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인간의 몸속에는 많은 미생물(마이크로바이옴)들이 존재한다. 예전엔 존재조차 몰랐지만 최근 들어 음식 소화, 내분비 기능 조절에서부터 신경 전달, 면역력 강화, 암 억제, 염증 치료, 대사 조절 등 인체에 다양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장내미생물(microbiota)들이 모인 생태계(마이크로바이옴)를 건전하게 가꾸고 조절하는 일이 건강에 중요하다는 인식도 커지면서 관련 시장도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장내미생물이란?
사람의 피부와 체강에는 다양한 세균, 고세균, 바이러스, 진균 등 미생물들이 존재한다. 이들 미생물의 집단을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이라고 부른다. 숙주인 사람과 생태적 공동체를 이뤄 상호작용을 하면서 건강 유지나 질환 발생에 중요한 작용을 한다. 그중에서도 인간의 장내에는 건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대부분의 미생물들이 살고 있다. 다양한 화합물을 생성해 음식 소화, 장내 분비 기능 및 신경 신호 조절, 면역력 강화, 약물 작용 및 대사 조절 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즉 장내미생물은 숙주 세포 증식 및 혈관 형성에 영향을 줘 광범위한 질환 치료에 효과가 있다.
장내미생물은 유익균(프로바이오틱스)과 유해균(나쁜 박테리아)으로 구분할 수 있다. 유익균으로는 바피도박테리아, 에스체리치아 콜라이, 락토바실러스가 있고 유해균에는 캠필로박터, 엔테로코커스, 클로스트리디움 등이 꼽힌다. 장내에 이 같은 균들의 생태계가 얼마나 건전하냐가 핵심인데 수유나 식생활 등 생활 방식, 음주나 약물 등 후천적 환경은 물론 유전적 영향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왜 중요한가?
미생물-장-뇌 축이론(Microbiota-Gut-Brain axis)이 주목을 끌고 있다. 기존엔 ‘뇌-장 축이론’, 즉 뇌 기능의 변화가 장 기능에 영향을 준다는 이론이 대세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장내미생물이 역으로 인간의 건강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라 보고되면서 오히려 장내미생물들이 장과 뇌에 큰 영향을 준다는 ‘미생물-장-뇌 축 이론’이 힘을 얻고 있다. 예컨대 자폐아에게 건강한 사람의 장내미생물을 투여했더니 치료할 길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자폐 증상이 개선됐다는 연구 결과가 대표적 사례다. 이를 통해 과학자들은 장내세균을 통해 뇌질환의 치료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다양한 연구를 진행해 일부 성과를 내고 있다. 한국연구재단이 지난달 펴낸 연구개발(R&D) 보고서에 따르면 장내 미생물 관련 논문은 1990~2000년대만 해도 전 세계에서 406건에 불과했지만 이후 급증해 2016~2020년 6만1482건이나 발표됐다. 국내에서도 정부가 기초연구사업으로 지원하면서 연구가 활발하다. 2018년 23건(33억1900만원), 2019년 32건(46억1800만원), 2020년 40건(66억8300만원)이 지원됐고, 이 결과 주요 논문(SCI 게재)이 2018년 14건, 2019년 24건, 2020년 61건이 각각 발표되는 등 성과가 나왔다.
◇주요 연구 성과
장내미생물들의 다양한 건강, 질병 관련 기능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연세대 연구팀은 최근 미생물 유래 단백질인 P8가 대장암 억제 효과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에 유전자 조작을 통해 P8질을 과잉생산하는 미생물을 만들어 대장암 발현 동물모델(쥐)에게 투입했더니 탁월한 항암 효과를 보였다. 또 포항공과대 연구팀은 효모에서 추출한 다당체가 염증성 장질환(IBD) 및 다발성 경화증(MS)을 억제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코로나19가 장내미생물에 변화를 일으킨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미국의 하와이대 암센터 연구팀은 지난해 5월 중증 코로나19 환자의 장·폐에서 미생물 군집의 변화가 확인됐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그만큼 코로나19가 인체에 큰 영향을 미치며, 역으로 이 같은 미생물이 인간의 건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시사했다는 평가다. 이탈리아에선 2020년 8월 장내미생물에서 만들어지는 물질이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해 전 세계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 또 중국 수도의과대는 지난해 3월 척추 손상을 입은 쥐에게 장내미생물을 이식했더니 신경이 회복됐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와 함께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은 2020년 7월 장내미생물 유래 물질이 꼬마선충의 수명을 조절한다는 사실을 확인해 숙주, 즉 인간의 장수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마이크로바이옴, 식품·제약의 대세
빅데이터·컴퓨팅과 유전자 분석 기술의 발달로 빠른 연구가 가능해지면서 마이크로바이옴이 기능성·약용 식의약품시장에서 대세로 떠올랐다. 초고속 대용량 염기서열 분석 기술의 급격한 발달로 장내미생물에 대한 분석이 가능해지고 생태계에서의 기전을 더 정확하고 빠르게 알 수 있게 됐다. 이러한 새로운 기능 및 작용에 대한 지식의 축적은 식품 및 제약 기업의 신제품 개발 활성화로 이어지고 있다. 글로벌 마이크로바이옴시장은 급속히 성장하고 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국가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에 따르면 2019년 811억달러에서 연평균 6%씩 성장해 2023년에는 1086억8000만달러 규모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프로바이틱스시장도 2012년 519억원에서 급격히 커져 2016년에는 1903억원에 달하는 등 2012~2016년 연평균 38.4%씩 급성장했다. 과학기술일자리진흥원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글로벌 프로바이오틱스시장 규모는 43억달러를 넘어섰고, 연평균 8.7%씩 성장하고 있다.
김동현 서울대 교수는 장내미생물의 새로운 기능에 대한 연구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국제적으로 장내미생물의 새로운 역할 발견에 대한 연구가 상당수 발표되고 있는 반면 국내에선 특정 질환 환자와 건강인의 마이크로바이옴이 다르다거나 효능 확인 수준의 연구가 대부분"이라며 "마이크로바이옴의 기초연구가 탄탄하게 이뤄져야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춘 장내미생물 기반 제품 개발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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