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업상속공제, 요건 맞추기 어렵고 사후관리 더 까다로워
연 평균 이용건수 75건 그쳐, 사실상 ‘식물제도’
2세 물려줘도 경영 힘들어져…“회사 매각 방법 밖에 없다” 호소
[아시아경제 김종화 기자, 김희윤 기자] "현장에 맞는 제도가 운영돼야 하는데 아무도 활용하지 않는다면 사실상 필요가 없는 제도다."
식물제도에 가까운 가업상속공제에 대한 김희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의 통렬한 비판이다. 가업상속공제는 연평균 매출액이 3000억원 미만인 중소·중견 기업을 10년 이상 경영한 사업자가 기업을 물려줄 때 상속재산 가액을 최대 500억원까지 공제해주는 제도다.
가업상속공제를 받기 위해서는 경영자(피상속인)가 10년 이상 가업을 경영해야 하고, 지분율이 50%를 넘어야 한다. 또 최대 500억원을 공제 받으려면 경영자의 경영기간이 30년을 넘어야 한다. 10년 이상 생존하는 중소기업이 15.8%에 불과한 상황이니 "식물제도"란 지적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사후관리 요건은 더 까다롭다. 가업상속공제를 받은 기업은 ‘업종유지’와 ‘고용유지’ 두 가지 요건을 지켜야 한다. 기업승계 후 7년간 표준산업분류상 중분류 내에서 동일한 업종을 유지해야 하고, 정규직 근로자 고용인력도 100% 유지하거나 임금총액의 100%를 유지해야 한다. 이를 유지하지 못할 경우 유지기간에 따라 공제받은 금액의 80~100%를 추징 당하게 된다.
가업상속공제, 현실에 맞지 않는 ‘식물제도’
4차 산업혁명으로 업종의 구분과 경계가 사라지고, 스마트공장과 로봇이 사람을 대신하는 무인서비스가 대세인 시대다. 게다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생존 자체가 화두인 상황에서 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만 사후관리 요건을 고집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가업상속공제를 받는 기업은 매년 전체 상속세 과세대상자의 고작 1% 정도다.
국세청 국세통계포털에 따르면 2016∼2020년 5년 동안 우리나라의 연평균 가업상속공제 이용건수는 75.8건, 공제금액은 2646억원에 불과하다. 가업상속공제제도가 가장 발달한 독일의 경우 연평균 1만 3169건, 공제금액 276억 유로(한화 약 37조1000억원)에 달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김 연구위원은 "연구를 위해 기업인들을 만나보면 사후관리 요건을 지킬 수 없기 때문에 가업상속공제를 활용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면서 "살아 있을 때 상속해주는 ‘사전증여’의 공제한도를 높여주기 어렵다면 사후관리 요건은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진단했다. 업종유지 요건은 없애고, 고용유지 요건은 ‘7년 100%’에서 ‘5년 80%’로 줄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가업승계는 가족에게 기업을 물려주는 ‘부의 대물림’이라는 부정적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김 연구위원은 "국가 산업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자식이나 친척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개념의 가업승계가 아닌, 경영지속성에 초점을 맞춘 기업승계라는 관점으로 봐야 한다"면서 "기업이 사회적 가치를 유지하고, 경제적 부가가치를 계속 창출하기 위해 제도 개선이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소기업계는 산업트렌드에 따른 업종전환 허용과 경영안정을 위한 지분율요건 확대 등 가업상속공제가 보다 현실적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진 = gettyimage
원본보기 아이콘높은 상속세 창업·경영의지 꺾어
김종현 쎄크 대표는 중소기업 입장에서 상속 전 회사 주식과 자산을 처분하는 증여세 부담이 줄어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가업 증여 과세 특례 제도를 활용하면 세율의 10~20%만 적용되지만 문제는 한도가 100억원에 그친다"며 "중소기업이 상속세로 평균 상속재산의 30.5%를 납부하는 현실에서 만약 지분을 100% 갖고 있지 않은 경영자는 2세에게 물려줘도 원만한 경영활동이 힘든 상황에 놓이게 된다"고 말했다.
IBK기업은행 경제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 오너의 연령층 가운데 60대 이상 비중은 33%로 전체 3분의 1이상이 10년 내 세대교체가 필요한 상황이다. 현재 해당 기업 중 승계가 완료된 중소기업은 3.5%에 불과하다.
조봉현 IBK경제연구소장은 "업종을 변경하거나 고용유지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경우 7년 이내 상속 재산을 처분해야하고, 또 상속인의 주식지분율이 기준 이상 감소한 경우 상속 후에도 세금을 추징당할 수 있다"며 "산업트렌드에 따라 업종전환 허용과 함께 지분율 요건은 현행 50%에서 30%로, 자산 처분 요건도 기존 20%에서 30%까지 확대해야 현실적으로 제도를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조 소장은 "대부분의 경영자들은 자신이 살아 있을 때 승계가 원활히 이뤄지길 바란다"면서 "사전상속으로 인한 증여세 부담을 덜어주려면 가업상속공제처럼 증여세 과세특례 한도를 500억원까지 올려주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높은 상속세는 창업과 기업 경영의지를 꺾을 수 있는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노동시장이 경직된 국내환경에서 상속세 부담까지 안게 되면 경영자들이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는 ‘탈한국’ 현상이 가속화되고 중소기업들도 대거 해외이전을 추진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꼭 봐야할 주요뉴스
"엄마, 코코아 먹을래요" 아이 말 '철렁'할 수도…... 마스크영역<ⓒ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