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우크라 전쟁, 에너지·식량 물가 위기 초래
지난달 물가 상승률 4.1%…한은 목표 두 배
식료품·음료 등 서민 '밥상 물가'는 이미 최악
전문가 "원자재 수급 불안은 단기 대처로는 부족"
"장기적·전략적 자세로 위기 해결해야"
[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1달 넘게 이어지면서 글로벌 공급망 충격이 본격화하고 있다. 국내 물가 상승률도 약 10년 만에 4%대로 올라섰다. 특히 이번 공급 불안은 원유·가스·곡물·육류 등 일상생활에 중요한 품목부터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어, 서민들의 생활고만 더욱 깊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 마트의 식료품 코너에 진열된 상품들. 5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국내 물가 상승률은 4.1%로 집계돼 약 10년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 사진=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10년3개월 來 최악 물가상승률…한은 "당분간 오름세 지속"
5일 통계청이 발표한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소비자물가는 전년 대비 4.1% 상승했다. 10년3개월 만에 최고치다.
세부 품목을 보면, 석유류 가격은 무려 31.2% 폭등했다. 휘발유(27.4%), 경유(37.9%), 자동차용 LPG(20.4%) 등 모두 두 자릿수대 상승폭을 기록했다. 외식물가지수도 6.6% 올라 지난 1998년 4월(7.0%)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한국의 물가상승률은 지난해 10월부터 5개월 연속으로 3%대를 넘어섰고, 지난달에는 4%대에 올랐다. 이는 한국은행의 장기 물가 안정 목표인 2%의 두 배에 달하는 수치다.
한국은행은 앞으로도 당분간 고물가가 계속 이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한국은행은 통계청의 물가 발표 직후 개최한 '물가 상황 점검회의'에서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원유, 곡물 등 원자재 가격 상승 등의 영향으로 물가 오름세가 당분간 4%대를 나타낼 것"이라고 내다봤다.
◆러-우크라 전쟁, 에너지 식량 물가 위기 초래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벌어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가 글로벌 공급망에 충격을 주고 있다. 러시아는 전 세계 최대의 천연가스 생산·수출국으로, 국영 에너지 기업인 '가즈프롬'을 통해 유럽에 막대한 양의 가스를 판매하고 있다. 그러나 전쟁으로 가스 수급이 불안해지면서, 유럽을 넘어 글로벌 가스 가격이 폭등을 거듭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루간스크 지역의 밀 농장. 우크라이나는 전 세계 밀 수출의 약 8%를 차지한 곡물 생산 국가다. 전쟁의 여파로 인해 농사에 차질을 빚고, 흑해 항구가 닫히면서 곡물 수급도 불안정해질 전망이다. / 사진=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우크라이나의 경우 경제 규모 자체는 그리 크지 않지만(2021년 IMF 기준 국가총생산 세계 56위), '유럽의 빵 바구니'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국제 곡물 시장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자랑한다. 지난 2020년 기준 우크라이나의 옥수수 수출량은 전세계 13.2%, 밀 수출은 8%를 기록했다.
그러나 올해는 전쟁의 여파로 농사에 차질을 빚었으며, 곡물 주요 수출 창구인 흑해도 차단돼 자칫 '식량 위기'를 촉발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번 공급 대란은 서민의 일상적인 생활에 가장 민감한 에너지·식량에 가장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문제가 크다. 당장 자가용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 매일 장을 보는 시민들부터 물가 급등을 체감하기 때문이다.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이 주로 종사하는 요식업계도 물가 상승 압박을 느낄 수밖에 없다. 국내 최대 치킨 프랜차이즈 '제너시스BBQ'의 윤홍근 회장은 지난달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지금 치킨은 2만원이 아니라 3만원이 돼야 한다"라며 "소상공인들은 점포를 얻어 본인 모든 노동력을 투입해 서비스까지 해서 파는데, 고객들의 시각 때문에 마음대로 가격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지난달 기준 국내 물가상승률은 4.1%였지만, 이미 '밥상 물가'는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급격히 악화하고 있었다. 지난해 3분기(7~9월) 기준 국내 식료품 및 비주류 음료 물가는 전년 대비 5.0%를 기록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4위에 올랐다. 당시 조사는 전쟁 전에 시행된 것으로, 올해에는 더욱 심각해질 가능성이 높다.
◆이미 서민 입장선 '고물가 시대'
시민들은 이미 '고물가 시대'를 체감한다고 토로한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50대 주부 A씨는 "시장에 갈 때마다 채소, 고기, 계란 값이 매일같이 오르는 게 눈에 보일 정도"라며 "이제는 장 보러 나가는 게 무서울 지경이다. 앞으로 뭘 먹고 살아야 할지 걱정부터 앞선다"라고 말했다.
대학생 B씨(25)는 "간단히 끼니를 때울 때 찾던 편의점 음식도 다 200~300원씩은 올랐다. 평소 3000원쯤 하던 음식 가격이 갑자기 10% 뛴 셈"이라며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대학생들한테는 이마저도 엄청난 부담이다"라고 했다.
30대 직장인 C씨는 "차 기름값부터 외식값까지 안 오른 게 없다"라며 "이러다가 정말 치킨 한 마리에 3만원 주고 사 먹는 시대가 오는 건 아닌가 걱정된다"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전문가는 물가 상승으로 인해 국민의 삶이 급격히 악화하는 것을 방지하려면 정부의 장기적인 전략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의 물가 상승은 원자재, 공산품 생산이 부족하다 보니 빚어지는 공급 충격"이라며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 조치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통화 정책이 영향을 미치기 힘든 위기에는 정부의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우크라이나 위기에서 알 수 있듯이, 원자재 수출국에서 불안이 발생하면 물가 위기로 번질 수 있다"라며 "대통령의 역할이 강조되는 국제 정치의 영역이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단발적인 세금 인하 정책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우호국들과 공동으로 자원을 개발해 안정적인 글로벌 공급망을 구축하는 등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자세로 위기를 해결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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