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이산화탄소(CO₂)는 현재 인류의 공공의 적이다. 기후 변화의 주범으로 낙인 찍혀 세계 각국 정부는 사활을 걸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려고 애쓰고 있다. 그런데 단순히 배출량 감축뿐만 아니라 역발상으로 이산화탄소를 ‘제2의 석유’로 활용해 자원화하려는 노력들도 활발하다. CCUS(Carbon Capture, Utilization & Storage) 기술이라고 불리는 이산화탄소의 자원화는 이미 일부 분야에서 상용화되는 등 인류의 또 다른 신재생에너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산화탄소의 변신은 무죄
지난달 25일 대전 한국화학연구원(화학연)의 한 연구실. 한 연구원이 복잡하게 생긴 기계를 가동하자 투명한 병에 노란 물질이 차기 시작했다. 지금은 석유를 정제해야 나오는 나프타라는 물질이다. 휘발유나 각종 플라스틱 제품의 원료로 쓰여 ‘산업의 쌀’이라고 불릴 정도로 필수적인 자원이다. 이 기계는 제철 공정에서 발생하는 부생가스에서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전환 공정을 거쳐 나프타를 생산하도록 설계됐다는 게 화학연 측의 설명이었다. 동물이 숨을 쉬거나 탄소연료가 불에 타면서 발생해 지구 온난화의 주범이 되고 있는 온실가스가 ‘제2의 석유’로 뒤바뀐 것이다.
이산화탄소는 그동안 다 쓰고 난 폐기물 정도로 취급돼 지중ㆍ해중ㆍ유전 등에 격리시키는 방법이 최선책으로 인식돼 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기후 변화가 심각해지면서 단기적으로는 대기 내 이산화탄소의 절대량을 감축해 온난화를 늦출 수 있고 장차 석유를 대체할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꿩 먹고 알 먹는’ CCUS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전기원 화학연 차세대탄소자원화연구단장은 "앞으로 화석연료의 가격은 비싸지고 이산화탄소를 활용한 연료나 재료들의 값은 싸지면서 역전이 될 것"이라며 "지금 당장은 경제성이 문제가 아니라 탄소 중립을 위해서라도 CCUS 기술 개발과 상업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라고 말했다.
◇무궁무진한 활용 기술
이산화탄소는 화석 연료, 바이오매스를 사용한 후 또는 제철ㆍ발전 등 산업 공정에서 주로 발생한다. 물론 공기중에도 다수 포함돼 있다. 이를 화학적ㆍ생물학적 전환을 통해 유용한 제품으로 전환해 사용하는 것을 ‘전환 기술’이라고 한다. 연료(메탄, 메탄올, 가솔린ㆍ디젤ㆍ항공유), 화학물질(폴리머, 화학 중간재), 건축자재(골재ㆍ시멘트ㆍ콘크리트) 등에 사용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이산화탄소를 전기와 촉매를 활용해 수소(H₂)와 반응시키면 석유로부터 얻는 연료를 대체할 수 있는 물질을 얻고, 에폭사이드와 이산화탄소를 반응시키면 고분자 물질(폴리머)이 형성돼 각종 플라스틱, 발포고무, 수지 등 재료물질로 활용할 수 있다. 이산화탄소를 철강 슬래그나 석탄재와 반응시켜 발생한 탄산염은 시멘트 원료인 석회석을 대체할 수 있다. 전환하지 않고 그대로 활용하는 기술도 있다. 이산화탄소를 활용해 석유회수증진(EOR)을 위한 용제로 사용하거나 카페인 제거ㆍ드라이클리닝용으로 쓰기도 한다. 냉장ㆍ냉방, 초임계 발전 등 열전달 유체로 쓰기도 하고 식음료ㆍ용접ㆍ의료용으로도 사용한다.
◇상용화 어디까지 왔나
이산화탄소로 탄산염을 만들어 콘크리트 등 건축자재로 활용하는 연구는 이미 상용화 단계에 접어들어 있다. 미국의 카본 큐어, 솔리디아 테크놀로지 등은 이산화탄소를 활용한 건축자재 생산을 이미 시작했다. 한국에서도 CO₂ 저감형 차수성 시멘트ㆍ폐광산 채움재 등이 개발돼 상업화 단계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때는 제지 공정에 쓰이는 석회석 충전재 대신 이산화탄소를 이용해 만들어진 침강성 탄산칼슘(PCC) 종이가 대회 개최용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플라스틱 원료인 폴리머로 가공하는 공정도 일본 아사히카세이 등에서 상업 생산을 시작한 상태다.
반면 화학제품 전환, 연료화 등의 작업은 이제 막 실험실 단계를 벗어나 실증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산화탄소를 자원으로 활용하는 시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2016년 글로벌CO₂이니셔티브는 2030년까지 연간 7기가t의 이산화탄소가 각종 자원으로 쓰일 것으로 예측했다. 이는 비영리 연구소 GCCSI가 2011년 연간 0.57~1.87기가t의 이산화탄소 수요를 예측했던 것보다 3~10배 이상 많은 양이다.
◇풀어야 할 과제는?
문제는 경제성이다. 초기 백금ㆍ이리듐 등 값비싼 촉매들을 활용한 CCUS 기술들이 개발됐지만 너무 비용이 많이 들어 최근에는 산화철 등 값싼 물질을 활용하거나 소량을 재활용하는 기술들이 발전하고 있다. 또 현재의 기술 수준으로 경제성을 올리려면 중간에 화석연료를 활용한 에너지 또는 기존 석유화학 제품 등의 투입이 불가피해 탄소 배출 감축에 기여하는 몫이 줄어든다. 이미 상용화 초기 단계인 폴리머 생산의 경우 상징성은 크지만 실제 감축 유효량은 크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폐슬래그를 활용한 골재 생산은 진입 장벽이 낮고 시멘트 생산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어 CCUS 시장의 초기 단계에 적합하다.
특히 화학제품과 연료로 전환하는 Power-to-X(P2X)가 주목받고 있다. 유럽연합(EU)은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P2X를 포함시킬 정도로 열정을 쏟고 있다. 이산화탄소로 반응시켜 화학제품 및 연료로 전환되는 나프타를 생산할 경우 연간 200만t 생산시 온실가스 저감량이 351만t에 달할 정도로 효과도 우수하다. 현재 기술 발달 정도로 보면 2050년께는 석유계 제품에 비해 90%의 가격에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돼 꾸준한 투자가 요구되는 상황이다.
현재 우리나라가 연간 소비하는 나프타는 약 6300만t이며 이 중 연료유로는 4000만t이 쓰인다. P2X로 생산된 나프타를 쓸 경우 그만큼 온실가스 저감과 함께 석유 대체 등 일석이조의 효과를 볼 수 있다. 해외에서 암모니아 등 그린수소를 수입하는 것보다 P2X 나프타를 수입하는 것이 수송ㆍ저장면에서 더 효율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전 단장은 "촉매의 가격을 낮추고 공정 설계ㆍ반응기 개선 등을 통해 투입되는 에너지 대비 효율을 높이는 한편 대량생산이 가능한 공정 격상(scale up) 과정을 거치는 것이 숙제로 남아 있다"면서 "전기차나 수소차가 탄소 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정부 지원을 받아 보급되고 있는 것처럼 이산화탄소 자원화 기술도 마찬가지의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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