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자체로 책 전체 내용을 함축하는 문장이 있는가 하면, 단숨에 독자의 마음에 가닿아 책과의 접점을 만드는 문장이 있습니다. 책에서 그런 유의미한 문장을 발췌해 소개합니다. - 편집자주
주소는 단순히 위치를 지정하는 수단에 그치지 않는다. 연구에 따르면 영국에서는 ‘스트리트(street)’에 있는 주택이나 건물은 ‘레인(lane)’에 있는 건물의 절반 가격에 거래됐다. 미국에서는 ‘레이크(lake)’가 들어간 주택은 전체 주택 가격의 중앙값보다 16% 높았다. 저자는 이 같은 이야기를 전하며 주소의 기원과 역사를 탐색하고 주소 체계와 거리 이름에 담긴 다양한 사회 정치적 이슈를 탐구한다. 미국 전역뿐 아니라 영국, 독일, 오스트리아 등 유럽 지역과 한국과 일본, 인도, 아이티. 남아프리카 공화국까지 전 세계의 사례를 취재하고 인터뷰해 다채로운 이야기를 전한다.
주소는 긴급 구조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주소는 사람을 찾고 감시하고 세금을 부과하고 우편을 통해 딱히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팔기 위해서도 존재한다. 주소 사업에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웨스트버지니아 주민들은 자기 집 대문에 번호를 부착하는 정부에 저항하던 18세기 유럽인들과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
그러나 많은 주민들은 구글 지도에서 자기 집을 찾을 수 있으면 무엇이 좋은지 잘 알았다. 문에 난 구멍을 통해 ‘쿵’ 하고 유쾌한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우편물을 결국 사랑하게 된 18세기 유럽인들처럼 말이다.
콜카타의 빈민가는 주소보다 시급한 것이 많아 보였다. 위생 설비, 깨끗한 물, 의료 서비스는커녕 장마철 호우를 피할 지붕도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주소가 없어서 빈민가를 벗어날 기회조차 없었다. 주소가 없으면 보통 은행 계좌를 개설할 수 없다. 은행 계좌가 없으면 저축을 할 수 없고 대출도 받을 수 없으며 연금도 받을 수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주소가 신원을 증명하는 데 필수적이라는 사실이다. 모든 인도 주민은 정부에서 발급하는 생체 인식 신원 증명서인 아다르 카드(Aadhaar card)를 소지해야 하는데, 빈민촌 주민들은 주소가 없기 때문에 카드 발급이 쉽지 않다.
스페인과 영국의 도로명을 연구한 경제학자 대니얼 오토페랄리아스는 스페인에서 종교와 관련된 도로명이 많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실제로도 신앙심이 더 깊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영국에서는 ‘교회(church)’ 또는 ‘예배당(chapel)’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도로명이 많은 지역에 사는 사람일수록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높았고, 스코틀랜드에서는 ‘런던 로드’나 ‘로열 스트리트’와 같은 이름의 거리에 사는 사람들이 스코틀랜드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더 약하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주소 이야기 | 디어드라 마스크 지음 | 연아람 옮김 | 민음사 | 1만8000원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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