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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라이트]반칙의 세상, 원칙의 용기, 변칙의 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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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경관의 피' 조진웅, 범죄척결에 물불 안가리는 광수대 간판
"원칙에 근거 중요하지만 미해결땐 박강윤식 수사도 필요하지 않을까"
뼛속까지 원칙주의자 최민재와 대비…간소화된 각색에 생명력 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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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우리에게 유리한 상황이었던 게임이 우리를 저버리게 되는 때가 오면 인내심을 갖고 그 게임의 흐름이 바뀌기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진다고 생각했던 게임에서 다시금 승리할 기회를 얻는다. 그 게임은 우리의 원칙을 걸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정치가 토머스 제퍼슨(1743~1826)의 격언이다. 대쪽같은 원칙주의를 강조한다. 영화 '경관의 피'의 최민재(최우식)도 같은 신념으로 살아간다. 도덕적 가치를 저버리지 않는 책임 완수를 우선시한다. 직업도 경찰이다. 아버지 등을 보며 같은 길을 걷기로 마음먹었다. 융통성 없는 옹고집으로 낙인찍히나 내사 업무를 맡을 적임자로 낙점된다. "조부 최을영, 부친 최동수, 그리고 자네 최민재. 3대가 경찰이지. 자네 몸속에는 경찰의 피가 흘러."


뒷조사 대상은 광역수사대 간판 박강윤(조진웅). 범죄 조직의 뒤를 봐주며 막대한 이권을 챙긴다고 의심받는다. 겉모습부터 여느 경찰과 다르다. 명품 정장을 걸치고 고급 차를 탄다. 수사비는 수천에서 수억 원. 출처는 불분명하다. 알고 보면 하나같이 상류층 범죄자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영장 대용품이다. 경찰이 손쓰기 어려운 강력 범죄를 뿌리 뽑으려고 범죄자들과 타협하기도 한다. 범죄 수사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의욕적인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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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관의 피'는 범죄 척결이라는 목적에 다르게 접근하는 두 경찰의 충돌을 다룬다. 최민재의 신념은 문명사회가 지향해야 할 최선의 지표다. 특히 공적 업무에서 신뢰와 도덕은 필수다. 개인의 이해관계가 개입되면 결과를 떠나 과정의 가치가 퇴색된다. 일시적 이익을 가져올지 몰라도 치러야 할 엄청난 대가가 잠재한다. 구구절절한 변명도 설득력이 있을 수 없다. 모든 사람이 편법을 쓰지 않을뿐더러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그런 행동은 정당화되지 않는다. 이쯤 되면 박강윤은 절대적으로 불리해 보인다. 하지만 이규만 감독은 최민재 못잖은 정당성을 부여한다. 맹목적 수사만이 효과를 낼 정도로 경찰이 무기력하고 퇴영적이라고 비판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범죄자를 처단해 인기를 끈 드라마 '나쁜 녀석들(2014)', '모범택시(2021)' 등과 궤를 함께한다.


이 감독은 조진웅의 연기를 입혀 갈등의 균형을 맞춘다. 콘크리트처럼 단단한 체구와 낭랑한 목소리는 이미 다양한 영화에서 호소력을 발휘했다. 정지영 감독의 '블랙머니(2019)'에서 연기한 양민혁 검사가 대표적인 예다. 마지막 신에서 대중 앞으로 나아가 거대한 금융 비리의 실체를 고발한다. "형사소송법 제234조 1항 누구든지 범죄가 있다고 사료하는 때에는 고발할 수 있다. 나는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사건을 은폐하려는 저 정치 검찰을 고발한다." 단호하고 결단력 있는 말투는 영화의 모티브인 론스타 게이트의 심각성을 재조명하는 동시에 경각심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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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영화에서는 수많은 미제 사건을 가리키며 성역 없는 수사를 강조한다. 조진웅은 "부적절한 수사가 발각돼 비난이나 벌칙이 내려지더라도 그 행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치가 더 크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라고 박강윤을 소개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우리 사회에 해결되지 못한 사건들이 부지기수잖아요. 국민 정서에 어긋나 크게 조명돼도 은폐되고 조작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피해는 온전히 국민의 몫이죠. 원칙에 근거한 수사도 물론 중요해요. 하지만 이 정도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박강윤 식의 수사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게 우리 사회에 더 이득일 테니까요."

'경관의 피'에서 조진웅의 생각은 그대로 나타난다. 박강윤이 내사 행위가 발각된 최민재를 마주하고 자기 신념을 이야기하는 신이 그렇다. 권위주의나 강압을 앞세운 훈계로 그리지 않았다. 담백하게 자기주장을 펴는 동시에 선택의 자유를 인정한다. "뭐 하나만 물어보자. 감찰 애들 지시랑 내가 시키는 것이 상충한다. 누구 따를래? 잘 들어. 넌 내 반원이고, 우린 한 팀이다. 그러니까 내 명령만 따르면 돼." "그게 규칙에 어긋나고 위법이어도요?" "범죄 추적은 위법이 될 수 없다. 어떤 경우, 어떤 방식도. 진짜 경찰이 되는 것과 비겁한 관료가 되는 것, 둘 중에 선택하는 문제야. 곧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가 올 거다." "전 경찰의 사명을 따르겠습니다." "이번 일로 너랑 나 사이에 바뀌는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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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웅은 명료한 표현을 위해 사사로운 감정 등에 기대지 않는다. 과장된 연기와도 철저하게 거리를 둔다. 직업인으로서 사명과 고뇌에만 집중해 스타일리시한 화면 속에서도 온전히 확고한 신념을 드러낸다. 그 덕에 불의의 현실에 가로막혀 주춤하는 얼굴에서는 직업정신에 동반된 무게감이 나타난다. 나약한 본성을 넘어 자존감으로 발현해 직업인으로서 임무 완수가 얼마나 어려운지 체감하게 한다. 사사키 조의 동명 원작 소설에도 힘주어 실린 대목이다. 조진웅은 일관된 표현으로 시대상과 가족상이 간소화된 각색에 값진 생명력을 부여한다.


"우리 경관은 경계에 있다. 흑과 백, 어느 쪽도 아닌 경계 위에 서 있어." "어느 쪽도 아니라니, 그게 가능합니까?" "가능해. 우리가 하는 일을 시민이 지지하는 한, 우리는 그 경계 위에 서 있을 수 있어. 어리석은 짓을 하면 세상은 우리를 검은색 쪽으로 떠밀겠지."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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