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아파트서 극단 선택한 여중생…학폭 피해 정황
'기절놀이' 괴롭힘 영상 논란…가해자 "장난친 것"
전문가 "학교에서도 학폭 방지 시스템 마련해야"
[아시아경제 허미담 기자] # 지난 6월 강원도 양구의 한 고등학교 1학년생 이모(17)군은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그는 집단 따돌림 등 학교폭력을 당해 힘들다는 내용의 쪽지만을 남긴 채 학교 옥상에서 투신해 숨졌다. 쪽지에서 이 군은 "하늘만 보면 눈물이 나서 올려다보지도 못하겠다", "내가 괜찮은 척하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나", "나 안 괜찮다.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유족 측은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가해 학생의 집단 따돌림과 교사의 무관심이 문제였다"며 울분을 토했다.
최근 학교폭력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하는 청소년이 늘고 있다. 몇몇 가해 학생들은 피해 학생의 목을 조르거나 가슴을 세게 눌러 일시적으로 기절시키는 이른바 '기절놀이'를 하는 걸로도 모자라 이를 촬영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유포하는 등의 잔혹함을 보이고 있다.
또래 학생에게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촉법소년(형사 미성년자)이라는 이유로 처벌을 받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자, 이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는 학교 자체적으로도 시스템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2일 전남 진도의 한 아파트에서 동반 추락사한 중학생 중 한 명이 동급생들에게 따돌림과 언어폭력에 시달린 것으로 조사됐다.
전남교육청과 진도경찰서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진도군 한 아파트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남녀 중학생 중 A양이 동급생들에게 학교폭력 피해를 입었다.
A양은 생전 동급생 6명에게 욕설을 들으며 따돌림을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진도교육지원청은 지난 5월24일 이들 6명에게 각각 교내봉사 10시간과 특별교육이수 2시간 등을 명령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유족 측은 A양과 가해 학생들이 제대로 분리되지 않았고, 이로 인해 보복성 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유족 측은 "유서에 쓰여 있는 학교폭력에 관한 자세한 정황을 증거로 장례 절차가 마무리되면 가해 학생들을 고소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학교폭력으로 인한 피해는 끊이지 않고 있다. 올 1월 교육부가 발표한 '2020년 학교폭력 실태 전수조사' 결과에 따르면 초·중·고교생 응답자 295만 명 중 9300명은 가해 경험이 있고, 2만6900명은 피해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보복이 두려워 조사에 응하지 않은 숨은 피해 학생도 적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일부 청소년의 경우, 범행 수법이 성인 범죄 못지않을 만큼 잔혹하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기절놀이'가 다시 온라인상에 퍼지면서 문제가 됐다. 기절 놀이는 목을 조르거나 가슴을 세게 눌러 일시적으로 사람을 기절시키는 행위를 뜻한다. 뇌에 산소 공급을 차단해 저산소증을 만드는 것으로, 주로 학교 폭력을 당하는 학생들이 기절 놀이의 대상이 됐다.
기절놀이 등을 비롯한 집단 괴롭힘에 견디다 못한 피해 학생이 극단적 선택을 한 경우도 있었다. 지난 6월29일 광주 광산구 어등산에서 숨진 채 발견된 B군은 유서를 통해 친구들 이름을 일일이 열거하며 "나 학교에서 맞고 다니던 거 X팔리고 서러웠는데 너희 덕분에 웃으면서 다닐 수 있었어. 너무너무 고마워"라고 했다. B군은 생전 교실에서 정신을 잃을 때까지 다른 학생에게 목이 졸리는 등 괴롭힘을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13일에도 한 남학생이 또래로 보이는 학생들에게 집단 괴롭힘을 당하는 것으로 보이는 영상이 유포돼 파문이 일었다. 영상에서 남학생 1명은 피해 학생의 목을 뒤에서 졸랐고, 옆에 있던 여학생 1명은 담배를 피우며 피해 학생의 주요 부위를 만지는 듯한 행동을 했다. 다만 가해 학생들은 경찰에 "기절놀이 장난을 친 것"이라고 진술해 비판 여론이 일기도 했다.
이외에도 칼 등으로 배·팔·다리 등을 그어 공포심을 조성하는 '수술 놀이',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터무니없이 요구하며 갚지 않는다고 폭행, 협박하는 '사채놀이' 등 다양한 유형의 학교폭력 피해 사례가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다 보니 시민들은 계속되는 학교 폭력 범죄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직장인 오모(28)씨는 "가해자는 한순간의 장난으로 피해자를 괴롭힐지 몰라도 피해자에게 그 기억은 평생 트라우마로 남는다. 특히 촉법소년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조사하지도 않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학교폭력은 한 공간 안에서 지속해서 일어나는 폭행이다. 반드시 엄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학생 김모(24)씨는 "기절 놀이라는 것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다. 그게 어떻게 '놀이'일 수 있나"라며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그저 어리다는 이유로 면죄부를 주나. 소년법 개정하자고 몇 년 전부터 말이 나오는데, 아직 아무런 움직임도 없으니 답답할 따름이다. 처벌이 약하니 보복이 생기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문가는 학교 자체적으로 학교폭력을 막기 위한 시스템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우선 학교 시스템부터 바뀌어야 한다. 학교 측이 학교폭력을 쉬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보복 등이 이어지는 것"이라며 "피해자가 폭력 등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학교에서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 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 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허미담 기자 damd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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