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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한 중대재해처벌법 조사에 두 달째 멈춘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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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중대재해처벌법 1호' 삼표산업 양주사업소(양주채석장) 가보니…
관련업종 2000여명 매출감소·실직 '직격탄'
협력사 직원들 '언제 일할 수 있냐"…생계 위협 아우성

지난 22일 오후 삼표산업 양주채석장 출입구가 막혀있다. [사진=김종화 기자]

지난 22일 오후 삼표산업 양주채석장 출입구가 막혀있다. [사진=김종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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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아시아경제 김종화 기자] 삼표산업 양주사업소(양주채석장)에서 500m 정도 떨어진 거리에 덤프트럭 정비업체 우성타이어가 있다. 서너 달 전만해도 이 업체에는 하루 20~30대의 덤프트럭이 오갔다. 직원들은 타이어를 갈아 끼우느라 밥 때를 놓치는 날이 많았을 정도로 분주했다. 양주사업소가 가동을 멈춘지 이틀이 지나면서부터 덤프트럭 구경하기가 어려워졌다. 이 업체 허명열(55) 사장은 직원 3명을 모두 내보내고 지난달부터 혼자 일하고 있다. 그럭저럭 한 달은 버텼지만 수입이 없는 상황이되자 내린 결정이었다. 허 사장은 "한달에 1000만원은 벌어야 가게가 유지되는데 지난달부터 월수입 100만원에도 미치지 못했다"면서 "지나가는 트럭 소리만 들려도 혹시나 싶어 고개를 돌리게 된다"고 했다.


양주사업소에서 크라싱플랜트(석재를 고르게 부수는 기계장치) 유지·보수를 맡고 있는 협력업체 S산업의 매출도 최근 급격하게 꺾였다. 연간 30억 정도의 매출을 올리는 S산업에서 양주사업소가 차지하는 매출 비중은 40% 정도였다. 수도권에서는 양주사업소가 레미콘용 골재 규격에 적합한 20mm 굵기의 골재를 생산하는 유일한 곳이었다. 이 회사 이대식(가명·47) 사장은 "크라싱플랜트 운용과 유지·보수 분야에서 노하우를 가진 업체라는 자부심이 있었고, 그래서 일감을 끊긴다는 건 상상하지도 못했다"면서 "회사 매출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대형 사업장 가동이 두 달이나 멈추면서 회사 운영이 어려워졌다"고 했다. 그는 "언제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냐는 직원들의 문의 전화가 하루에도 몇 통씩 온다"고 했다. 양주사업소에서 일하는 S산업 직원은 일용직을 포함해 평균 20명 정도였다. 한창 바쁠 때는 한 번에 100여명이 투입되기도 했다.

사고로 인한 골재 채취작업 중지가 두 달째 이어지자 곳곳에서 아우성이 터져나오고 있다. 시시비비를 가려야 하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양주시상공회의소는 두 달 동안 골재 채취작업이 중단되면서 협력업체와 지역 주민 등 2000여명이 생계를 위협받고 있다고 했다.

작업중지명령서가 붙은 채 닫혀 있는 삼표산업 양주채석장 사무실. [사진=김종화 기자]

작업중지명령서가 붙은 채 닫혀 있는 삼표산업 양주채석장 사무실. [사진=김종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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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오후에 찾은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삼표산업 양주사업소(양주채석장) 출입구는 봉쇄된 채 숨진 근로자들을 애도하는 플래카드만 쓸쓸하게 흔들렸다. ‘작업중지명령서’가 붙은 양주사업소 사무실 출입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먼지를 날리며 하루에도 200여대 넘게 들락거렸다던 덤프트럭은 몇 시간 동안 한 대도 구경하지 못했다.


