
삽질하면 어때 | 박연 지음 | 세미콜론 | 280쪽 | 1만6000원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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