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의회가 2019년 펴낸 ‘글로벌 트렌드 2030’ 보고서에는 2030년까지 지구촌의 미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7개 메가 트렌드가 담겼다. 기후변화 등 익숙한 내용도 있지만 생소한 개념도 소개됐다. 세계 질서가 ‘다극(multipolarity)’이 아닌 ‘다결절(poly-nodality)’로 변화할 것이란 전망이다. 다결절 시대에서는 지금처럼 군사력이나 경제력에 기반한 헤게모니 경쟁이 중요하지 않다. 다결절 시대에는 소수의 강대국을 중심으로 한 집단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네트워크의 노드, 즉 사회경제 생태계에서 참여자들이 얼마나 많이 연결되느냐가 경쟁력을 좌우한다. 이는 미래 경쟁력을 결정하는 주체가 국가에 국한되지 않고 기업, 시민단체, 개인 등으로 확대될 것임을 의미한다.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가 처음 우리나라 뉴스에 등장한 지 몇 해가 지난 지금 이 용어는 예전만큼 주변에서 자주 회자되지 않는다. 그러나 국내 정치권에서 4차 산업혁명을 언급했던 상황과 목적이 무엇이었든 간에 이 용어를 단순한 구호로 치부하기에는 우리나라의 사회경제 시스템 변화에 미치는 영향이 작지 않다.
일명 ‘지능화 혁명’으로 불리는 4차 산업혁명은 새로운 사회 패러다임, 소위 지능정보사회로의 전환을 가져왔다. 작년 말 시행된 ‘지능정보화기본법’ 12조 6호에 따르면 지능정보사회는 지능정보화를 통해 산업·경제, 사회·문화, 행정 등 모든 분야에서 가치를 창출하고 발전을 이끌어가는 사회를 일컫는다. 해당 법 2조 5호에는 지능정보화를 정보의 생산·유통 또는 활용을 기반으로 지능정보기술이나 그 외 다른 기술을 적용·융합해 사회 각 분야의 활동을 가능하게 하거나 그러한 활동을 효율화·고도화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같은 정의에 따르면 지능정보사회란 고도로 발전한 지능정보기술이 단순히 객체로서의 역할을 하며 인간이 모든 지적 활동과 상호작용을 하는 사회다. 지능정보기술을 통해 사회 생태계의 모든 참여자들은 긴밀하게 연결되고 이에 기반해 의사결정을 한다. 주목할 점은 연결의 범위가 물리적·지리적 한계를 갖지 않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지능정보사회는 유럽 의회에서 전망한 다결절 구조의 경쟁력 체계와 매우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다결절 구조의 구축을 어떻게 촉진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남는다. 유럽 의회에 따르면 이 질문의 답이 국가 미래 경쟁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다양한 답이 제시될 수 있으나 가장 중요한 항목 중 하나는 지능정보기술의 사회적 수용성을 높이는 방법과 역기능을 통제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다. 지능정보기술을 도입·확산하는 과정에는 의사결정의 편향성과 자유의 침해 등 개인에 대한 위험성은 물론 시장과 정치적 안정성 등 사회공동체 차원의 위험성도 있다. 이를 명확하게 파악하고 위험을 통제할 수 있는 사회 역량과 법·제도 체계를 모색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가 1960년대 이후 압축 성장을 통해 효과를 확인한 하향식 산업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가 지능정보기술을 기반으로 다결절 사회경제 체계로의 전환에 성공해 국가 경쟁력을 다시 제고할 수 있길 기대한다.
신민수 한양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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