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말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글로벌 클라우드 기술 콘퍼런스인 AWS 리인벤트(re:Invent)에서 당시엔 생소했던 ‘모더나’라는 바이오 스타트업의 발표를 듣게 됐다. 모더나는 클라우드를 활용해 메신저 리보핵산(mRNA)을 타깃 세포에 전달해 원하는 단백질을 인위적으로 발현하는 방식의 맞춤형 지카 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하고 있었다. 기존 신약 개발 방식과 달리 클라우드의 인공지능(AI) 및 데이터 분석 서비스를 활용한 디지털 프로세스를 통해 수년이 걸리던 일을 1년 안에 완료할 수 있다는 점은 매우 놀라웠다.
몇 달 후 세계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통한 팬데믹을 경험하게 됐다. 근소한 차이지만 모더나는 역사상 최단기 백신 개발의 주역이란 타이틀을 얻었다. 사실 10여년 가까이 걸리던 백신 개발을 1년 내 완료한 것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의아심을 가졌다. 하지만 코로나19 이전에 제약·바이오 업계는 클라우드와 AI가 백신과 신약 개발에 새로운 방식을 제시할 거라 예상한 바 있다. 앤디 재시 현 아마존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세라위크(CERAWeeK) 콘퍼런스에서 "모더나가 머신러닝을 활용해 백신의 구조를 예측하고 다양한 시뮬레이션을 할 수 있었다"면서 "클라우드 덕분에 하드웨어·데이터센터가 필요하지 않았다. 아마존의 컴퓨팅·스토리지·데이터 창고로 머신러닝 능력을 매우 빠르게 확대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방식의 코로나19 백신을 만든 아스트라제네카 역시 클라우드 기반의 페타바이트의 게놈 시퀀싱 데이터를 사용해 약물 연구 및 개발 정보를 활용한다. 아스트라제네카 게놈 연구 센터 부사장인 노예 페트로프스키는 "24시간 내에 510억개 이상의 통계 테스트를 실행할 수 있고, 각 돌연변이 또는 개별 유전자가 다양한 표현형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할 수 있다"며 "이를 통해 작년에 40개 이상의 약물 발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모더나의 최고 디지털 책임자인 마르첼로 다미아니는 "기존 제약 회사에는 물리적인 컴퓨팅 용량과 백업 및 재해 복구 솔루션을 유지하기 위한 거대한 IT 조직이 있다. 하지만 클라우드를 활용하면 컴퓨팅 용량을 걱정할 필요가 없으며 백업 및 복구도 간단해 수백만 달러의 데이터센터 비용 절감과 빠른 신약 개발 속도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들 사례는 클라우드를 통해 팬데믹 상황에서 의료 및 생명과학 분야의 협업 방식을 재창조하고, 데이터 기반으로 임상 및 운영 결정을 빠르고 정확하게 수행하고 치료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토대 위에 맞춤형 의료 클라우드 솔루션을 선보이고 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아마존 헬스레이크는 몇 분 안에 의료 데이터를 안전하게 저장하고 변환 및 분석할 수 있는 서비스다.
의료 및 생명과학 분야는 보수적이고 혁신이 쉽지 않은 분야였다. 팬데믹은 디지털 기술로 무장된 새로운 경쟁자를 시장에 출현시켰다. 지금까지 신약을 개발하고 제조해 판매하는 일은 소수 대기업만 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클라우드와 AI로 무장된 의료 스타트업이 지속적으로 출현할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에도 큰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제 거인의 어깨에 올라탈 때다.
윤석찬 AWS 수석 테크 에반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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