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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호러 영화 대가 팀 버튼 감독 50년의 발자취
'가위손' 에드워드 등 영화속 주인공 대부분 괴상하고 산만
죽은자·악·비정상 흘러넘치지만 문 열면 인간·선·기쁨과 연결
"다른 세상에 가면 경계 느껴…표면적, 금방 벗겨지게 마련"
'더 월드 오브 팀 버튼' 특별전, 필기노프·스케치·사진 520여점

판타지·호러 영화 대가 팀 버튼 감독

판타지·호러 영화 대가 팀 버튼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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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스미스 씨는 즐거운 소식을 들었어요. 스미스 부인이 엄마가 될 거라는, 그렇다면 스미스 씨는 아빠가 되는 거죠! 하지만 커다란 즐거움은 무언가 잘못됐어요. 사람이 아니라, 로봇이 태어난 거죠. 따듯하지도 귀엽지도 않았고, 피부도 없었어요. 대신 차갑고 얇은 깡통으로 덮여 있었죠. 머리에는 철사와 튜브 같은 게 막 삐져나와 있었어요. 그냥 누워서 쳐다보고만 있을 뿐, 살아있지도, 죽어 있는 것도 아니었어요. (…) 스미스 부인은 남편을 혐오했고, 남편도 마찬가지였어요. 아내의 불륜을 용서할 수 없었어요. 바람을 피우다니, 그것도 주방 기구와. 그리고 로봇 소년은 자라서 젊은이가 됐죠. 가끔은 오인을 받기도 했어요. 쓰레기통으로."


팀 버튼 감독이 쓴 ‘로봇 소년’의 일부다. 잔혹하고 슬픈 운명을 가리킨다. 어디 그뿐인가. 버튼 감독이 창조한 영화 속 주인공 대부분은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 세상에서 외롭게 투쟁한다. 형태는 모두 괴상하고 산만하다. 극단적이고 상징적인 이미지들로 점철돼 또 다른 세계를 조성한다. 죽은 자와 악, 슬픔, 비정상, 비현실이 흘러넘친다. 그렇다고 단절된 공간은 아니다. 문 하나만 열면 인간과 선, 기쁨, 정상, 현실과 자유롭게 연결된다. 단지 모두가 주저하거나 꺼릴 뿐이다.

서글프고 부조리한 현실이 잘 나타난 작품으로는 ‘가위손’이 손꼽힌다. 세상에 버려진 소년 에드워드(조니 뎁)에 관한 동화 같은 이야기다. 그를 창조한 과학자(빈센트 프라이스)는 손을 만들어주지 못한 채 죽어버린다. 에드워드의 손목에는 큰 가위가 붙어 있다. 그것으로 물건을 만지고 느낀다. 타인과 접촉하거나 소통할 수 없는 상태다. 자기 몸을 통제할 수도 없다. 그래서 자신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사람들과 불협화음을 일으킨다.


영화 '가위손' 스틸 컷

영화 '가위손'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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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의 본질은 고립된 10대 소년이다. 화장품 외판원(다이앤 위스트)이 발견하고 집으로 데리고 올 때까지 언덕 위의 고딕풍 저택에서 혼자 살았다. 교외에 살게 된 그는 따뜻하게 대하는 마을 사람들을 위해 정원을 가꾸는 등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을 해주며 답례한다. 사람들이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축복이었다.


버튼 감독은 "표면적으로는 주변 사람들 틈에서 아픔을 겪고, 그것을 통해 성장해나가는 이야기"라고 밝혔다. "다른 세상에 가면 사람들의 경계를 느낄 수 있다. 자신을 알리기까지 시간도 꽤 걸린다. 이 영화에서는 만나자마자 ‘어, 안녕. 잘 지내지?’라고 인사부터 한다. 그게 아주 표면적이라는 거다. 금방 벗겨지게 마련이다."

영화 '가위손' 스틸 컷

영화 '가위손'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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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프로덕션 디자인으로 일찍이 암울한 기운을 예고했다. 교외 주택 지역이 대표적인 예다. 주택들의 표면은 녹색, 분홍색, 하늘색 등 다채로운 색으로 칠해졌으나 하나같이 탁하다. 창문도 작아서 덜 친근해 보인다. 가면을 연상케 해 무언가를 숨기는 듯한 인상을 준다. 버튼 감독이 교외 마을에서 자라며 느꼈던 감정들이 집약돼 있다.


