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필수품에서 오염 주범, 재활용 붐까지
플라스틱의 역사와 '인생 유전'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플라스틱은 현대 산업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생활 필수품이자 첨단 소재다. 그러나 환경 오염의 주범으로 낙인찍혀 쓸 때마다 죄의식을 느끼게 만드는가 하면, 최근 들어선 ‘도시 유전’ 즉 재생유 생산의 원료 물질이 되는 등 ‘세 얼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너 없인 못살아" 꿈의 소재
당구가 최고의 인기 스포츠였던 19세기 후반. 지나친 당구 열풍으로 인해 상아로 만든 당구공의 수요도 폭발하면서 코끼리 밀렵꾼이 성행했다. 가격도 폭등하자 미국의 한 당구공 제조업체는 1만달러의 상금을 내고 코끼리의 상아를 대체할 당구공 소재를 공모했다. 플라스틱의 원조격인 천연 수지 합성 물질 셀룰로이드가 이렇게 탄생했다. 본격적인 인공 합성 플라스틱은 1907년 미국의 화학자 베이클랜드가 만들었다. 그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던 한 논문에 적힌 대로 페놀에 포름알데히드를 첨가한 후 알칼리성 촉매로 가열해 최초의 인공소재 플라스틱인 베이클라이트를 만들었다. 전기 절연성이 뛰어나며 가볍고 튼튼해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이후 독일의 화학자 슈타우딩거는 1926년 플라스틱은 고분자(Polymerㆍ폴리머)로 만들어진 물질이라는 개념을 학문적으로 정의했다.
이렇게 탄생한 플라스틱은 뛰어난 물성으로 인류 삶의 질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 뒤퐁사의 한 연구원이 발명한 나일론을 필두로 합성 섬유 제품이 대세를 이루면서 누에고치는 인류를 위한 방직공의 일자리를 잃었다. 오늘날 우리가 입는 옷감은 폴리에스테르 등 원유에서 뽑아낸 합성 물질로 대부분 제작된다. 가전제품, 가구, 음료수병, 주방기구 등 각종 용품과 온갖 포장지, 기계, 자동차, 우주선 등 안 쓰이는 곳이 없다. 플라스틱을 뻥 튀긴 것이 스티로폼이다. 가볍고 뛰어난 내구성과 가소성, 싼 가격, 대량 생산 등으로 인류는 플라스틱을 ‘꿈의 소재’라고 부른다. 최근에는 탄소섬유강화플라스틱처럼 자연 소재보다 훨씬 뛰어나고 전기가 통하거나 자석에 붙는 등 특이한 성질의 플라스틱이 개발되고 있다. 식물성 오일로 폴리우레탄을 만든다거나 전분ㆍ셀룰로오드 같은 고분자가 첨가돼 쉽게 썩는 생분해 플라스틱 연구도 활발하다.
◆"너 땜에 못 살아" 환경오염 주범
2008년 태국 파통의 한 해변에서 2m 크기의 쇠항고래 한 마리가 죽은 채 발견됐다. 뱃속이 비닐 봉지로 가득차 굶어 죽은 상태로 확인되면서 전세계에 플라스틱으로 인한 생태계 파괴에 경종을 울린 사건이다. 플라스틱은 나무ㆍ종이ㆍ쇠 등 기존 소재 자리를 꾀어차면서 급속도로 생산ㆍ소비량이 증가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플라스틱 생산량은 1950년 200만t에서 2000년 2억1000만t으로 50년새 100배 이상 급증했고 지난해에는 4억6000만t에 이른다. 지난 70여년간 무려 231배나 성장했다.
그러나 이 중 재활용된 비중은 10%도 채 되지 않는다. 1950년부터 2015년까지 생산된 플라스틱은 약 83억t으로 추산되는 데 이중 25억은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고 폐기된 나머지 58억t 중 약 79%(46억t)가 매립되거나 그대로 자연에 버려져 해양과 토양 내에서 미세플라스틱 문제를 심화시키고 있다. 또 약 12%(7억t)은 소각되면서 대기 오염의 원인이 됐다. 세계자연기금(WWF) 자료에 따르면 사람이 1주일간 섭취하는 플라스틱량은 일주일에 5g, 즉 신용카드 한 장이다. 1년에 약 250g으로 80세까지 살 경우 20kg을 섭취하게 된다. 인류는 뒤늦게 이 문제를 인식하고 재활용에 나서고 있지만 지난해 기준 약 23%의 폐기물만 재활용될 뿐 나머지 77%는 그냥 버려지거나 소각되고 있다. 태평양 한가운데 떠다니는 플라스틱 섬이 만들어지고 미세플라스틱으로 땅과 물, 생태계가 오염되면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돼 있기도 하다. 특히 코로나19 사태 이후 최근 1~2년새 지구 전체의 플라스틱 사용이 급증했다. 일회용 숫가락의 생산은 2019년에 비해 작년 25.2%나 늘었고, 일회용 포크도 같은 시기 64.1% 증가했다.
미세플라스틱은 자연 생태계와 인류의 안전에 시한 폭탄으로 여겨지고 있다. 생물체가 미세플라스틱을 섭취하면 소화관에 손상을 입거나 플라스틱의 화학물질이 체내에 흡수, 농축돼 다양한 내분비계 교란이 발생할 수 있다. 박준우 안전성평가연구소 환경위해성연구부장은 지난 6월 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주최 간담회에서 "먹이사슬의 고위층에 위치해 있는 생물일수록 누적 효과가 크다"면서 "태아나 시신에서도 다수 검출되기도 하는 등 갈수록 인체에 누적되는 양이 많아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플라스틱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원죄의식’에 시달린다. 지난해 녹색연합이 시민 75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 4명 중 3명은 배달 쓰레기를 버릴 때 죄책감을 느낀다고 응답했다.
◆"너 요즘 변했어" 도시 유전 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유엔 총회에 같이 참석한 아이돌 그룹 BTS와 함께 참석해 탈탄소 사회 건설을 역설했다. 특히 BTS 멤버들에게 탄소 배출을 감축하기 위해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한 섬유로 만든 넥타이를 설명해주는 모습이 관심을 모았다.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후 변화를 방지하기 위해 ‘2050 탄소 중립’을 목표로 각종 정책을 고민 중인 글로벌 사회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전해준 장면이었다.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해 ‘제2의 석유’로 활용하는 도시 유전 사업이 활발해지고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실제 정부는 2050 탄소중립 정책 차원에서 폐플라스틱 재활용을 통한 도시 유전 사업을 적극 장려하고 있다. 최근 강원 춘천시ㆍ삼척시, 인천 서구 등 일부 지자체에서 잇따라 도입돼 쓰레기의 효율적 처리 및 자원 재활용에 큰 활기를 불어 넣고 있다.
ESG(환경ㆍ사회ㆍ거버넌스) 경영이 중시되고 탄소중립 사회를 위한 투자가 필요해지면서 BASF 등 글로벌 화학업체들은 물론 SK이노베이션, 롯데케미칼, LG화학 등 국내 대기업들이 적극 뛰어들고 있다. 이에 따라 26일 한국자원순환단체총연맹,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등 관련단체들이 중소기업 적합 업종 지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여는 등 기업 간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노선아 한국기계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플라스틱은 원유에서 만들었기 때문에 유연탄과 비슷할 정도로 열량이 높은 원료로 열화학적 재활용을 통해 재생유로 만들거나 가스화해서 연료로 사용하고, 화학원료로 재생하는 하는 기술이 발달하고 있다"면서 "경제성보다는 환경성과 당위성 차원에서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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