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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법까지 번진 '공정성 담론'…교육부, 금지 항목서 '학력 빼자' 제안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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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은 '합리적 차별 요소'" 주장한 교육부, 비판 일자 "재검토"
전문가 "'수저 계급론' 왜 나왔나…정부가 사회 구조 간과"

교육부가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차별금지법안' 차별금지 항목 중 '학력'을 빼자고 제안하며 국회에 제출한 의견. /사진=장혜영 의원실

교육부가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차별금지법안' 차별금지 항목 중 '학력'을 빼자고 제안하며 국회에 제출한 의견. /사진=장혜영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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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강주희 기자] 교육부가 '차별금지법'에서 명시한 차별금지 항목 중 '학력'을 빼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져 파장이 일고 있다. 학력은 선천적으로 결정되는 부분이 아니라, 개인의 노력에 따라 성취 정도가 달라져 '합리적 차별 요소'로 볼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학력으로 인한 차별과 구분 짓기가 심각한 한국 사회에서 이 같은 관행을 없애는 데 노력해야 할 교육부가 오히려 학벌·학벌주의를 더 공고히 하는 데 힘을 보태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학력·학벌에 따른 차별 행위를 정당화하려 한다는 비판도 있다.

전문가는 이번 교육부의 제안이 사회 구조적 문제를 간과하고 시험·능력만이 공정하다는, 왜곡된 인식을 고스란히 보여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에 따르면, 교육부는 최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제출한 차별금지법 검토 의견에서 금지 대상 차별의 종류 가운데 '학력'을 제외하자는 수정 의견을 냈다.


교육부는 그 이유로 "학력은 성, 나이, 국적 등과 같이 통상 선천적으로 결정되는 부분이 아니라 개인의 선택과 노력에 따라 상당 부분 성취의 정도가 달라져 합리적 차별 요소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고 주장하면서 "학력을 대신해 개인의 능력을 측정할 수 있는 표준화된 지표의 사용이 일반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학력에 의한 차별을 법률로 규제하면 과도한 규제라는 주장이 나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15일 '차별금지법 10만서명 보고 및 입법촉구' 기자회견에 나선 장혜영 정의당 의원./사진=연합뉴스

지난 15일 '차별금지법 10만서명 보고 및 입법촉구' 기자회견에 나선 장혜영 정의당 의원./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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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의원이 지난해 6월 대표 발의한 차별금지법안은 합리적 이유 없이 성별·장애·나이·언어·인종·학력·성적지향·성별 정체성 등 23개 항목을 이유로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차별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법안에서 명시한 '학력'(學歷)이란 고졸, 대졸 등 교육 기관의 졸업·이수 여부나 특정 교육기관의 졸업·이수를 뜻하는 출신 학교까지를 포함한 개념이다. 이 같은 이유로 고용, 재화·용역 공급, 직업훈련, 행정서비스 제공 등에서 누구든 차별받아선 안 된다는 취지의 법안이다.


교육부의 법안 수정 제안에 대해 장 의원은 즉각 '부적절한 의견'이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장 의원은 지난 25일 페이스북에 "개인의 노력은 학력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노력보다 더 본질적인 요소는 개인이 처한 상황과 환경"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학력에 있어 이런 환경의 영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이를 개선해야 할 의무를 가진 교육부가 '학력은 노력 문제'라는 식의 매우 부적절한 검토의견을 내보낸 것은 강력히 비판받아야 한다"라며 "교육부의 빠른 수정의견 제출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대학교 강의실./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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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일각에선 최근 청년층을 중심으로 대두하고 있는 '공정성 담론' 등 학력을 따지는 것이 '정당한 차등'이라는 주장도 있다.


한 누리꾼은 "박사와 석사, 학사를 구별하는 이유가 뭔가. 역할에 맞는 어느 정도의 자격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며 "이를 똑같이 취급하는 게 더 차별인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대학, 시험, 성적만을 '정당한 자격'으로 인정하는 시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시험 만능주의'가 사람의 능력을 평가하는 유일한 기준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교육의 기회 자체가 가정환경과 부모의 경제력 등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논란이 확산하자 교육부는 법안에 대한 전반적인 재검토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 24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교육부가 수정 제안한)학력을 합리적 차별로 보는 사회적 인식이 있다는 점에 대해 납득하기 어려운 점들이 있다"라며 "그렇게 입장을 낸 취지가 무엇이었는지, 이 법안의 취지를 잘못 이해하거나 해석한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입장을 확인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교육부의 법안 수정 제안을 두고 전문가는 시험과 능력만으로 차별이 극복될 수 있다는 왜곡된 인식을 고스란히 보여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장은 "학력은 부모의 경제력이 굉장히 많은 영향이 미친다. 그래서 '수저 계급론'과 같은 것들이 나타난 것 아닌가"이라며 "'똑같은 시험지로 똑같이 시험 봐야만 공정하다'라는 것이 우리 사회를 전반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잘못된 인식이다. 그런 부분이 교육부 입장에서 재확인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입시 중심의 대학 서열화를 인정하고, 그것에 따라 '너희들이 알아서 노력하라'는 생각이 너무나 투명하게 보여 시민들에게 충격을 준다"라며 "'시험으로 차별이 극복될 수 있다'는 생각은 사회를 구조적으로 보지 못하게 사람들의 눈을 가린다"고 비판했다.


김 소장은 "교육부는 교육의 격차를 줄이고 최종적으로 국민의 경제적, 사회적 격차를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하는 곳이다.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야 하는데, 정반대로 가고 있다"라며 "차별을 정당화하는 이런 정부의 태도는 매우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강주희 기자 kjh81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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