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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보기] '우리들의 블루스' 이정은의 인생, 차승원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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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생선장수 연기한 이정은
차승원, 삶에 찌든 은희의 첫사랑
노희경 작가 '우리들의 블루스'
제주도서 나고 자란 중년 청춘의 이야기
재력 여성 클리셰 깬 캐릭터 신선

사진=tvN '우리들의 블루스'

사진=tvN '우리들의 블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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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이슬 기자] 푸석푸석한 갈색 단발머리, 청바지에 목장갑을 낀 은희(이정은 분)가 큰 칼을 들고 생선을 턱턱 썬다. 제주도 시장에서 은희수산을 운영하는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오늘 갈치 좋아요"를 외친다. 일은 고되지만 시종일관 노래를 중얼거리면서 노동의 시름을 잊어버린다. 결혼은 안 하고 열심히 돈만 벌었다. 현금 자산만 20억원. 20대에 산 서귀포 땅에 건물이 올라가면서 부자가 됐지만, 세월은 흘러 40대 후반에 이르렀다.


제주에서 1녀4남 중 장녀로 태어난 은희는 자수성가 했지만, 부모 형제의 사정을 지나치지 못했다. 열심히 생선을 팔아 동생들 대학도 보내고 장가 밑천까지 다 해줬다. 결혼해서도 아무렇지 않게 집을 사줄 것을 요구하는 동생에게 "고마운 줄 모른다"며 욕을 한 바가지 퍼붓는다.

어느 날 은희는 고등학생 때 첫사랑 한수(차승원 분)와 마주친다. 트럭을 몰고 은희가 백마탄 왕자처럼 나타난다. 한수는 제주의 한 은행 지점장으로 발령받아 근무하게 되면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서울로 유학간 그는 결혼 후 아내와 맞벌이하며 대학교 학자금 융자와 결혼자금 융자를 갚아나갔다. 딸의 재능을 발견하고 해외로 골프 유학을 보내면서 기러기 아빠가 됐다. 코치비, 체류비, 대회 경비 등 들어가는 돈이 만만치 않다. 집 살 때 퇴직금도 70%나 미리 받고, 서울 아파트까지 팔았지만 쪼들리는 삶에서 벗어날 순 없다.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 돈을 꿔달라고 사정하지만, 빚쟁이가 된 친구에게 순순히 돈을 꿔주는 사람은 없었다.


은희와 한수는 제주에서 재회한다. 한수는 동창을 통해 은희가 엄청난 부자가 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에게 접근한다. '내가 지금 뭐 하는 건가' 싶다가도 딸과 영상통화를 하고 나면 무너진다. 속을 알리 없는 은희는 여전히 다정하고 잘생긴 한수에게 "네가 그 모습 그대로 있어 줘서 고맙다"며 밝게 웃는다. 한수는 은희의 순수함에 죄책감이 밀려온다.


두 사람은 함께 배를 타고 학창 시절 수학여행 갔던 목표로 여행을 떠난다. 추억의 장소를 찾아 솜사탕도 뜯어먹으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은희는 한수를 바라보며 설렌다. 아내와 별거 중이라는 말이 자꾸 귓가에 맴돌며 자라나는 기대를 겨우 쳐낸다. 서로 다른 감정과 싸우던 두 사람은 피할 수 없는 현실과 마주한다. 이들은 경쾌한 방식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으며 또 한번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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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미디어에서 돈 많은 여성은 대부분 '사모님'으로 소비돼왔다. 기사 딸린 럭셔리 카에 명품으로 치장한 화려한 스타일. 우아하게 관리된 손톱과 머리카락, 진하게 화장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사모님의 직업은 딱히 알 수 없지만, 남편은 꼭 어마어마한 재력을 지닌 부자로 그려졌다.

그런 점에서 tvN 토일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극본 노희경·연출 김규태 김양희 이정묵)는 특별하다. 탄탄한 서사로 드라마의 문을 연 은희는 소위 건물주에 현금 부자로 그려지지만, 생선가게를 운영하며 살아가는 성실한 여성으로 그려진다. 청바지에 이리저리 솟구친 단발머리. 화가 나면 화나는 대로, 흥이 나면 흥 나는 대로 살아가는 우리 이웃으로 묘사했다는 점에서 다른 드라마와 차별된다. 동생들도 모자라 친구들까지 어깨에 업고 있지만 '의리'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사람을 꿰뚫어 보는 지혜도 가졌다.


극본을 집필한 노희경 작가는 주로 작품에서 엄마나 할머니 역할을 연기해온 이정은에게 제 나이를 찾아주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정은의 '은'을 딴 동년배 솔로 은희가 탄생했다. 이정은은 극 중 제주도 토박이 말투를 연기하기 위해 제주도에서 1년 동안 거주하며 배역을 연구하기도 했다.


은희는 짠하면서도 당당해 매력적이다. 자꾸 보고 싶고 생각나고 가엽고 재밌다. 기존 여성 캐릭터를 전복시키는 쾌감도 상당하다. 차승원과 이정은은 유려한 연기로 진한 페이소스를 안긴다. 세월이 눅진하게 배어든 은희와 한수의 얼굴이 오래 잊히지 않을 거 같다. 만만치 않은 삶의 무게를 인 채 두 사람이 부르는 최성수의 '위스키 온 더 락'은 '우리들의 블루스' 그 자체다.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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