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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루트] '금력과 정치권력'‥ 조선의 시장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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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전 상인, "시장 질서 어지럽혀‥송파장 폐쇄해야"
송파 상인, "송파장 폐쇄하면 송파진 운영 어려워"
조정 관료, '형평성'과 '공정성'‥ 존폐 논쟁화

1899년 상무사(商務社)에서 전국 보부상인에게 발급한 대한제국 상업빙표 [국립중앙박물관]

1899년 상무사(商務社)에서 전국 보부상인에게 발급한 대한제국 상업빙표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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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라영철 기자] 조선 후기 상인 세력과 정치 권력의 결탁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경기 남부 상권을 바탕으로 성장한 송파 상인은 서울의 상인들은 물론, 전국의 상인과 연계하며 시전 상인에 맞서는 조선시대 금권과 권력의 결탁 실상이었다.

19세기 들어 송파장은 마침내, 서울을 거치지 않고 삼남과 동북 지역의 물자가 거래되는 전국 규모의 시장으로 입지를 굳힐 수 있었다.


하지만 송파 상인 세력이 사상도고(私商都賈)로 입지를 굳히기까지 탄탄대로만을 걸은 건 아니었다.


영조(재위 1724~1776) 시기인 18세기 중반 한때는 시장이 폐쇄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일부 조정 대신은 송파장이 시장 질서를 어지럽힌다며 혁파를 주장하고 나섰다.


병조판서 홍상한이 임금에게 아뢰었다. "송파에 근거지를 둔 상인들은 서울과 지방의 중도아(中都兒:거간꾼) 무리는 물론, 난전을 벌이는 장사치들과 짜고 삼남과 북도北道의 상인을 유인해 모두 송파장으로 끌어들입니다. 난전으로 장사하는 서울 상인도 단속을 피해 송파장을 드나듭니다. 또한 명목으로는 한 달에 여섯 차례 장이 선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서울 시전에서 취급하는 물종을 비롯한 각종 물품을 쌓아두고 매일 매매합니다. 이런 실정이니 서울에 있는 시장은 계속 손실을 보고 있습니다. 송파장을 혁파하지 않으면 서울 시장에서는 장사할 방도가 없을 것입니다." - 『비변사등록』 128책, 영조 31년(1755) 1월 16일


혁파를 주장하는 고위 관료들은 송파장이 이름만 오일장이지 상설시장과 다를 바 없어 서울 상인의 피해가 매우 심하다는 점을 폐쇄 이유로 제시했다.


그렇다고 이들은 서울 시전을 드러내 놓고 감싸지는 않았다. 시전만이 아니라 서울에 있는 모든 시장이 손실을 보고 있다고 함으로써 좀 더 넓고 일반적인 명분을 확보하려 했다.


이들 중에는 시전 운영을 관장하는 평시서(平市署)의 책임자를 겸한 전·현직 관료가 많았다. 이들의 주장은 결국 시전 상인의 속내를 대변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시장 개설을 찬성하는 관료는 송파를 담당하는 광주유수를 비롯해 군영에 속한 관료가 대부분이었다.


이들 중에는 송파진(松坡津)은 서울 방위의 요지인데, 장시를 폐쇄하면 생계 터전을 잃은 주민이 모두 흩어져 군사와 창고 유지 등 송파진 운영에 어려움이 있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 송파장 존폐 논쟁


동여도(東輿圖) 중 도성도(都城圖) <1856~1872년> [국립중앙박물관]

동여도(東輿圖) 중 도성도(都城圖) <1856~1872년>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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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형평성과 공정성 문제로 집약됐다. 국가라는 큰 틀에서 보면 서울의 시전 상인이나 송파 장시의 장사꾼 모두 같은 백성인데, 어떻게 서울 백성이 이익 일부를 잃는다는 이유로 시골 백성의 생업을 금지할 수 있느냐는 논리였다.


사직(司直) 한익모가 임금에게 아뢰었다. "조정에서 서울 시전을 위해 난전을 금하고 있으나 가난한 백성은 이 때문에 생업을 잃으니, 이러한 금지가 끝내 좋은 일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송파장에 나온 상품은 모두 전국의 지방에서 올라온 물품입니다. 이제 시전의 이익이 줄어든다는 이유로 송파장을 혁파하려 한다면 도성 주위 100리 안에서 물품을 매매하는 자 모두에게 이 규례를 적용해 상거래를 못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사단은 장시 백성의 전매로 인한 폐단이었지만 서울과 지방을 똑같이 대한다는 도리로 보면 송파장 폐쇄가 반드시 타당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 『비변사등록』 128책, 영조 31년(1755) 1월 16일


팽팽하게 맞섰던 송파장 존폐 논쟁은 국왕 영조가 민생 명분론에서 앞선 존치론자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일단락됐다.


