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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찬일의 문화수다] 문화예술을 향한 남다른 비전을 공유·실천하는 대통령을 상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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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찬일의 문화수다] 문화예술을 향한 남다른 비전을 공유·실천하는 대통령을 상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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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경기도 안성 박두진문학관에서의, 조촐했지만 아주 뜻깊은 행사에서 ‘한류 문화와 문학 2022년’이란 주제로 특강연을 하고 왔다. 반 연간지 ‘운율마실’ 등을 발행하는 문학동호회 ‘신세계문학’ 신년회에서였다. 총 9명이 함께 했던 프로그램에서 하이라이트는 그러나, 필자의 강연이 아니었다. 시인이기도 한 임인호 대표의 사회로 진행된, 7명의 짤막한 자기소개와 행사 동참 소감이야말로 단언컨대 그날의 꽃이었다. 현재 나는, 그들의 짧았으나 촌철살인이었던 말의 향연이 안겨준 깊고 큰 여운에 휘감겨 있는 중이다. 다름 아닌 이 칼럼이 그 증거다.


그중에서도 ‘운율마실’의 교정을 맡고 있다는 40대 초의 여성 문우는 평생 잊을 수 없을 감회로 장내를, 시쳇말로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문학’, 이란 낱말을 떠올리기만 해도 눈물이 난다며 눈시울을 적시는 게 아닌가! 감동을 넘어, 일대 충격이었다. 특정 작품도 아니고 문학이라는 장르를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 눈물이 흐른다니 말이다.

하다 보니 영화 비평가의 삶을 30년 가까이 살아왔으나, 학부와 석사 과정에서 필자는 독어독문학을 전공했다. 중학교 2학년 적 탐독했던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 ‘황야의 이리’, ‘데미안’, ‘싯다르타’ 등 일련의 대표작들과, 표도르 M.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등은 일찍이 10대 소년의 인생을 뒤흔들고, 나아가 미래의 방향성을 결정지은 생애의 소설들이다. 2018년 ‘경향신문’ ‘내 인생의 책 5권’ 중 첫 번째로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지와 사랑)를 내세웠던 것도, ‘데미안’ 발간 100주년을 기해 2019년 ‘내 삶에 스며든 헤세’(라운더바우트)를 기획·출간했던 것도 그래서였다. 이 소설들은 수십 년의 세월을 필자와 함께 살아왔고, 아직도 가슴을 설레게 하고 있다.


그럼에도 ‘문학’이란 어휘 자체가 눈물을 흘리게 한 적은 없다. 초등학교 저학년 적부터 50년 이상을 봐온 영화도 마찬가지다. 개인적으로 가장 존경하는 거장 켄 로치 감독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나, 현존 세계 최고 감독 중 한 명인 드니 빌뇌브의 ‘그을린 사랑’(2010), 40대 초반의 이른 나이에 대가의 경지에 도달한 하마구치 류스케의 ‘드라이브 마이 카’(2021)와 ‘해피 아워’(2015) 등 눈가를 씻게 하거나, 가슴만이 아니라 머리, 몸 전체를 먹먹하게 한 예들은 적잖으나 영화라는 단어를 연상하며 눈물을 닦은 적은 없다. 사십 수년을 지속적으로 들어왔으며, 지금도 원고를 쓰며 유튜브를 통해 듣고 있는 클래식 음악도, “다시 태어나면 댄서가 되리라” 다짐했던 대학 1년 적 이래 줄곧 가장 좋아하는 예술이라고 습관적으로 말해온 (현대)무용도, 실기에서는 워낙 젬병이라 언제부터인가 그 역사에 얕지 않은 관심을 품어온 미술도 그렇다.


