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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사람 구경이나 하는 거지" 1년 넘게 문 닫힌 탑골공원, 여전히 못 떠나는 노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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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월 이후 1년4개월 넘게 폐쇄
문 닫힌 공원 외곽에는 여전히 노인들 방문
코로나19 확산 이후 노인 복지시설 축소 운영
음식값 저렴하고 사람 많은 탑골공원에 몰려

29일 굳게 닫힌 서울시 종로구 탑골공원. / 사진=사진=임주형 기자 skepped@

29일 굳게 닫힌 서울시 종로구 탑골공원. / 사진=사진=임주형 기자 skepp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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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어이구, 오랜만에 뵙네요.", "커피 한 잔 하셔야죠."


최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외곽에서 만난 두 노인은 서로 반갑게 인사를 주고 받았다. 두 사람은 공원 인근에 설치된 커피 자판기에서 100원어치 믹스 커피 두 잔을 뽑아 마신 뒤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탑골공원이 폐쇄된 지 1년이 훨씬 지났지만, 공원 인근은 여전히 노인들로 북적이고 있다. 탑골공원을 찾는 노인들은 허기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이 장소를 방문한다고 말한다. 서울 시내 유명 식당 음식 가격은 고령층 소득으로는 큰 부담이지만, 탑골공원은 무료 급식 등을 통해 끼니를 해결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탑골공원 정문과 후문은 굳게 닫힌 채 "코로나19 감염증 예방을 위해 탑골공원 이용을 중단하오니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문만 붙어 있었다. 앞서 지난해 2월20일 코로나19 감염 위험으로 인해 폐쇄된 탑골공원은 1년 4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열리지 않고 있다.


이른 아침부터 탑골공원 인근에 노인들이 모여 있다. / 사진=임주형 기자 skepped@

이른 아침부터 탑골공원 인근에 노인들이 모여 있다. / 사진=임주형 기자 skepp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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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노인들은 여전히 탑골공원을 찾는다. 공원을 둘러싼 벽 바깥에 4~5명씩 모인 노인들은 함께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가 하면, 근처 국밥집에서 늦은 아침을 해결하기도 했다.

벌써 수년째 탑골공원을 찾고 있다는 70대 A 씨는 "아침이라서 늙은이들이 안 기어 나오는 거지, 점심만 되면 이 근처가 모두 노인네들로 북적북적 하다"라며 "여기는 우리 같은 사람들 모이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노인들이 탑골공원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외로움 때문이다. A 씨는 "여기 모이는 사람들은 모두 이미 옛날에 영향력을 잃은 사람들, 잊혀진 사람들"이라며 "가끔 이런 식으로 만나서 이야기라도 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 그마저도 친구가 있는 이들은 거의 없고, 대부분은 그냥 앉아서 사람 구경이나 하다가 가는 거지"라고 말했다.


'주머니 사정'도 노인들이 탑골공원을 벗어나기 힘든 이유다. 또 다른 70대 노인 B 씨는 "이곳에서는 이발도 시내의 반값이고, 점심도 3000원이면 해결할 수 있다"며 "변변찮은 직업 하나 없는 사람들에게는 이만한 곳이 없다"고 설명했다.


그늘에서 쉬고 있는 노인들의 모습 / 사진=임주형 기자 skepped@

그늘에서 쉬고 있는 노인들의 모습 / 사진=임주형 기자 skepp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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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떨어져 혼자 살고 있다는 60대 C 씨는 "갈 곳 없는 노인들에게 돈이 얼마나 있겠나. 커피 한 컵 뽑아 마시고, 해장국 한 그릇 하면 아침 점심 정도는 떼울 수 있다"며 "가끔 열리는 무료 급식 때는 그거 타 먹겠다고 사람들이 바글바글 몰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탑골공원을 찾는 노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고령층 복지시설 운영이 축소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경로당은 각종 노인 여가 프로그램을 운영하거나 무료 급식을 지원하는 등, 고령층의 사회적·정서적 교류의 장으로 이용돼 왔다. 그러나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해 지난해부터 운영 중단 기간이 길어진 상황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이달 초 기준 서울 시내 경로당 전체 3468곳 가운데 문을 연 곳은 1418곳(40.9%)에 불과했다.


최근 고령층을 중심으로 백신 예방접종이 시작되고 서울시 사회적 거리두기가 2단계로 하향하면서 복지시설도 점진적으로 재개방하고 있지만, 자치구별로 백신 접종률에 차이가 있다 보니 개방 수준도 각기 다르다.


탑골공원 폐쇄 안내문 아래에 "참자 인내는 쓰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 사진=임주형 기자 skepped@

탑골공원 폐쇄 안내문 아래에 "참자 인내는 쓰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 사진=임주형 기자 skepp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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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서울시는 노인 복지시설 이용 확대에 박차를 가할 방침이다.


서울시는 지난 4일 코로나19 백신 예방접종을 1회 이상 받은 노인들에 대해 복지관 경로당 등 복지시설 이용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서울시 노인복지관 79곳은 오는 7월부터 모두 전면 개방되며, 경로당은 자치구별 상황을 고려해 순차적으로 재개관한다.


김선순 서울시 복지정책실장은 "코로나19 장기화로 노인복지시설을 이용하지 못하는 어르신들의 고립감 및 우울감이 컸다. 서울시는 백신 접종 어르신들이 다시 시설을 찾아 건강한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며 "사회복지 현장에서 불필요한 불안감으로 복지서비스가 중단되지 않도록 휴관 중인 시설에 적극 운영 재개를 독려하고, 어르신들의 일상회복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확대 운영하겠다"고 설명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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