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위헌→2심 합헌→3심 위헌으로 뒤집혀
[아시아경제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독서실에서의 남녀 혼석을 금지하고 독서실 운영자가 이를 위반할 경우 교습정지나 등록말소 처분을 할 수 있게 한 조례는 헌법에 위반돼 무효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독서실 운영업체 A사가 전라북도전주교육지원청교육장을 상대로 낸 교습정지 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광주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3일 밝혔다.
재판부는 "이 사건 조례 조항은 과잉금지원칙에 반해 독서실 운영자의 직업수행의 자유와 독서실 이용자의 일반적 행동자유권 내지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헌법에 위반된다고 봐야 한다"고 이유를 밝혔다.
이어 "그런데도 원심은 이 사건 조례 조항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고 이에 근거한 이 사건 처분도 적법하다고 판단했다"며 "이러한 원심 판단에는 사적인 자율영역에 대한 공권력 개입의 헌법적 한계, 헌법상 기본권 제한의 한계로서 과잉금지원칙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지적했다.
법원에 따르면 A사는 2017년 10월 12일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에서 B독서실을 등록해 운영하기 시작하며 남녀좌석이 구분배열된 배치도를 교육당국에 제출했다.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학원법)' 제8조(시설기준)는 '학원(독서실이 포함된 개념)에는 교습과정별로 시·도의 조례로 정하는 단위시설별 기준에 따라 교습과 학습에 필요한 시설과 설비를 갖추고 유지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학원 시설의 구체적인 기준을 시·도 등 지방자치단체가 정하도록 한 것.
또 학원법 제17조(행정처분) 1항 3호는 학원이 '제8조에 따른 시설기준에 미달하게 된 경우' 그 등록을 말소하거나 1년 이내의 기간을 정해 교습과정의 전부 또는 일부에 대한 교습의 정지를 명할 수 있도록 했고, 같은 조 4항에서 1항의 행정처분(교습 정지처분)의 기준과 그 밖에 필요한 사항은 조례로 정하도록 했다.
학원법 제8조의 위임에 따라 제정된 사건 당시 '전라북도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조례'는 제3조의 3에서 독서실 열람실과 관련해 '열람실은 60제곱미터 이상으로 하되, 1제곱미터당 수용인원이 0.8명 이하가 되도록 하고, 남녀별로 좌석이 구분되도록 배열할 것. 다만, 이용자의 편의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는 칸막이를 하여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 남녀간의 혼석을 금지했다.
또 위 조례 제11조는 '행정처분의 대상·기준·절차·그 밖에 필요한 사항은 교육규칙으로 정한다'고 정해 구체적인 행정처분의 기준 등을 규칙으로 정할 수 있게 했고, 이에 따라 제정된 '전라북도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조례 시행규칙'에서는 독서실 남녀혼석의 경우 1차 위반시 10일 이상의 교습정지, 2차 위반시 등록말소를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2017년 12월 1일 B독서실을 지도·점검한 전북 교육지원청은 A사가 독서실 등록 당시 제출했던 남녀 좌석배치도와 달리 남자 좌석으로 지정된 곳에 여자가 앉아 있고, 여자 좌석으로 지정된 곳에 남자가 앉아 있는 사실을 적발, A사에 2017년 12월 22일부터 같은 달 31일까지 10일간 교습정지 처분을 내렸다.
A싸는 2017년 12월 18일 전라북도교육행정심판위원회에 해당 처분에 대한 재결을 청구했지만, 기각되자 소송을 냈다.
재판에서는 교습정지 처분의 근거가 된 조례가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해 독서실 운영자나 이용자의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했는지가 쟁점이 됐다. 법률이 헌법에 위반되는지에 대한 최종 심사권이 헌법재판소에 있는 데 반해 명령·규칙이나 조례 등에 대한 위헌심사권은 법원도 갖고 있다.
1심은 조례가 상위 규정인 학원법에도 없는 '남녀 혼석금지'를 규정한 것은 위임입법의 한계를 벗어난 것으로 판단하고 교습정지 처분을 취소했다.
