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교제 거부해 보복한 일반적 교제살인 유형 아냐"
"살해 의도 없었고, 후회한다" 7년 선고
전문가 "이별 상황만 교제살인? 납득 어려운 판결"
"교제폭력 반복되는 이유, 죄에 비해 낮은 형량"
서울 마포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여자친구를 폭행해 숨지게 한 30대 남성이 지난해 9월15일 서울서부지법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법정에서 나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아시아경제 강주희 기자] 서울 마포구 오피스텔에서 말다툼하던 중 여자친구를 폭행해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30대 이모씨가 1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연인에게 폭행당해 사망했지만 7년 형량에 그쳤다는 사실에 유족은 "살아갈 수 없다"며 울분 터뜨렸다.
전문가는 죄의 정도에 비해 현저히 부족한 형량으로 인해 범죄를 예방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2부(부장판사 안동범)는 6일 상해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씨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여러 사정을 고려하면 피고인이 피해자를 폭행해 상해를 가하고 사망에 이르게 한 것을 넘어 의도적으로 피해자를 살해했거나 살해 의도가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이번 사건은 일반적인 '교제살인' 유형과도 다르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른바 교제살인 내지 스토킹살인의 유형으로 헤어지자고 하거나 교제를 원하지 않는 여성에 대해 보복 의도를 가지고 계획적으로 살인 범행에 이른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며 "범행 동기를 살피면 피고인은 피해자와 연인으로 교제 중 자주 다퉜지만, 이 사건 범행 이전에 지속적인 폭행 관계에 있지 않았다. 피고인은 이 사건 이전에 평범하게 살아왔고 이 법정에서 피해자의 사망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며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후회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앞서 이씨는 지난해 7월25일 마포구의 오피스텔 로비 등에서 여자친구였던 황씨와 말다툼하다 머리 등 신체를 수차례 밀치고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 이씨의 폭행으로 의식을 잃은 황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3주간 혼수상태로 지내다가 같은 해 8월17일 끝내 숨졌다.
이씨는 당시 의식을 잃은 황씨를 바닥에 방치하고, 119 안전신고센터에 '황씨가 술에 취해 의식을 잃은 것 같다'는 취지의 거짓 신고도 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씨의 범행에 고의성이 없었다고 최종 판단한 것이다.
이 같은 판결에 유족은 분통을 터뜨렸다. 황씨 어머니는 판결 후 "제가 7년을 받으려고 5개월 동안 피 말리는 시간을 보냈나. 우리 아이는 제가 사랑으로 키웠고, 사람을 사랑할 줄 알게 키웠다. 그 사망 대가가 7년이라면 부모는 앞으로 살 수가 없다"며 눈물을 흘렸다.
이후 유족들은 입장문을 내고 "여전히 피고인에게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있었고 피고인이 (상해치사가 아닌) 살인죄로 처벌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검찰의 낮은 구형보다 더 가벼운 형을 선고한 1심 재판부의 판단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검찰에 항소할 것을 요청했다.
교제폭력 사건의 미약한 처벌은 그동안 계속 지적되던 문제다.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최근 5년간 교제폭력 유형별 신고 건수·입건·조치 현황'에 따르면, 지난 2016∼2020년 살인·살인미수, 폭행·상해, 체포·감금·협박, 성폭력 등 교제폭력 사건은 총 4만7755건으로 하루 평균 26건 발생했다. 살인이나 살인미수 혐의를 적용받은 사건은 227건이었다. 그러나 이중 구속된 인원은 2007명으로, 전체의 4.2%에 불과했다.
전문가는 교제폭력은 성폭행·살인 등 강력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음에도 합당한 처벌이나 조치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은의 변호사(이은의 법률사무소)는 "평소에 폭행 반복성이 없고, 상대로부터 헤어지자는 말을 들은 바가 없다는 이유로 교제살인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은 교제폭력의 개념 자체를 재판부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 그런 이유와 상관없이 현재 또는 과거의 교제관계 속에서 상대방에게 폭력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모두 교제폭력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반복적으로 일어난 폭력이 아니라고 하는데, 피해자는 사망했기 때문에 반복성 자체를 함부로 재단할 수 없다. 이번 사건은 폭력의 정도를 보았을 때 이전에도 상습적으로 폭력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하는 게 합리적이다. 또 피해자가 쓰러진 이후 가해자가 거짓 신고를 하거나 제대로 된 응급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점 등으로 미뤄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헤어지자는 통보를 받고 흉기를 준비해야만 살인의 고의가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교제폭력을 저지르는 다수의 가해자가 유사동종 전과가 있다. 이는 그들이 교화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원인은 죄의 정도에 비해 현저히 부족한 형량에 있다"고 지적했다.
강주희 기자 kjh81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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