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경제 전쟁 무기' 빼돌리는 스파이, 간첩죄 적용해라
글로벌 경제 패권 다툼 속 '산업 핵심 기술' 차이가 국가 경쟁력
첨단 반도체 기술력 보유한 韓, 기술 탈취 주요 타깃
국내 산업기술 훔쳐도 대부분 집유·벌금…솜방망이처벌 강화해야
[아시아경제 이초희 산업부장]17세기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자이자 과학자였던 프란시스 베이컨은 서양을 근대 사회로 이끈 3대 발명품으로 나침반, 인쇄술, 그리고 화약을 꼽았다. 인류 최초의 화약은 10세기 이전 중국에서 발명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확한 기록은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화약 제조법은 어느 시대, 어느 민족에게나 외부 유출이 금지된 ‘1급 기밀’이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고려 말 장수 최무선 장군이 처음으로 화약을 이용한 무기를 발명했다. 인류의 중대한 변곡점마다 과학기술의 발달이 있었듯, 화약의 국산화가 당시 고려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꿨다는 주장도 있다. ‘한국사에도 과학이 있는가’의 저자 박성래 한국외대 명예교수는 "최무선의 화약 발명으로 이성계가 왜구와의 전쟁에서 영웅이 될 수 있었고 결국 조선의 건국으로 이어졌다"고 평가한다. 화약의 발명은 오늘날 대한민국을 있게 만든 결정적인 분기점이었다.
과학 기술은 현대사회로 넘어오면서 절대권력이 됐다. 21세기 국가 간 패권 싸움에서의 전략 무기로 꼽히는 것도 첨단 기술력이다. 주요 국가들이 산업 정보를 획득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경제 전쟁을 벌이고 있는 배경이다. 눈부신 IT 산업의 발달과 반도체 기술을 보유한 한국은 수십 년간 기술 탈취의 타깃이 돼 왔다.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2016~2021년 분야별 산업기술 유출 건수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전기전자(41건)였다. 유출된 기술 유형을 영업 기밀까지 확장하면 피해 규모는 상상 이상이다. 경찰청 조사 결과 2017~2021년까지 유출 사건 피해 규모는 22조원에 달한다.
최근 삼성전자 현직 직원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술을 대거 유출하려다 적발됐다. (아시아경제 3월23일자 보도) 회사 측이 해당 직원을 붙잡아 조사를 진행 중인데 정확한 범위와 유출 여부 등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가장 성장성이 높고 삼성전자가 미래 먹거리로 적극 육성 중인 파운드리에서 기술 유출이 시도된 것에 대해 업계는 충격적이라는 반응이다.
국정원과 민간 기업들이 거미줄 같은 보안망을 움직이고 있지만 유출 시도는 끊이지 않고 있다. 산업 스파이에 대한 처벌이 솜방망이 수준에 그쳐서일까. 사법연감이 집계한 통계를 보면 2019년 산업기술보호법 위반으로 1심 법원에 접수돼 판결이 끝난 사건은 총 15건. 이 중 징역형은 1건에 불과했다. 대부분 집행유예나 벌금형으로 풀려났다. 산업기술보호법에 따르면 국가핵심 기술 유출을 시도하다 잡히면 3년 이상 징역과 15억원 이하 벌금이 부과되지만, 일반 기술이라면 처벌의 하한 기준이 없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처벌 기준도 낮다. 기술 해외 유출 시 기본 양형기준은 징역 1~3년6개월이다. 감경사유 적용 시 징역 10개월~1년6개월, 가중사유를 적용해도 징역 2~6년에 그친다.
반면 해외 주요국들은 기술의 해외 유출을 반역 행위 수준으로 규정한다. 미국은 국가전략 기술 유출이 적발되면 ‘간접최’를 적용, 최대 20년의 징역과 500만달러의 추징금을 부과한다. 국내 산업계에서는 해외 기술 유출에 간첩죄를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지 10년이 지났지만 아직 현실화되지 않고 있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두달 만에 2억 뛰었어요"…서울보다 더 오른 반도...
기술 차이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다. 천문학적인 자금과 인재를 투입해 개발한 첨단기술이 탈취당하고 살아남을 기업은 없다. 국가 안전 보장과 국민 경제 발전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잊을만 하면 터지는 기술 유출과 미약한 처벌 논란을 이제 끝내야 한다. 최근 경제6단체장 회동 때 "요즘 전쟁은 총 아닌 반도체"라고 말했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윤 정부가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무기를 지키기 위한 실제 행동에 나설 것을 기대해 본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