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명진규 기자] 우유값 인상을 놓고 관련 업계가 시끌벅적하다. 논란의 핵심은 ‘수요가 줄었는데 가격은 오히려 오르는 구조’라는 점이다. 수요 공급의 시장논리를 벗어난 가격 결정 구조를 손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몇 년 전 스페인에 들렀을 때다. 지인들 선물로 스페인식 생햄 하몽을 사려고 마트에 들렀다. 생각보다 종류도 많고 가격도 비싸 선뜻 손이 가지 않는데 주변에 잘 쌓아놓은 치즈더미를 발견했다. 동그란 종이 박스에 들어있는 카망베르, 브리 치즈의 가격이 놀라웠다. 백화점에서는 1만원대 후반, 대형마트서도 1만원대 중반에 판매되는 제품이 2~3유로에 불과했다. 절반도 안 되는 가격에 하몽 대신 치즈를 잔뜩 사서 여행가방에 챙겨 넣었다.
출국심사장에서 일이 생겼다. 짐 검사 도중 공항 직원이 잠깐 와보라며 나를 붙잡고 가방에 든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표정이 심각했다.
엑스레이 화면을 보니 옷과 구두 사이에 검고 동그란 물체들이 가득했다. 치즈라는 설명도 통하지 않아 결국 가방을 열었다. 치즈를 확인한 뒤 직원이 ‘왜 치즈를 이렇게 많이…’라고 묻는다. 한국서 가격이 3배 정도 된다고 설명한 뒤에야 심사대를 떠날 수 있었다.
코로나19 이후 유업계 관계자들을 만나면 가장 많이 듣는 얘기가 ‘우유가 남아돈다’는 얘기다. 출산율도 낮아졌고 예전만큼 우유를 많이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유 소비는 줄었다지만 수입 현황을 살펴보면 조금 이상하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흰우유 수입량은 2018년 4082톤에서 2019년 1만1512톤으로 182% 늘었다. 우유가 남아도는데 수입은 급등했다.
치즈시장도 비슷하다. 낙농진흥회에 따르면 지난해 연간 1인당 흰우유 소비량은 29kg으로 2019년 32.5kg 대비 11% 줄었다. 아이는 물론 어른들도 우유를 마시지 않는다. 반면 1인당 연간 치즈 소비량은 3.34kg으로 전년 대비 4% 늘었다. 연간 성장률은 8%에 달한다.
고급 치즈로 분류되는 천연 치즈시장은 지난해 1188억원을 기록해 연간 10%씩 성장하고 있다. 식약처에 따르면 가공치즈 수입량은 2018년 9548톤에서 2019년 2만1916톤으로 129.5% 증가했다. 시장 성장이라는 과실을 외산이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국내에서 생산되는 가공치즈 대다수도 원재료는 수입산을 사용한다. 업계에 따르면 국산 천연 치즈 자급률은 3%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된다.
남는 우유를 수입하고 버려지는 국산 우유로 치즈를 만들지 않는 배경은 가격 때문이다. 글로벌 물가 집계 업체 넘베오(NUMBEO)의 통계에 따르면 국내 우유 1ℓ당 가격은 2473원으로 전 세계 7위에 해당한다. 1위 대만의 3658원과 비교하면 저렴해 보이지만 유럽 대부분의 국가가 1000원대 초반, 미국 942원과 비교하면 적게는 2배 많게는 3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이렇다 보니 국산 우유, 유제품들은 점점 경쟁력을 잃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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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원유 가격 결정 구조를 바꾸자는 목소리가 높다. 우리 산업을 보호하자는 의도는 좋지만 시대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해야 한다. 시장 경제를 무시하고 과거와 다른 수요·공급 관계를 정책에 대입하지 않을 경우 외산에 시장을 내어주고 우리 산업은 고사시키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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