당시 재판부는 "학원법이 조례에 위임한 것은 '교습과 학습에 필요한 시설과 설비를 갖추도록 한 것이고, 위 시설기준에 미달될 경우 명할 수 있는 교습정지처분 등의 구체적인 기준과 그 밖에 필요한 사항'일 뿐이고, 이는 규정의 문언상 '학습에 필요한 시설과 설비'를 의미하는 것이지 시설의 '운영 방법'까지 위임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또 재판부는 "학원법에는 열람실의 운영 방법으로 남녀의 혼석을 금지하는 규정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학원법으로부터 위임받은 이 사건 조례 및 시행규칙에서 열람실의 '운영 방법'으로 남녀혼석을 금지하고 이를 위반한 경우 1차 위반만으로도 '교습정지'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상위법령의 위임없이 침익적 행정처분의 대상을 확대해 규정한 것으로 위임입법의 한계를 벗어난 것이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재판부는 '남녀혼석 금지가 범죄발생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는 전북 교육지원청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동일공간에서 좌석배열을 구별한다고 해 범죄가 예방될 수 있는 것인지는 의문이 들고, 가사 범죄 예방을 위해 남녀 혼석을 금지하는 것이 최소한의 조치에 해당된다고 하더라도, 남녀 혼석의 위반행위에 대해 1차 위반만으로도 '교습정지' 처분을 부과하도록 한 것은 벌점제로 운영되는 다른 시·도의 조례에 비춰 볼 때, 지나치게 무거워 비례의 원칙을 위반해 결국 무효에 해당된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2심은 이 같은 1심 판결을 뒤집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혼석금지 조항이 열람실의 남녀 좌석을 구분배열하도록 규정하고, 교습정지 조항이 그 위반에 대해 교습정지 등의 행정처분을 하도록 한 것이 학원법에서 위임한 한계를 벗어난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이 사건 위임조항은 지방자치단체에 해당 지역의 교육사정에 따라 자율적으로 열람실 내 남녀 좌석의 구분배열을 둘 것인지 여부를 결정하고, 위반 시의 행정처분 기준을 정하도록 입법형성의 재량을 부여하기 위함이라고 봄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또 재판부는 "독서실의 주된 이용자들의 연령 그 밖의 이용환경에 따라서는 혼석하는 남녀 사이의 빈번한 대화나 행위로 인해 인접한 좌석들에서 학습하는 다른 이용자들의 학습분위기가 저해될 가능성이 있다. 남녀 혼석이 성범죄 발생 가능성을 반드시 높인다고 단정할 수 없으나, 남녀 좌석을 구분해 배열하는 것은 원하지 않는 이성과의 불필요한 접촉 등을 차단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며 혼석금지 조항이나 교습정지 조항이 위헌이라는 A사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혼석금지 조항 때문에 여자 좌석이 다 채워지면 여자이용자를 더 받을 수 없어 영업상 손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A사의 주장도 "그것은 좌석수와 좌석배열을 변경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을 것인바, 학원법이나 이 사건 조례가 그러한 것까지 금지하고 있다고 볼 근거가 없다"며 배척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 같은 2심의 판단은 잘못됐다며 다시 결론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조례 조항은 그 적용대상이 되는 독서실 운영자에게 남녀 좌석을 구분 배열하도록 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별도의 경고 조치 없이 곧바로 10일 이상의 교습정지 처분을 하도록 하면서도, 독서실의 운영 시간이나 열람실의 구조, 주된 이용자의 성별과 연령, 관리감독 상황 등 개별적·구체적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아 독서실 운영자의 직업수행의 자유를 필요 이상으로 제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재판부는 "남녀 혼석을 금지함으로써 성범죄를 예방한다는 목적을 보더라도, 이는 남녀가 한 공간에 있으면 그 장소의 용도나 이용 목적과 상관없이 성범죄 발생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불합리한 인식에 기초한 것이므로 그 정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의견을 달리해 면학분위기 조성이나 성범죄 예방이라는 목적의 정당성을 수긍한다고 하더라도, 같은 열람실 내에서 남녀 좌석을 구별하는 것이 그 목적 달성을 위한 적합한 수단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열람실 자체를 분리하지 않으면서 동일한 열람실에서 남녀의 좌석 배열만 구별하는 경우, 남녀가 바로 옆 자리에 앉을 수 없을 뿐 앞뒤의 다른 열 책상에는 앉을 수 있고, 동일한 출입문을 사용하므로 계속 마주칠 수밖에 없어 접촉 차단에 실질적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그뿐만 아니라 도서관이나 스터디카페 등 남녀 혼석이 허용되는 다른 형태의 사적인 학습공간이 많은 상황에서 학원법의 적용을 받는 독서실만을 대상으로 남녀 혼석을 금지한다고 해서 사적 학습공간에서 접촉을 차단하는 효과가 생긴다고 볼 수도 없다"고 밝혔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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