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가장 잔인한 이별’, 치매의 또 다른 별칭이다. 사랑하는 사람마저 기억하지 못한 채 점점 두뇌의 모든 기능이 퇴화된다. 소중했던 추억은 다 잊어버린 채 결국은 욕창 등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숨을 거둔다. 고령화 사회를 맞아 더욱 흔해지면서 ‘오랜 병에 효자 없다’는 옛말처럼 개인·가족은 물론 사회 전체적으로 가장 큰 복지 부담이 되고 있기도 하다. 세계 각국 정부들은 치매 치료법 개발을 주요 국가 과제로 선정하고 해결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치매는 질병이 아니다?
각종 질병 등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 뇌세포가 죽어가면서 퇴행성 행동을 보이는 증상을 의미한다. 후천적으로 발생하며, 점차 진행돼 결국 일상 생활을 하지 못할 정도로 뇌의 능력이 퇴화되는 것을 ‘치매’라고 한다. 치매는 뇌의 기억력, 공간 지각력, 언어 능력, 계산력, 판단력, 운동 능력 등 모든 기능을 감퇴시킨다. 힌트를 주면 금방 다시 기억하거나 전체적으로는 기억이 나지만 세부사항만 까먹는 등 단순 노화에 따른 건망증과는 구분해야 한다.
치매가 계속 진행되면 우울증, 불면증, 불안증에 시달리기 시작하며 배회, 망상, 언어 및 신체적인 공격성 증가, 환청·환시 등 정신과 질환으로 이어진다. 종국엔 운동 능력까지 퇴화돼 침대에 누워 생활하다 폐렴이나 욕창 등 감염증으로 숨을 거두는 경우가 많다. 최근엔 코로나19 감염 사망자 발생의 주요 기저질환으로 꼽히고 있다.
최근 인구 고령화와 식습관 변화 등에 따라 급증하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매 20년마다 치매 인구가 두 배씩 증가해 2050년엔 300만명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65세 이상 노인인구 10명 중 1명이 치매를 앓고 있으며, 치매의 전 단계인 경도 인지 장애는 10명 중 2~3명에 달한다. 사회적 비용도 크다. 치매 노인 1인당 비용은 1년에 2042만원(2019년 기준)이나 돼 가계에 큰 짐이 되고 있다. 2040년께 국가 차원의 치매 관리 비용은 63조1000억원으로 추산되고 있다.
◇치매는 어디서 시작되나
근본적인 원인과 발병 기전, 치료법은 아직 확실치 않다. 현재까지는 알츠하이머 등 퇴행성 뇌질환, 뇌경색ㆍ뇌졸중 등 혈관성 뇌질환, 루이소체·파킨슨성 치매, 기타 질환 등을 원인으로 보고 있다. 알츠하이머는 전체 환자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주요 원인 질환이다.
그동안 아밀로이드베타·타우 단백질 등 ‘나쁜 단백질’이 비정상적으로 쌓여 뇌세포들을 고사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최근엔 한국 연구진이 중증 반응성 별세포가 신경세포를 죽이고 치매 병증을 유도한다는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알츠하이머 치매는 나이 들수록 발병이 많아져 65세 이후 5년마다 환자 수가 두 배씩 늘어난다.
70세 이전에 발견되면 진행을 늦추고 증세를 완화시킬 수는 있지만 아직까지 치료약은 개발돼 있지 않다. 파킨슨성 치매도 루이소체라는 물질이 중뇌 부위에 축적돼 뇌 도파민 시스템에 이상이 생겨 운동·인지 장애를 갖게 되는데 현재까지 치료법은 없다. 반면 다른 종류의 치매들은 원인 질환을 없앨 경우 증상 개선 및 치료가 가능하다. 혈관성 질환에 의한 치매는 뇌졸중, 즉 뇌 속 혈관이 막히거나 터져 뇌세포가 죽거나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경우에 발생한다. 이에 따라 뇌졸중을 치료하면 개선·치료될 수 있다.
이 밖에 2차 치매를 가져 오는 90여개의 질환들이 있다. 알코올 중독, 뇌종양ㆍ뇌수두증, 에이즈나 바이러스성 뇌염, 신경 매독, 비타민 B12 등 영양 부족 때문에도 치매가 발생한다. 현재 알츠하이머 등 치매로 뇌 인지 기능이 저하된 경우 아세틸콜린 분해효소 억제제(아리셉트, 레미닐, 엑셀론), 글루타메이트 수용체 억제제 등 뇌신경전달물질을 보충해주는 약물 치료 기법이 쓰이고 있다. 6개월~1년 정도 효과가 나타난 후 이후 현저히 약효가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울증, 망상이나 폭력적 성향 등은 정신과 치료 약물을 복용해야 한다.
◇예방·조기 진단이 최우선
전문가들은 치매의 뿌리가 깊은 만큼 40~50대 때부터 건강 관리 및 예방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치매의 원인 물질이 15~20년 전부터 뇌 속에 축적되기 때문이다. 우선 규칙적인 운동이 첫 손에 꼽힌다. 매일 30분씩 주 3회 걷기만 해도 인지장애 확률이 33% 낮아지고 치매 발병도 31% 감소한다. 사람을 많이 만나는 등 사회 활동도 필수다. 친구 1~2명을 더 사귀면 인지 기능 저하 발병률이 30% 낮아지고, 혼자서만 지내는 사람은 치매 확률이 1.5배 높아진다. 친척, 친구나 이웃을 한 달에 한 번 이상 만나면 15%, 매일 만나면 치매 확률이 43% 줄어든다. 사람들과의 대화와 정보 교환, 감정 교류 등이 뇌 신경 세포 활동을 자극해 상호 연결성을 개선하기 때문이다.
독서, 신문 읽기, 글 쓰기 등 적극적인 두뇌 활동도 필요하다. 독서와 글쓰기를 하지 않는 사람은 치매 확률이 4배나 더 높다. TV 시청 같은 수동적인 두뇌 활동은 인지 장애의 확률을 10% 높이는 반면 게임, 오락, 글쓰기 등 창작 활동은 뇌 기능 유지에 도움이 된다. 영양분의 충분한 공급도 필수다. 특정 영양소나 건강식품을 섭취하기보다는 식단에 생선, 채소, 과일을 포함시켜 지속적으로 섭취하는 것이 좋다. 특히 우유는 매일 먹을 경우 알츠하이머 치매 확률이 60% 이상 낮아진다. 고혈압·고혈당·고지혈증 등 이른바 ‘스리(three) 고’ 질환을 가진 사람들은 뇌 기능 장애로 이어지기 쉽기 때문에 꾸준한 약물 복용이나 원인 개선이 필요하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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