하지만 '송파장 폐지' 의지를 굽히지 않는 시전 상인들은 1758년엔 국왕에게 직접 호소했다.


송파장은 문을 닫되, 지금 자리에서 남동쪽으로 10리 정도 안쪽으로 들어간 곳에 새 장시를 개설해주자는 주장이었다.


한강 수로는 물론 육로교통의 요지에 자리 잡은 지금의 장터를 없애 송파장의 영향력을 약화하겠다는 의도였다.


보부상 회계 문서 [국립중앙박물관]

보부상 회계 문서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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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에서는 찬반 양측으로 나뉘어 다시 논쟁이 불붙었지만, 양측 주장의 이유와 근거는 이전과 거의 같았다.


영조는 또 한 번 존치론자의 손을 들어준다. 송파는 군사 요충지 배후지로 중요하며, 서울과 지방을 막론하고 모두 한나라의 백성이라는 점에서 존치론이 다시 한번 우위를 차지한 것이다.


송파장 존폐 논쟁은 명분에서 앞선 존치론자 승리로 끝을 맺었지만, 사상도고의 상업 활동은 시전 상인과 마찬가지로 고위 관료나 권세가와 밀착돼 있었다.


정치권력은 상거래에 부당하게 개입해 정상적인 시장 질서를 어지럽힐 때가 많았다.


위정자와 권세가의 침탈은 자본축적을 제약했고 정당하고 합리적인 상거래를 방해했다.


이로 인한 결과는 백성의 피해로 돌아왔으니, 이 또한 수탈과 다름없었다.


송파 상인과 시전 상인을 대리한 조정 대신들 간의 존폐 논쟁을 거치면서 송파장은 성장을 거듭해 도고 세력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송파 상인은 자본을 확장하고 유통 기반을 넓혀 경기 북부의 개성 상인에 필적할만한 상업 세력으로 변모를 거듭했다.


■ 성장 가도의 그늘


1960년대 재래시장[국가기록원]

1960년대 재래시장[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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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 상인과 개성상인을 비롯한 조선 후기 사상 세력의 성장 가도 뒤편엔 어두운 그림자가 놓여 있음도 사실이다.


사상도고에게 부를 안겨준 매점매석은 물가를 불안정하게 했으며 물자의 순조로운 공급을 막았다.


정상적인 상품 흐름이 막히면서 때로는 사회 혼란을 일으켰으며, 그 폐해는 고스란히 백성에게 돌아갔다.


더구나 매점매석으로 획득한 이윤의 대부분은 대상인인 사상도고가 차지했다.


사상은 시전 상인의 독점에 저항하며 상권 투쟁을 벌여나갔지만, 그들 또한 세력을 잡자 과도한 이윤을 취하기 위해 또 다른 독점 체제를 계속 유지하려 했다.


사상과 정치세력의 결탁은 공고했던 시전 체계를 흔들었지만 사상의 자생력을 약화하는 요인이기도 했다.


정치권력에 의존해 성장 가도를 달려온 상인 세력은 외부의 위협이 닥치면 또다시 정치권력을 먼저 찾게 된다.


권력층에 기웃댄 금권(金權)과의 밀실 거래는 정치 권력층의 실제 상업 정책 업무와 거리 두게 했다.


개항 이후 외국 상품과 자본이 밀려들어 왔을 때 조선의 상인 세력과 정치권이 보여준 미숙한 대처와 그로 인한 혼란상이 이를 증명한다.


생산에서 소비에 이르는 상품 유통의 모든 과정에 뛰어들어 전국 규모의 유통망을 창출한 개성상인과 송파 상인의 업적을 결코 무시할 수는 없다.


한때는 국내 시장과 해외시장을 연결하는 국제 상업 네트워크를 형성해 국부를 증진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치권력과 만나 빚어낸 어두운 행로 또한 이들이 책임져야 할 몫이었다.



참고·인용: 경기도사 [경기문화재단]

사진: 국립중앙박물관·국가기록원




라영철 기자 ktvko258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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