지난 1월 29일 양주사업소 사망사고로 고용노동부는 양주사업소에 대해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작업중지명령을 내렸다. 이때부터 골재 채취작업은 중단됐다. 양주사업소는 하루 1만8000㎥, 연간 390만㎥의 골재를 생산하는 전국 최대 규모의 골재 채취장이다. 양주사업소 직원 100명과 협력업체 직원 400여명이 매일 이곳에서 일하며, 서울 도심권과 경기 북부지역 골재 수요의 20% 정도를 감당해 왔다. 양주시는 도시면적에 비해 인구밀도가 높지 않아 큰 기업을 중심으로 상가가 형성되면서 도심으로 발전하는 지역이다. 따라서 기업의 흥망이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양주시지역상인회와 양주시상공회의소 추산에 따르면, 양주사업소의 작업중단으로 매일 출근하던 협력업체 직원 400여명과 운송업 관련 100여명이 일터를 잃었다. 또 인근 주유소 10여곳, 정비업체 20여곳, 식당과 편의점 30여곳과 수도권의 연관 협력업체 종사자 등 1500여명의 상인과 업계 종사자들이 매출 감소와 실직 등의 피해를 입고 있다. 이신훈 양주시상공회의소 건설분과 위원장은 "협력업체와 트럭 운송업자들도 대부분 양주지역 사람들이었는데 하루 아침에 실업자가 된 상황"이라고 했다.

[그래픽=아시아경제 이주룡 디자이너]

[그래픽=아시아경제 이주룡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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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약없이 문 닫아 2000명 생계 위협

양주사업소에 운송차량을 배차하거나 양주지역의 폐기물을 수집운반하는 업체인 초계건설중기는 불과 두 달 여만에 절반이 넘는 차량을 타지역에 빼앗겼다. 일거리가 끊기면서 어렵사리 모아둔 차주들이 인근 포천이나 파주 등으로 일터를 옮겼기 때문이다. 정인주(54) 사장은 "양주사업소 작업중지 이후 배차 리스트에 있던 27대의 덤프트럭 가운데 16대가 일거리를 찾아 타지로 떠났다"면서 "요소수 고비를 넘자마자 삼표에서 사고가 났는데 사고는 사고고 산 사람들은 살아야 하지 않느냐"고 호소했다.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만을 적용했다면 양주사업소는 이미 재가동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의 설명이다. 산안법에서는 중대재해인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관할 고용노동청의 근로감독관이 현장의 작업중지를 명령한다. 이후 근로감독관과 경찰 등 유관 기관의 현장조사와 감식 등을 실시하고, 안전관련 시설물에 대한 개보수 등을 함께 명령하게 된다.


이번에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되면서 조사기간이 길어졌다. 근로자 3명이 매몰돼 숨지는 대형 사고였던만큼 신중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도 있지만 중대재해처벌법 1호 사건에다, 선례가 없고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에서 절차나 판단이 지연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박종식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산안법만 있을 때는 길어도 한달, 통상 1주일에서 보름 정도면 작업중지명령이 풀리는데 중대재해처벌법이 함께 적용되면서 조사기간이 더 길어지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전례가 없던 일인만큼 조사결과에 대한 부담도 커 노동부도 신중하게 조사에 임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멈춰선 삼표산업 양주사업소(양주채석장) 전경. [사진제공=연합뉴스]

멈춰선 삼표산업 양주사업소(양주채석장) 전경. [사진제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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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 사건 본보기에 기준도 모호

관할 관청에서는 사안의 중요성을 볼때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하지 않고 산안법에 따른 조사만으로도 조사기간이 이전보다는 길어질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의정부지청 관계자는 "삼표산업의 사고는 매몰사고였던만큼 이 사고를 조사중인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 시추 조사를 위해 관련 업체를 선정하는 등 조사에 시간이 많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이달 말이나 다음달 초에는 조사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사 결과가 나오면 삼표산업 양주사업소는 이를 수용해 명령받은 시설물을 개보수한 뒤 담당 근로감독관에게 작업중지해제신청서를 제출해야 한다. 해제신청서를 받은 의정부지청은 작업중지해제심의위원회를 열어 해당 작업장의 재발방지대책 수립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작업중지 해제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조사 결과가 나와야 책임자인 삼표산업 대표에 대한 처벌 수위도 결정된다. 노동부는 3명 이상의 인명사고에 대해서는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하지 않고, 산안법 만으로도 구속영장을 신청한다는 원칙에 따라 조사 중이다. 결국 산안법에 따른 현장조사 결과와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른 이 대표에 대한 조사결과는 맞물린다. 여기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처벌에 치우치다보니 예방이라는 본질을 놓치고, 시간도 낭비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윤동열 건국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중대재해처벌법의 목적은 처벌이 아닌 예방인만큼 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 위주로 법이 시행되면서 중요한 부분들을 놓치고 있다"며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도록 정부와 국회가 빠른 시일내 보완입법 등 재개정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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