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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학 생활] 황홀감 느끼려다 부르는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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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학 생활] 황홀감 느끼려다 부르는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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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주임은 조금이라도 서늘한 아침 일찍 공장에 출근했다. 느긋하게 봉지 커피를 뜨거운 물에 풀어 헤쳤다. 종이컵을 휘휘 저으면서 아무도 없는 공장 안을 둘러보았다. 공장 구석의 벽에 뭔가 거뭇거뭇한 물체가 보였다. 김 주임은 손에 든 커피를 떨어뜨릴 뻔했다.


"공장장님!" 김 주임은 다급하게 불러보았다. 선반에 묶인 끈에 목이 매달려 있는 공장장은 대답 없이 몸 전체가 축 늘어져 있었다. 무릎은 굽혀진 채로 맨발이 차가운 공장 바닥에 힘없이 닿아 있었다. 황급히 목에 감긴 끈을 풀어냈다. 공장장은 거구였다. 180㎝가 넘는 키에 몸무게는 100㎏을 넘었다. 작은 키에 왜소한 체격의 김 주임은 온힘을 다했다.

간신히 바닥에 눕혔지만, 숨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사무실로 뛰어가 전화를 돌렸다. "아 거기 119죠? 여기 xx 공장인데요. 빨리 와주세요. 빨리요 빨리. 급해요." 전화를 마치고 눕혀 놓은 공장장을 다시 쳐다본 김 주임은 갑자기 무섭고 괴기스러운 느낌에 등에 닭살이 돋는 듯했다. 공장장은 다른 옷은 입지 않고, 여성용 T 팬티와 브래지어만을 입고 있었다. 공장장을 내려놓은 바닥 옆에는 금발 백인 여성이 공장장과 같은 브래지어와 T 팬티를 입고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고 있는 표지의 성인 잡지가 있었다.


119구급대원은 5분 만에 도착했다. 구급대원도 현장에 도착해 놀랐다. 그렇지만 눕혀진 사람이 살아있다면 빨리 심폐소생술을 실시해야 한다. 심전도 스티커를 붙이고 확인했지만, 심장에는 아무런 전기적 신호도 없는 상태였다. 호흡과 맥박도 없었다. 턱에는 미약한 시강(사체경직)이 있는 것도 같았다. 구급대원은 옆에서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김 주임에게 말했다. "경찰에 신고하세요. 빨리요."


박 순경과 김 경사가 현장에 도착했다. "아니 이게 뭐야. 아무리 더운 여름이지만 여자 팬티와 브래지어만 입고 있잖아. 어? 저건 뭐야?"

박 순경은 시신 주변에 떨어져 있는 도색잡지를 들고 말했다.


"이거 누구 거예요?"


김 주임은 대답했다.


"그거 사실 공장장님이 보시는 걸 제가 본 적이 있어요. 공장장님 물건 같은데요."


경찰은 아리송했다. 이상한 사건 현장이었다. 공장장에 대해 탐문수사를 해보니 평이 좋은 사람이었다. 술 좋아하고 시원시원한 성격에, 직원들에게는 욕 한번 하지 않는 호인이었다. 누군가에게 원한을 살 만한 일은 없다고 조사됐고 가족 관계도 화목했고 사망자도 건강했다. 경찰은 사건을 명확하게 해결하기 위해 부검을 하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했다. 가족들도 부검에 찬성했다.


이상한 현장에서 온 공장장의 시신은 전혀 부패하지 않았다. 목에 끈 자국은 선명했다. 부검한 후 사망원인은 비교적 쉽게 판단할 수 있었다. 사인(死因)은 의사(縊死·hanging), 즉 목맴이었다. 누군가에 의해 끈 등으로 목이 졸려 사망하는 교사(絞死·Ligature strangulation)는 거의 전부 타살이며 의사, 즉 목을 맨 경우는 대부분 극단적 선택이다. 아이들이 창문의 블라인드 줄에 목이 사고로 감겨 사망하는 경우도 의사로 본다.


이번 사례는 목에 감긴 도구에 체중이 실려 경부압박으로 사망한 목맴이나 사망의 종류는 사고사로 판단할 수 있다. 드물게 의사 또는 교사일 경우에도 스스로 목을 매달거나 졸라 성적 쾌감을 얻는 자위행위 도중에 사망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자기색정 사망(autoerotic death)이라고 부른다. 자기색정 사망은 대개 은밀하게 이루어지며 사망의 의도 없이 성적인 자극을 증대시키려다 사고로 사망하게 된다. 자기 만족감을 얻기 위한 행위가 도를 지나쳐 소중한 생명을 사고로 잃게 되는 것이다. 사건 현장 주변에는 도색잡지나 성 보조기구 등이 있는 경우가 많으며 때에 따라서는 자신의 성역할을 바꾼 상태로 발견되기도 한다.


대개 의사 또는 교사에 의한 질식의 증거가 확인되며 자위 또는 성도착 등의 독자적 성적 행위와 성적 만족을 위한 보조물이 있거나 다른 사람들은 알 수 없지만, 처음이 아닌 여러 번의 반복적 행위가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뚜렷한 자살의 징후가 없으며 탈출의 방법이 존재한다.


발이 바닥에 닿는(심지어 엉덩이가 바닥에 닿은) 상태에서 줄에 목이 졸리거나 스스로 목을 졸랐을 경우 줄을 풀거나 손을 놓으면 죽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현실은 다르다. 실제로는 목이 졸려 일시적인 뇌 저산소증으로 황홀감 등의 상태를 겪던 중 목의 동맥 폐쇄가 일어나고 10~15초 후면 대개 의식을 상실하게 된다. 이 전에 멈추어야 하는데 실수로 1~2초만 더 지나도 의식을 잃고 사망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자기색정 사망으로 유명한 사람으로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킬빌’에서 빌 역할을 맡았던 데이비드 캐러딘이라는 배우가 있다. 그는 태국 방콕의 한 호텔에서 목을 옷장에 매 사망한 상태로 발견돼 최초에는 자살로 판단했으나 엄밀한 법의학적 조사를 통해 사고사로 사망 종류가 정정됐다.


자기색정 사망은 드물지만 발생한다. 호주와 스웨덴에서 발표된 논문 통계에 따르면 매년 인구 100만명 당 0.1~0.3명이 발생했다. 국내에서는 명확한 통계는 없으나 이 통계를 적용하면 매해 5~15명이 발생할 수도 있다. 10년을 넘게 법의학에 종사하다 보니 몇몇 안타까운 사례를 부검해 판단한 경험이 있다.


한 종편 방송에서 자기색정 사망에 대해 보도한 적이 있었다. 방송 후 대학생이 이를 호기심으로 따라 해 보다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자신의 성적 만족감을 얻기 위한 행위는 자연스럽고 건강하다는 증거다. 그러나 이를 위해 위험한 행위를 하는 것은 불행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다시 한번 주의하고 경계할 일이다.


유성호 서울대 의과대학 법의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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