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매체들 쑨원 서거 97주기 추모식 보도하며 재조명
정치권 반중ㆍ친중 격돌로 대만에서 소원해진 쑨원

[아시아경제 베이징=조영신 특파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대만 문제가 더욱 부각된 가운데 '쑨원 서거 97주기' 추모식이 중국 곳곳에서 열렸다.

사진=바이두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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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영 신화통신은 12일 오전 10시 30분 베이징 중산공원에서 정젠방 전국정치협상회의(정협) 부주석 등 각계 고위급 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쑨원 선생 서거 97주기 행사가 열렸다고 보도했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도 13일 일요일자 지면에 쑨원 서거 추모 기념식이 엄중하게 진행됐다고 전하는 등 중국 매체들이 대거 기념식 행사를 보도했다.

쑨원은 신해혁명(1911년 10월 10일)을 이끈 인물이다. 신해혁명으로 수천년간 이어온 중국의 봉건왕조 시대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혁명의 중심에는 민족ㆍ민권ㆍ민생을 3대 원칙으로 하는 삼민주의 정신이 있었고, 그 이념의 토대를 만든 사람은 바로 쑨원이다. 쑨원은 1919년 국민당(중화혁명당 개명)을 창당했다. 쑨원은 조국 중국의 통일을 보지 못하고 1925년 3월 12일 59세의 일기로 숨을 거뒀다.


쑨원의 뒤를 이은 이가 장제스다. 국공내전에 패한 장제스는 대만(타이완)으로 근거지를 옮긴다. 적장자 개념으로 보면 대만이 쑨원의 정신을 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국부(國父) 쑨원을 보는 시각에 변화가 생겼다. 1996년 대만 총통 직선제가 도입된 이후 민주진보당(민진당)이 국민당(친중정서)을 선거에서 물리치고 정권을 잡으면서부터다. 민진당(반중정서)은 경쟁 당인 국민당의 상징인 쑨원과 거리를 뒀다. 중국 본토가 이 빈틈을 파고들었다(중국은 필요할 경우, 또는 좋아 보이는 것은 모두 자기들 것이라고 주장하는 뻔뻔한 습성을 가지고 있다).


2016년부터 중국은 쑨원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재조명하기 시작했다. 2016년 11월 쑨원 탄생 150주년 기념식에서 시진핑 국가 주석이 직접 기념사를 챙겼다. 시 주석은 당시 "중국 공산당이 쑨원 정신의 계승자"라고 밝혔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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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주석은 지난해 열린 신해혁명 110주년 기념식에선 "신해혁명을 이끈 쑨원의 정신을 드높이고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목표를 향해 용감하게 전진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중국 정부는 이날 행사가 열린 인민대회당 단상 뒤편에 쑨원의 대형 초상화를 내걸기까지 했다.


대만 정치권의 이념 갈등을 이용, 쑨원을 은근슬쩍 중국 공산당의 모태로 삼으려는 의도가 읽힌다. 어쩌면 쑨원 서거 100주년 행사에서 중국은 쑨원의 삼민주의를 토대로 마오쩌둥이 중국 공산당을 창당, 중화인민공화국의 근간 이념이 됐다는 논리를 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중국은 그간 신해혁명을 부르주아 민주혁명이자 사회주의로 가는 중간단계로 여겨왔다. 이 때문에 쑨원을 국부가 아닌 선생으로 부른다. 실제 후진타오 전 국가 주석은 과거 신해혁명에 대해 "반식민 반봉건성을 바꾸는 데는 실패한 혁명"이라며 중국 공산당과 선을 그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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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매체에서 쑨원 서거 97주기 추모식 관련 기사를 찾지 쉽지 않다. 반중ㆍ친중으로 격돌하고 있는 대만 정치권도 참 그렇다.


베이징=조영신 특파원 asc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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