"사람들이 그렇게 가까이 붙어 지내지만, 각자의 참모습이 어떤지는 전혀 알 수가 없다. 언제 바뀔지 모르는 거다. 누군가와 가까이 지내면서 동시에 거리를 두는 건 불가능하다. 그게 교외 주택 지역이다. 정말 모든 것을 가려버린다. 어쩌면 사람들은 평범함이란 이름으로 그런 이해할 수 없는 면들을 가리고 있을 것일 수도 있다."


‘더 월드 오브 팀 버튼’ 특별전은 빙글빙글 꼬인 혓바닥, 밖으로 튀어나와 방황하는 눈동자, 기괴한 광대 등으로 유머와 공포를 동시에 전한다. 영화 ‘빈센트(1982)’, ‘프랑켄위니(2012)’ 등에 등장한 낯익은 캐릭터들로 추억과 꿈도 자극한다. 사진=이종길 기자

‘더 월드 오브 팀 버튼’ 특별전은 빙글빙글 꼬인 혓바닥, 밖으로 튀어나와 방황하는 눈동자, 기괴한 광대 등으로 유머와 공포를 동시에 전한다. 영화 ‘빈센트(1982)’, ‘프랑켄위니(2012)’ 등에 등장한 낯익은 캐릭터들로 추억과 꿈도 자극한다. 사진=이종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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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배움터 지하 2층 디자인전시관에서 오는 9월 12일까지 하는 ‘더 월드 오브 팀 버튼’은 역행적 여정을 제공한다. 목적지는 버튼 감독이 만든 작품들의 원천. 지난 50여 년간 발자취를 필기 노트, 드로잉, 스케치, 회화, 데생, 사진, 캐릭터 모델 등 520여 점으로 보여준다. 현실의 모습이 보이는 대로 묘사된 흔적은 없다. 하나같이 개인적 감정에 따라 새롭게 해석돼 표현됐다. 예컨대 캐릭터는 사람, 동물, 신화 속 캐릭터 등의 특징이 뒤죽박죽 섞여 있다. 버튼 감독은 훗날 동정심을 불어넣어 독보적 스타일의 근간을 완성했다. 고딕풍 풍경과 악마 같은 광대,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 세상에서 외롭게 투쟁하는 인물 등이다.


버튼 감독은 이들에게 동화라도 된 듯 자신을 "겉모습은 추하지만 속은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한다. 대다수 관객의 생각도 다르지 않다. 조니 뎁의 단순하면서도 우아한 연기나 고전적인 내러티브 때문에 에드워드를 버튼 감독이라고 받아들이고 이해했다. 동화의 이야기 구조를 바탕으로 가장 개인적인 영화를 만들면서도 보편적인 주제를 표현해낸 셈이다.


영화 '가위손' 에드워드 스케치

영화 '가위손' 에드워드 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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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튼 감독은 1990년 미국 여성 잡지 ‘미라벨라’에 영화 만들기에 대한 자신만의 접근방법을 공개한 적이 있다. 풍부한 상상력과 환상적인 시각효과를 연출한 동력에 관한 새로운 해석이었다. 누군가가 자기 이상으로 몽환적이면서 그로테스크한 영화로 새로운 예술 장르를 개척하길 바라는 마음도 담겨 있었다.


"어린이들이 그림을 그리거나 뭔가 창조적인 활동을 하는 것은 자신을 알리고 싶은 욕구 때문이다. 스스로를 위해서,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리는 것 말이다. 사실 다른 사람들이 내 영화를 보는 게 무섭다. 항상 싫었다. 뭐랄까. 내가 깨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자신을 말로 표현하는 데 서툰 사람이고, 뭐 그 외에도 이런저런 일을 잘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그 모습을 그대로 봐주길 바라는 거다. 작품 활동을 멈추면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물론 사람들은 성공이나 실패만 따지지,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봐주지 않는다. 점점 실제의 자신과 다른 모습으로 알려진다는 건, 꽤 슬픈 일이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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