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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무연고사 리포트]'가족에게 연락은 하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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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우리 곁의 무연고자들

잠재적 무연고자가 남긴 메모
누군가에게 쓴 간절한 부탁
"고생 덜어주고 싶다"

[2021 무연고사 리포트]'가족에게 연락은 하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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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특별취재팀=고형광 팀장, 유병돈 기자, 정동훈 기자, 이정윤 기자] ‘가족에게 연락은 하지 말아 주세요.’


서울에 거주하는 이숙자(74·여·가명)씨는 스스로를 잠재적 무연고자라고 했다. 이씨는 자신의 방 한 켠에 있는 서랍에서 곱게 접은 메모지 하나를 꺼냈다. 메모지에는 정갈한 글씨로 쓰여진 이씨의 신상과 자신의 집을 정리하게 될 누군가를 향한 부탁이 담겨 있었다. 메모 중에 ‘가족에게 연락을 하지 말아 달라’는 부분이 눈에 밟혔다. 이씨는 "내가 나은 자식들이지만, 내 초상을 치러줄 리가 없다"면서 "202호 사람(무연고 사망자)처럼 가족에게 버림받는 것이 싫다"고 설명했다. 스스로가 무연고자가 되길 선택한 셈이다.

지난 겨울 사망한 한 무연고자의 유품정리현장 건물에서 만났던 이씨는 망자의 마지막 길을 멍하니 바라보다 취재진에게 말을 걸어왔다. 당시 망자와 동년배라 친분이 있었던 이씨는 유품정리를 진행하던 특수청소업체 직원들을 가리키고는 "저 분들은 나라에서 나오신 분들이냐"고 물었다.


시신을 인수할 가족이 없는 이들의 집을 정리해주는 사설업체라는 설명을 들은 이씨는 "좋은 일들을 하시는 분"이라며 "나중에 내가 죽으면 우리 집도 저 분들에게 부탁해야겠다"고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이내 이씨는 청소업체 직원에게 다가가 명함 한 장을 받아들고 돌아왔다.


사실 이씨에게는 가족이 있다. 20대 초반에 결혼을 해 슬하에 3명의 아들을 뒀다. 그러나 30대 중반에 이혼을 하면서 혼자 살게 됐고, 아들들과는 간헐적인 만남을 이어오다 20여년 전부터는 완전히 왕래가 끊겼다. 아들들의 노골적인 금전 요구가 이유였다.

친구들과의 여행 등을 명목으로 용돈 수준의 금액을 요구하던 아들들은 얼마 가지 않아 연대 보증 등 무리한 부탁을 해오기 시작했다. 이씨는 "처음에는 그동안 못했던 엄마 역할을 하려 돈을 줬지만, 내 능력 이상의 것을 요구해 연락을 끊었다"면서 "20년 넘도록 가족이 없는 셈 치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메모는 매달 새로 쓰여진다. 내용은 항상 같다. 그럼에도 새로 쓰는 이유는 하나다. 시간이 지나 메모지가 변색되고 글씨가 번져 내용을 알아보지 못할까봐서다. 그만큼 이씨의 의지는 확고하다. 혼자서 잘 살아온 만큼 마지막 순간까지도 가족으로 불릴 이들에게 일말의 피해도 주고 싶지 않은 심정이다.


이씨가 메모를 통해 말했듯이 평소 얼마나 깨끗하게 지냈는지 반지하임에도 불구하고 곰팡이 자국 하나 찾을 수 없었다. 인터뷰 내내 이씨는 바닥에 떨어진 먼지가 보이면 곧장 치웠다. 이씨는 "내 마지막 모습을 보게 될 사람들 고생을 덜 시키고 싶다"면서 "못해도 이틀에 한 번은 집안을 쓸고 닦고 있다"고 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고형광 기자 kohk0101@asiae.co.kr
유병돈 기자 tamond@asiae.co.kr
정동훈 기자 hoon2@asiae.co.kr
이정윤 기자 leejuyo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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