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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메타버스'라는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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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명진규 기자] 메타버스(확장가상세계)와 가상현실(VR)의 기원은 19세기 SF소설에 등장했던 ‘피그말리온 안경’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안경을 쓰면 홀로그램에 촉각, 후각까지 가상현실화하는 내용을 상세하게 묘사했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보면 철학사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티베트의 꿈수행은 일종의 가상현실에 대한 탐구다. 꿈이라는 가상세계에서 자신의 또 다른 자아(페르소나)를 대면하고 스스로의 내면에서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 꿈수행의 목적이다.


장자가 내편 제물론(齊物論)에서 ‘내가 나비가 된 꿈을 꾼 것인지, 나비가 내가 된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라는 질문을 던진 호접지몽(胡蝶之夢)의 고사도 같은 맥락이다.

영화 트론(1982년)에서는 PC속 가상현실 세상에 들어가는 장면을 그리며 ‘가상현실’이라는 단어를 유행시켰다. SF소설 뉴로맨서(1984년)에서는 ‘사이버스페이스’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다. 사이버스페이스는 전 세계 모든 기업, 엔터테인먼트, 공공, 군사 분야 등 모든 정보를 교환하는 영역으로 지금의 메타버스 서비스들이 그리는 미래와 가장 근접하게 닿아있다.


소설을 쓴 윌리엄 깁슨 얘기를 잠깐 하자면 그는 당시 컴맹이었다. 뉴로맨서는 타자기로 집필했다. 소설에 등장하는 운영체제(OS)는 슈퍼컴퓨터에서도 일부만 구현이 가능했고 대부분의 사람은 미리 외워놓은 명령어를 키보드로 입력해야 쓸 수 있었다. 소설로 돈을 번 윌리엄 깁슨이 가장 먼저 한 것은 PC를 구입한 일이었다. 기술적 한계를 몰랐기 때문에 미래에 더 근접한 소설을 쓸 수 있었던 것이다.


뉴로맨서 이후 신경계와 뇌를 통해 사이버스페이스에 접속한다는 설정은 좀 더 고도화됐다. 일본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1989년), 영화 매트릭스(1999년)에서 좀 더 설정이 상세해지더니 일본 라이트노블 소드아트온라인(2009년)에서는 가상세계의 죽음이 현실에서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이 화두가 됐다. 지금도 인기 웹소설과 웹툰에서는 현실에서는 어려운 삶을 살지만 게임세상에서 지존이 된 인물들을 그리고 있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게임뿐만 아니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도 부캐(서브 캐릭터)를 즐기고 메타버스 플랫폼에서 비싼 가격에 명품백 아이템을 구매하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새롭지 않은 메타버스 얘기를 새해부터 꺼내든 이유는 종무식과 시무식을 메타버스에서 진행했다고 보도자료를 보냈던 몇몇 기업 때문이다. 이후 메타버스 플랫폼 활용 방안이 궁금해 물어보니 이벤트에 불과했을 뿐 업무에 사용할 계획은 없다고 한다. 그도 그럴듯이 재택근무를 한다 해도 필요한 것은 메타버스가 아니라 화상회의를 위한 카메라와 인터넷 메신저다.


수많은 메타버스 플랫폼에 입점하고 있는 가상매장도 이벤트를 위한 또 하나의 채널에 불과할 뿐 기술적 한계가 명확하다. 사진과 동영상으로 구매를 유도하는 인터넷 쇼핑과 별반 차이가 없다. 결국 상품의 냄새와 촉감까지 느낄 수 있는 SF소설 속의 기술이 구현되거나 현재의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상상력을 발휘하지 않는 이상 메타버스 플랫폼은 ‘또 하나의 현실’이 될 수 없다. 수년전 인공지능(AI) 알파고가 등장했을때 거의 모든 기업들이 AI를 도입하겠다며 나섰던 때를 되풀이할 뿐이다.




명진규 기자 ae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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