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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찬일의 문화수다] 성애(性愛) 논쟁작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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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찬일의 문화수다] 성애(性愛) 논쟁작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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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두 차례의 ‘수다’에서는 개별 영화들 속으로 들어가질 않았다. 무엇보다 종합 오락이요 예술인 영화를 문화콘텐츠라는 맥락(Context)에서 접근하고자 하는 바람에서였다. 그러다 보니 극장에서의 관람을 권하고픈 일련의 국산 영화들에 대해 짚지 않는, 일종의 직무유기를 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배우 김의성과 저널리스트 주진우가 공동 감독한 균형감 배인 정치고발물 '나의 촛불'이나, 고발뉴스 이상호 기자가 20년에 걸친 인생 투쟁 등을 치열하게 담아낸 다섯 번째 연출작 '전투왕' 등 뜻 깊은 다큐멘터리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를 노리련다. 한국 다큐 영화사의 기념비 '워낭소리'(2009)의 이충렬 감독이 13년 만에 발표한 한과 치유의 휴먼·가족 드라마 '매미소리'나, 2020년 7월에 개봉된 '소리꾼'을 60% 이상 손을 봐 새로 선보인 감독판 '광대: 소리꾼' 등도 마찬가지다. 다소 집중적으로 소개하고픈 것은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이하 '인민')다.


'인민'은 중국 현대문학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눈이 번쩍 뜨이지 않을 수 없을 문제적 성애물이다.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2010)으로 칸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청되는 등 단연 주목할 만한 (장편) 데뷔전을 치르고, 김수현 등을 기용해 700만에 근접하는 흥행대박을 터뜨린 '은밀하게 위대하게'(2013)를 감독한 장철수의 신작이다. 목하 중국 평단의 지지와 대중의 호응을 동시에 받으며 ‘가장 폭발력 있는 작가’로 평가되는 소설가 옌롄커(閻連科)의 동명 원작(2005)을 자유로우면서도 충실하게 빚어냈다. 감독 특유의 정중동적 촘촘한 연출력으로….

소설 ‘爲人民服務’는 출간 즉시 폭발적 논란을 일으키며 금서로 지정된 비공식 베스트셀러다. 문화대혁명(1966∼1976) 당시 한 군부대를 배경으로, 사단장의 젊은 부인과 취사 및 청소 담당 사병 사이의 지독한 성애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10여 년 전 그 소설의 초판 10쇄를 읽은 뒤 그를 내 생애의 작가 중 1인으로 품어온바, 그 역작이 10여 년의 산고를 거쳐, 한국 감독에 의해 영화화돼 선보였으니 각별한 관심이 쏠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참에 소설을 또다시 정독했는데, 영화는 원작과 비교할 수밖에 없는 기대를 상회했다.


영화의 자유로움은 단적으로 시공간에서 효과적으로 드러난다. 사건·사연의 무대를 북한임이 틀림없는 1970년대 중반의 가상 국가로 설정했다. 1976년 북한의 도끼 만행 사건을 연결시키는 내러티브에서는 예상치 못한 반전의 묘미를 선사한다. 그로써 우리네 인간들의 사적 영역(Private Sphere)과 공적 영역(Public Sphere)은 흔히 요청되는 것처럼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현실을 극명하게 표출한다. 감독이 전하고픈 문제의식일진대, 영화의 확대된 외연은 무척이나 특별한 러브스토리에 언제고 반복될 수 있는 우화적 보편성을 덧입히는 데도 성공한다.


그 성공은 다른 그 어떤 요인들보다 서른두 살 수련 역 지안과, 스물여덟 살 무광 역 연우진 두 주연배우의 ‘헌신적인, 너무나도 헌신적인’ 열연 덕에 가능했다. 두 배우는 소설 속 두 남녀의 현현인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연기를 소화해낸다. '해피 엔드'(1999·정지우)의 전도연 주진모와, '은교'(2012·정지우)의 김고은, 김무열을 압도한다. 흠잡을 데 거의 없는 연우진과는 달리, 지안의 발성이나 대사 연기로 인해 논쟁이 분분하다는 것쯤은 익히 안다. 하지만 주인공들의 극복 불가능한 신분의 차이 같은 한계 등을 감안하면. 지안의 연기에서 보이는 일말의 어색함도 의도된 결과일 수도 있겠다 싶긴 하다.

소설 띠지에 실려 있는 “'색, 계'보다 위험하고 '화양연화'보다 매혹적이다!”라는 광고 문구는 물론, 영화에 심히 매료된 내게도 분명 과장이다. 두 영화는 그야말로 역대급 걸작 아닌가. 동의 여부를 떠나, 가령 '화양연화'의 경우 부산국제영화제가 선정해 게시해놓은 한 ‘아시아영화 100’에서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1950)과 공동으로 4위에 올라 있다. 허우 샤오시엔의 '비정성시'(1989)와 오즈 야스지로의 '동경 이야기'(1953), 에드워드 양의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1991)만이 그 앞 순위를 차지하고 있을 따름이다. '색, 계'는 또 어떤가. 2007년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안아서만은 아니다. 단언컨대 전 층위에서 최고 경지를 자랑하는 ‘역사적 성애물’ 아닌가.


내 진단은 그러나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 노출을 넘어 캐릭터나 극적 설정에 초점을 맞추는 순간, '인민'은 '색, 계'보다 훨씬 더 위험한 사랑이야기로 비상하기 때문이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국가의 명령에 따랐다손 쳐도, 일개 사병이 사단장 아내와 불륜을 저지르다니, 그 얼마나 발칙한 도발인가. 육체적 성애를 넘어 끝내 변치 않는 영혼의 사랑으로 승화된다는 점에서도 영화는 극히 도발적이다. 그 점에서는 원작도 마찬가지다. 고로 영화는 소설에 충실하다. 그 충실성은 감독이 원작자에게 바치는 진심 어린 오마주(경의)임에 틀림없다.


옌렌커는 한국어판 서문 “사랑·존엄·문학―한국 독자들께 보내는 편지”에서 “텍스트는 그 자체가 일종의 아름다움”이라면서, 말한다. 자신의 “창작에서 그렇게 돌출된 위치를 차지해서는” 안됐건만 “운명 때문에 (중략) 가장 눈에 띄는 자리에 놓이고 말았”다는 “아주 작은 책”인 ‘爲人民服務’는 “인간과 인류사회 전체의 발전에서 가장 근본적인 두 가지 요소인 ‘사랑과 존엄’을 얘기하고 있다”고. “모든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아”니라 “단지 인류의 운명과 역사에 커다란 관심을 갖고 있는 독자들에게만 들려주는 이야기”요, “인간의 존엄에 대해 영원한 존중과 사랑의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한 통의 편지”라고.


이심전심이랄까. 나는 영화 '인민'을 지켜보며, 원작자의 ‘피 땀 눈물’을 만끽했다. 내가 이 논쟁작을 진정으로 성원하는 이유다. 그 영화에서 성애라는 나무만을 볼 것인지, 일정한 거리를 떼고 그 나무를 에워싸고 있는 숲도 함께 바라볼 것인지는 물론, 개별 관객들의 몫이다.


전찬일 영화평론가·중앙대학교 글로벌예술학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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