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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톺아보기]공익변호사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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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톺아보기]공익변호사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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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와 인권을 연구하면서 집배원분들과 심층 인터뷰를 했다. 오토바이로 배달을 하는데 갑자기 폭우가 내리는 일이 잦아져 잠깐 배달 다녀오는 사이에 우편물이 젖어 난감해진다는 이야기, 마스크를 끼고 일을 하다 잠깐 밥을 먹기 위해 마스크를 벗는 순간 땀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는 이야기, 폭염에 땡볕이 아닌 계단에서 택배노동자들이 쓰러지는 이유를 아느냐는 물음에 고개를 갸웃거리자, 하루에 할당된 택배와 우편물을 모두 끝내기 위해서 폭염 속에서 정신없이 오토바이를 타고 일하다가 문 앞에 잠깐 멈추는 순간 어지럼증을 겪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시기도 했다.


더위로 목마를 때 시원한 얼음물을 가져다주는 사람들도 소중하지만, 기후변화를 연구하는 기상전문가나 그에 맞는 기술을 개발하는 전문가도 있어야 하고, 취약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삶을 분석하고 제도 개선을 고민하는 사람들도 필요하다.

집배원들의 인터뷰는 피해 상황을 듣고 공감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폭염에 작업을 중단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됐지만, 정작 창구에서 접수를 중단하지는 않기 때문에, 오늘 중단하면 내일 배달을 두 배로 해야 하는 상황에서 중단권을 행사하는 집배원은 거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는 업무중단권을 실제로 사용할 수 있도록 현실적인 접수 중단 기준과 조치도 필요하고, 지침이나 매뉴얼도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집배원이나 택배노동자들처럼 기후변화에 특히 어려움을 겪는 분들의 신체적 변화를 조사하는 일도 해보자는 이야기도 나눴다. 지금 연구도 어렵지만, 새로운 일을 벌이려는 목소리에는 또 생기가 돈다.


기후변화에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다. 다음 달에는 5년 넘게 극장을 상대로 시각·청각장애인이 영화를 볼 수 있게 시스템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소송의 마지막 재판을 앞두고 있다. 발달장애인도 선거에 참여할 수 있도록 공직선거법을 바꾸려는 새로운 소송도 준비하고 있다. 나의 동료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군을 위해 일한 현지인들을 외면하면 안 된다는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또 다른 동료는 매주 금요일마다 밤새 거리에서 청소년들을 만나 상담을 하고, 갈 곳 없는 청소년들의 주거권을 어떻게 보장할지 연구한다. 요즘 우리는 기업의 인권경영에 대한 관심도 많다. 마침 ESG 열풍도 불었지만, 기업을 인권적 관점에서 모니터링하고 적절한 의견을 제공하는 일도 누군가는 해야 할 의미있는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공익변호사다. 공익변호사로 활동하면서 한 번씩은 질문을 받았을 것이다. "공익변호사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일을 하는가"

공식적인 통계는 없지만, 공익변호사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연대하고 있는 동료들이 주변에 120명 정도 있다. 우리는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나름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여전히 공익변호사는 이름조차 낯설다. 공익변호사들 사이에서도 ‘공익’의 의미와 범위에 대한 생각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각자의 활동 영역도 다르고 강점과 특색도 다르다. 하지만 최소한 내가 생각하는 공익변호사의 공통점은 사회적 소수자의 삶에 관심이 많고, 그들의 인권을 보장하는 일이 공익에 부합한다고 생각하며, 일회적인 지원에 그치지 않고 제도를 바꾸고 사회를 변화시키려고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동료들과 함께 이 지면을 통해 공익변호사들의 역할과 고민을 나누고 소개하려고 한다. 공익변호사들이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응원과 조언 부탁드린다.


이주언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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