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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다. 따뜻하게 입어라”…성매매 그만두게 한 아빠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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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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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영남취재본부 주철인 기자] “춥다. 감기 걸린다. 따뜻하게 입어라.”


조건만남을 하려고 나온 A씨는 “추운 새벽 한강에 있다”는 글을 SNS에 올렸는데 생각지 못한 아빠의 댓글을 보고 마음이 흔들렸다. “내가 이 시간까지 깨어있는 이유를 알게 된다면 아빠는 무슨 생각을 할까…. 이게 좀 컸어요”

A양은 초등학생 시절 홀로 아이들을 키우는 아버지가 야간작업 때문에 집에 잘 들어오지 못해 동생과 둘이서 무서운 밤을 견뎌야 했다.


아버지 지인에게 성폭행당하는 아픔도 겪었다. 학교에서는 엄마도 없고 잘 씻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왕따를 당했고 남들의 관심을 끌려고 물건을 훔치기도 했다.


A양이 성매매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친구다. 어렵사리 사귄 친구가 어느 날 “남자랑 성관계하면 돈을 주는데 한번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A양은 “이 친구와 같이 있으려면 이거를 해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에 제안을 받아들였다.

10대 청소년기부터 20대까지 조건만남을 지속한 A씨가 결정적으로 성매매를 그만두게 된 계기도 친구였다. A씨는 “제가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걸 엄청 신경 쓰고 있었는데 어느 날 친구가 저에 대해 ‘걔 좀만 둥개둥개 해주면 지가 돈 다 쓰는 호구야’라고 뒷얘기를 하는 걸 듣게 됐다”며 “내가 하던 행동이 전부 다 부질없던 거였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런 내용은 제주여성가족연구원(이하 여가원)이 최근 발간한 ‘제주지역 성매매 피해 청소년 실태와 지원방안(연구책임자 이화진 연구위원)’에 실려있다. 여가원은 성매매 피해 청소년 및 관련기관 종사자 각각 10명을 대상으로 심층 면접을 통해 성매매 진입 배경 및 피해 실태, 피해 대응 및 영향, 피해자 지원 및 인식개선을 위한 정책 수요 등을 수록했다.


11일 여가원에 따르면 청소년들이 성매매하게 되는 계기는 아동학대와 성적학대, 또래 관계 유지, 경제적 궁핍 등 다양한 것으로 조사됐다. 어린 시절부터 타인과 관계나 애정에 목말라 있던 A양의 경우 친구 사이를 유지하려고 성매매를 택하게 됐다고 한다.


성매매 피해 청소년 중에는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환자를 보고 부럽다는 생각이 들 만큼 극단적 선택과 자해를 시도하는 경우도 있었다.


B양은 “허벅지에 자해하고 벽에 머리를 박기도 했다”며 “딱 그때 뿐이기는 하지만 내가 힘든 걸(주변에서) 알아주는 느낌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C양은 자신이 죽는 것보다 죽은 후 아무도 와줄 사람이 없을 수 있다는 공포감이 더 크다고 한다. C양은 “베란다에 올라가서 내가 죽어도 누가 나한테 뭐라 할까? 사람이 죽으면 다 슬퍼하잖아요. 그런데 내가 죽으면 누가 와 줄까? 죽고 나서 아무도 안 올까 봐 그게 너무 무섭고 비참한 거예요. 내 얘기 들어주는 엄마, 아빠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토로했다.


경제적 문제는 청소년들이 성매매하게 되는 이유 중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나 현재 공공기관의 경제적 지원에는 한계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성매매 경험이 있는 한 청소년은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어 동사무소를 찾아 도움을 요청했는데 50만원을 지원해줄 수 있지만 80만원 이상을 받는 일을 하면 중단된다는 얘기를 듣고 포기했다.


이 청소년은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어서 학점은행제를 신청하려는데 ID 발급에 4000원이 필요했어요. 그런데 그 돈조차 없었거든요. 복지시설 직원에게 ‘저 어떡해요’ 물으니 ‘저한테 그걸 왜 물어요?’ 그러는 거예요. 엄청 울었어요. 너무 서러워서. 그 적은 돈이, 이렇게 크게 영향을 미칠 줄 몰랐어요”라고 했다.


여가원은 “경제적인 부분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성매매 초기 진입의 이유는 또래 관계 유지를 위한 부분이 상당하게 존재한다”며 “재진입을 막고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게 부모와 친구 등 대인관계 개선에 초점을 맞춘 제도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A양은 “저 같은 경우는 돈이 아니라 친구와의 관계로 성매매를 하게 됐어요”라며 “지금 성매매를 하려는 친구들이 있다면 사람과의 관계와 관계를 쌓는 방법 같은 걸 가르쳐주는 게 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건 제 생각이지만 다 외로워서 오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라고 했다.


여가원은 “청소년 성매매 피해자를 발견하고 지원하기 위해서는 성인과 다른 청소년 문화와 소통방식을 이해할 수 있는 기관이 필요하다”며 “피해 청소년 대부분이 생활비 문제로 성매매를 하는 만큼 다양한 방식의 자립지원과 관련 기관들의 협력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영남취재본부 주철인 기자 lx9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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