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 권력의 심장부
고려시대때 '풍수지리상 제왕의 기운이 있던 곳' 여겨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 별관에 마련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회견장에서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국방부 청사 이전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윤동주 기자 doso7@
[아시아경제 이지은 기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0일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을 서울 용산의 국방부 청사로 이전하겠다고 밝히면서 '용산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내내 대통령들이 기거했던 청와대 터는 고려시대부터 '풍수지리 명당'으로 여겨졌던 곳으로, 조만간 국민의 품으로 돌아가게 됐다.
윤 당선인은 이날 오전 11시 인수위 사무실이 있는 종로구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 별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방부 청사로의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공식화했다. '제왕적 권력'의 상징인 청와대를 국민들의 품에 돌려주겠다는 취지다.
현재 청와대 터는 고려 시대 '삼경' 중 하나인 남경의 이궁이 위치한 자리였다. 풍수지리·도참 사상이 지배적이었던 고려는 삼각산 아래 지역에 제왕의 기운이 있다는 믿음으로 남경 지역에 궁을 지었고 고려시대 후기에는 천도를 추진하기도 했다.
조선 시대에는 경복궁이 창건되면서 경복궁의 후원이 되었고, '경무대'로 불렸다. 고종 5년 경복궁이 중건된 후에는 융문당, 융무당, 오운각 등의 건물이 들어서고 과거시험이나 무술대회 및 왕이 직접 농사를 짓는 친경이 이뤄졌다. '농사가 국사의 근본'임을 일깨우기 위해 왕이 손수 가꾸던 8배미의 논이 있던 장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이후 경복궁을 조선총독부 청사 건물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후원의 건물들을 허물고 이곳을 공원으로 조성했고, 총독관사를 새로 지어 7~9대 총독이 사용했다.
광복 이후에는 조선주둔군 사령관인 하지 중장이 사용하다가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에는 초대 이승만 대통령 관저로 사용됐다. 동시에 경무대라는 이름을 되찾아 관저명으로도 사용했지만, 1960년 윤보선 정권에서 이전 정권의 독재 인식을 지우기 위해 '청와대'로 개명했다.
이후로도 쭉 역대 대통령의 집무실로 사용되던 구 청와대 건물은 민족정기를 바로잡겠다는 김영삼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1993년 11월 철거됐고, 철거 후 그 자리를 '수궁터'로 불렀다.
역대 대통령들은 '탈권위주의'를 내세우며 청와대 집무실을 이전하겠다고 약속해 왔지만 경호와 보안 등을 이유로 실제로 실행으로 옮기지는 못했다.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이전을 약속했으며, 문재인 대통령도 2017년 '광화문 대통령'이 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실제로 검토까지 했지만, 2019년 무산됐다.
당시 광화문대통령시대위원회 자문위원을 맡았던 전문가 중 하나인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기자회견에서 "집무실을 광화문으로 이전하면 청와대 영빈관, 본관, 헬기장 등 집무실 이외 주요 기능 대체 부지를 광화문 인근에서 찾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이 마무리되어야 검토 가능하다고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지은 기자 leez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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