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伊 정상 유력 일간지 공동 기고 "재정준칙 완화" 주장
강경파 獨 메르켈 물러나자 佛·伊 재정준칙 완화 움직임
투자 부진에 재정지출 악순환…'황금률' 도입 목소리도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가 23일(현지시간) 유력 경제 일간지 공동 기고를 통해 유럽연합(EU) 재정준칙 개정을 주장했다.
EU 재정준칙으로 일컬어지는 '안정·성장 협약(Stability and Growth Pact)'은 EU 회원국의 정부 재정적자 비율을 국내총생산(GDP)의 3%, 부채비율을 GDP의 60% 이내로 제한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다. 특정 회원국이 방만한 재정 운용으로 유로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됐으며 재정준칙을 위반한 국가에는 벌금 등 제재 조치가 가해진다.
마크롱 대통령과 드라기 총리는 재정준칙이 정부 재정지출을 억눌러 투자 확대와 경제 성장의 걸림돌이 된다고 주장했다.
두 정상은 "재정준칙이 투자에 우호적 방향으로 개정돼야 한다"며 "투자 확대를 위해 재정적자와 부채비율 한도를 상향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재정준칙을 위반한 국가에 부과되는 벌금을 낮춰야 한다"며 "공공지출을 우선순위로 두는 것이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채무와 EU의 미래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두 정상은 "합리적인 구조개혁을 통해 계속되는 재정지출을 억제하는 것이 우리의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재정지출 제한이 결국 투자 부진, 성장 둔화로 이어져 경제가 위기에 빠지고 정부는 다시 재정지출 확대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빠지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2012년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채무위기가 이어지면서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EU 재정준칙 완화에 대한 요구가 제기됐다. 하지만 독일,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등 재정이 탄탄한 국가들이 번번이 이들 남유럽 국가의 요구를 묵살했다. 특히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가 엄격한 재정준칙 적용을 강조하며 남유럽 국가들과 잦은 충돌을 일으켰다. 메르켈 총리가 물러나자마자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재정준칙 개정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셈이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지난달 말 상호 우호조약을 체결하며 독일의 정권 교체기를 틈타 자신들의 목소리를 키우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탈리아 정부는 지난 10월 아예 EU 재정준칙을 무시한듯한 2022~2024년 예산안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3개년 재정적자 비율 목표를 각각 5.9%, 3.9%, 3.3%로 잡았다.
EU는 지난해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2023년까지 재정준칙을 적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예외가 인정되지 않는 2024년에도 재정준칙 기준을 웃도는 재정적자 비율을 잡아 논란을 일으켰다. 이탈리아 정부가 반드시 재정준칙 완화를 관철시키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고 볼 수도 있는 셈이다.
새로 출범한 독일 연정은 재정준칙의 원칙을 강조하면서도 투자 확대를 위한 여지를 두고 있다. 경제 체제를 기존 화석연료 기반에서 친환경 에너지 위주로 전환해야 하기 때문에 친환경 부문에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독일 자유민주당 대표 출신인 크리스티안 린트너 독일 재무장관은 지난주 브뤼노 르메르 프랑스 재무장관과의 첫 회담에서 "유로존 통화 안정과 기후 친화적인 경제로 발전해가는 과정에서 필요한 더 많은 투자를 결합해야 한다"며 "이는 어렵지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독일 새 정부는 연정 합의문에서 "재정준칙은 유연성을 보여줬다"며 "이를 기반으로 성장, 채무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하고 지속가능하면서 친환경적 투자를 보장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밝혔다.
친환경 투자와 관련, 일각에서는 이른바 '황금률(golden rule)' 원칙을 도입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친환경 투자 항목은 EU 재정준칙 적용에서 배제하자는 것이다. 황금률 도입과 관련해서는 대부분 EU 회원국들이 동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웁케 훅스트라 네덜란드 재무장관 대행은 "황금률이 공공투자를 늘리는 데 확실한 효과가 있지도 않고 너무 복잡하다"며 황금률에도 부정적 입장을 나타냈다. 황금률 도입과 관련해서는 친환경 투자의 기준을 우선 명확히 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최근 실제로는 친환경 투자가 아니면서 친환경 투자임을 강조하는 위장 친환경주의, 이른바 그린워싱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다.
발디스 돔브로브스키스 EU 집행위원장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그린 황금률 도입을 검토해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그는 EU의 우선순위는 전체 공공부채를 줄이는 것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U는 지난 10월부터 2024년 이후 새로 적용할 재정준칙을 개정할지 논의를 시작했다.
EU 재정준칙 개정을 둘러싼 논의는 프랑스가 EU 순회 의장국을 맡는 내년 상반기에 더욱 뜨거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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