혹자는 상기 문우의 눈물을 일시적 센티멘털리티로 치부할 수도 있다. 필자 또한 과도하게 감상적 반응을 하는 거 아니냐고 핀잔을 들을 수도 있다는 것쯤도 안다. 하지만 그렇게 간주하기에는 그 문우의 그때 그 감수성은 너무나도 소중하고 아름답게 다가서는 게 사실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바닷속으로 뛰어들어 마음껏 헤엄치는 멋진 고래 한 마리가 되겠다고 마음 먹은 오늘”이었다는 후기를 남겼단다. 우리네 인류는 언제부터인가 지나치게 몰·비감성적으로, 포스트-휴먼 따위를 운운하며 비인간적인, 너무나도 비인간적으로 치닫고 있는데, ‘오징어 게임’을 통해 한국 배우 사상 최초로 골든글로브 상 남우조연상을 거머쥔 오영수 선생이 권한 ‘아름다운 삶’을 살기 위해 시급히 요청되는 게 그런 감성의 회복일 터여서다.

대선이 50여 일쯤 남은 지금 이 순간, 문득 이런 바람을 가져본다. 문화예술을 향한 남다른 비전을 공유하고 실천하는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상상을. 독서의 중요성을 새삼 강조할 필요는 없겠지만, 관련해 최근 번역·발행된 멋진(Cool) 책 한 권을 추천하고 싶다. 어느 유튜버가 5·60대에게 권한 5권 중 하나인바, 25개 장으로 구성된 목차와 도입부만으로도 혹하지 않을 길 없다. ‘우리는 지금 문학이 필요하다 - 문학 작품에 숨겨진 25가지 발명품’[앵거스 플레처 지음, 박미경 옮김, 비잉(Being), 2021-12-22/ 원제 Wonderworks: The 25 most powerful inventions in the history of Literature(2021)]이다.


호머(‘일리아드’)를 필두로 셰익스피어(‘햄릿’),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백년의 고독’), 프란츠 카프카(‘변신’), 마리오 푸조(‘대부’) 등 우리가 경애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읽다 보면 어떻게 불을 피우고 스마트폰을 제작하는지는 알 수 없어도, 어떻게 살아가고 사랑해야 하는지, 죽음 앞에서 어떻게 용기를 유지하는지, 어떻게 상실의 아픔과 실패를 극복하는지, 기쁨과 희망과 목적의식을 찾지 못할 거라는 의심을 어떻게 떨쳐내는지는 알 수 있”(출판사 책소개)게 해주는 저서다. 오죽하면 ‘티핑포인트’, ‘아웃라이어’, ‘다윗과 골리앗’, ‘블링크’ 등의 베스트셀러 작가 말콤 글래드웰이 “너무 환상적이다. 이 책은 끝내주는 책이다!”라고 극찬했겠는가. 저자는 “문학이 발명된 이유”(19쪽)를 설명하면서, 문학의 “첫 번째 위대한 힘은 바로 서술narrative이었다. 흔히 쓰는 말로 하면, 스토리story”며, “문학은 사랑, 경이, 믿음 같은 감정을 자극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문학의 두 번째 위대한 힘이다. 이러한 감정은 워낙 막강해 삶을 괴롭히는 악마들을 막아낼 수 있었다.”(20쪽)고 역설한다. 내친김에 하마구치 영화들도 강추한다. 인간에 대한 이해와 연관해 그만한 텍스트와 조우하기란 쉽지 않을 테기 때문이다. 빈말이 아니다. 당장 선거 운동에도 적잖은 자극·영감을 얻을 수 있으리라 장담한다.


과욕이란 것은 안다. 그래도 언젠가는 그런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 꾸준한 독서는 말할 것 없고, 1년에 한 번쯤은 극장을 방문해 영화도 관람하고, 연극이건 뮤지컬이건 클래식 콘서트건 오페라건 국악이건 장르 불문 공연장이나 미술 전시회도 찾아갈 수 있는 감(수)성과 소양 등을 두루 겸비한 대통령을…….


전찬일 영화평론가·중앙대학교 글로벌예술학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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