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금 실패했지만 공동소유 공론화 의미
[아시아경제 김희윤 기자] 지난달 27일 케이옥션 경매에 사상 최초로 국가지정문화재 국보 2점이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간송 전형필이 한국전쟁 피난길에도 품에 안고 지켰다는 국보 제72호 ‘계미명 금동 삼존불입상’과 국보 제73호 ‘금동 삼존불감’이 그 주인공이다. 추정가만 삼존불입상 32억~45억원, 삼존불감 28억~40억원이었다. 이 불확실한 국보의 향방을 두고 블록체인 업계에서 탈중앙화자율조직(DAO·다오)을 결성해 경매를 참여하자는 프로젝트가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정우현 아톰릭스랩 대표, 한재선 그라운드X 대표를 중심으로 설립된 ‘국보DAO’는 시민의 힘을 모아 국보 2점을 공동 소유로 관리하자는 취지로 출범했다.
DAO는 탈중앙화 자율조직(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의 약자로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누구나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고 구성원 투표를 통해 민주적 방식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조직을 뜻한다. 이를 기반으로 블록체인 기술 중심의 가상화폐로 새로운 형태의 재정도 확보할 수 있다.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해 DAO가 결성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미국에서는 지난해 헌법 초판본이 소더비 경매에 매물로 나오자 헌법DAO(Constitution DAO)가 결성돼 일주일도 안 되는 기간 동안 약 470억원 규모의 이더리움을 모금했다. 헌법DAO 참여자들은 ‘개인 수집가의 손에서 문화재인 헌법을 구출하자’를 목표로 경매 입찰 시 이를 보관하고 전시할 장소 등에 대한 수평적 의견도 활발히 공유했다. 경매낙찰엔 실패했지만 목표금액을 초과 달성하면서 탈중앙화 자율조직이 공동의 목표로 움직인 선례로 남았다.
국보DAO는 헌법DAO가 이더리움을 채택했던 것과 달리 카카오가 만든 블록체인 네트워크 클레이튼(Klaytn)에서 모금을 진행했다. 높은 수수료를 줄이고 국내 네트워크 활용으로 해외 참여자보다 국내 코인 투자자를 유치하려는 목적에서였다. 국보DAO 결성을 주도한 정우현 아톰릭스랩 대표는 “국보가 돈 많은 한 사람의 소유가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법이 국보의 해외 유출을 금지하더라도 소유주 개인이 국보를 사유 재산으로서 법적 측면만을 강조해 외부 공개를 차단할 수도 있고 제대로 된 관리가 안 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시민들의 지속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문화재의 역사적 의미를 공유하고 확대하기 위해서는 문화재의 공공성 측면을 제대로 이해하는 주체가 인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해 국보DAO를 결성했다”며 “문화재 소유에 있어 개인 또는 소수에 의한 배타적 소유가 아니라 공공성의 원칙에 우선적으로 동의하는 다수의 구성원에 의해 공동 소유하는 모델이 필요하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경매 나흘 전 다소 촉박한 일정으로 모금 사이트를 오픈한 국보DAO는 약 24억원을 모금하며 경매 참여 최소자금 50억 확보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블록체인과 탈중앙화 자율조직 시스템에 의한 공동 소유 개념이 국보를 놓고 논의된 점에서 많은 시사점을 남겼다. 간송미술재단이 경매에 출품한 국보 2점은 결국 유찰됐다. 문화재계 일각에서는 간송 컬렉션의 보존을 위한 민관 차원의 체계적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이어진 가운데 DAO가 그 대안이 될 수 있을지, 또 현행법상 DAO의 법적 지위와 문화재 공동소유를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한 새로운 쟁점들이 다양하게 논의될 전망이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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