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E&S, 美 KCE 인수 등에 6억달러 투자
'그리드솔루션' 신산업 진출 본격화
탄소중립 등 에너지산업 패러다임 변화
전기 공급·소비 효율화 필요성↑
[아시아경제 최대열 기자] SK E&S가 최근 인수한 미국 키캡처에너지(Key Capture Energy, KCE)는 그리드 솔루션 회사다. 그리드란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설치된 전선 혹은 관련 시스템 일체를 아우르는 말로, 이 회사는 그리드를 다루는 소프트웨어를 비롯한 일련의 서비스를 만들고 제공하는 일을 주력으로 한다.
그리드 솔루션은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선 각광받는 신산업으로 꼽히지만 그리드 자체는 오래 전부터 우리 곁에 있었다. 발전소에서 만든 전기를 일반 가정집이나 공장, 농장 등에서 쓰려면 그리드가 갖춰져 있어야 한다. 단순히 발전소나 송배전선, 변전소 혹은 전봇대 정도의 이미지를 떠올리기 쉽지만 그보다 훨씬 촘촘하고 눈에 띄지 않는 곳곳에 존재한다. 스마트폰도 그 안에 수많은 부품을 작동시킬 전력 인프라가 깔려있지 않으면 쓸 수 없다.
미국 국립공학아카데미가 20세기 공학적 성과 가운데 1위로 거대한 전력망(networks of the electric grid)을 꼽은 건 이 시스템으로 인해 인류의 삶이 과거와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리드는 자동차(2위)나 비행기(3위), 상수도(4위), TV(6위)·컴퓨터(8위)보다 더 큰 성과로 꼽히는 것도 괜한 일이 아니다.
인류학자로 최근 국내에도 출간된 ‘그리드’를 쓴 그레천 바크 독일 훔볼트대 초빙교수는 "그리드는 기계이자 인프라이고 문화적 성취이자 산업활동,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얽힌 하나의 생태계"라며 "우리의 모든 것과 맞닿아 있다"라고 표현했다.
전기 공급원, 화석연료→재생에너지 변화 불가피
美행정부, 2035년 태양광 비중 40% 이상 목표
그리드 솔루션이 새로운 분야로 꼽히는 건 과거와 달리 전기를 만들어 공급하고 이를 소비하는 과정이 과거와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KCE가 하는 일을 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전기를 값싼 시간에 사서 에너지저장장치(ESS)에 저장해 둔다. 송배전망에 연계된 ESS를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일정하게 전기 공급이 일정하게 유지되도록 한다. KCE는 저장해둔 전기를 팔아 이윤을 남기기도 하고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제어하는 서비스도 판다.
전기를 얻는 에너지원이 바뀌면서 그리드도 그에 맞춰 바꿔야 한다. 지난 100여년간 석유와 석탄, 원자력 같은 연료로 전기를 만들었다면 앞으로는 태양광이나 풍력, 수력, 지열 같은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려나갈 텐데 전기를 다루는 방식이나 체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늘 일정한 전기 생산을 담보하지 않는 재생에너지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ESS를 가져다 쓰는 게 대표적이다.
재생에너지 확대는 자연스레 탈(脫)중앙화로 이어지고 있다. 과거처럼 국영기업이나 소수 독과점 민간회사가 만들고 배분하던 방식이 아니라 이미 개인 차원에서 전기를 만들고 있다. 바크 교수는 "20세기 그리드는 석유·석탄, 천연가스, 플로토늄을 태워 만들어낸 꺼지지 않는 불꽃에 맞춰 건설됐다"며 "이 시기 전기를 만들고 전송하는 사업은 명령과 통제에 의한 하향식 체계에 따라 만들어진 자연스러운 독점기업이 운영하는 강력한 중앙 집권식 구조를 통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2035년까지 태양광 비중을 전체 전력에서 40%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치를 최근 제시했다.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것은 물론 에너지산업을 둘러싼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점을 받아들였다. 기존 오래된 그리드로 인한 비효율, 부쩍 잦아진 이상기후와 그로 인한 블랙아웃 등을 감안하면 자연스러운 행보로 풀이된다.
그리드 솔루션 시장은 향후 성장가능성이 높다. 컨설팅업체 우드맥킨지에 따르면 미국 내 ESS 기반 그리드 솔루션 산업은 올해 6GW 규모에서 2030년 76GW 규모로 연 평균 60%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SK E&S는 이번에 인수한 KCE에 앞으로 2, 3년간 6억달러(한화 약 7000억원, 지분 95% 인수금 포함)를 투자키로 했다.
유정준 SK E&S 부회장은 "KCE의 에너지 솔루션 서비스를 통해 잉여 전기를 활용하는 등 전기 공급의 효율성을 높이고 소비자의 효율적 전기 사용을 극대화한다면 온실가스 감축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대열 기자 d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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